노사협상은 실리 외에 명분도 중요하다
노사협상은 실리 외에 명분도 중요하다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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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올해 임금협상에서는 전년도와 달리 새로 집행부가 구성된 노조측의 요구를 가능한 한 수용해 주기로 하고, 3차 협상에서 노조의 최초 임금인상요구액을 거의 받아들이는 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사측의 당초 예상과는 달리 협상의 조기 타결은커녕 오히려 전년도보다 더 늦게 협상이 타결되었다”(E사의 사례).

 

 

일반적인 거래관계에서의 협상은 명분보다는 실리에 치중하게 되므로, 협상타결의 동인은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과 손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손실보다 이익이 클 때 아니면 이익보다 손실이 적을 때 협상타결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데, 이러한 원리는 노사 간의 단체교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노사관계에서 교섭권은 노동조합이 보유하고 있고 이러한 교섭권의 행사는 사용자와 이해관계가 결부되어 있는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주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조와의 적극적인 협상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소극적인 입장에서 손실을 최대한 방지하는 것을 협상전략으로 삼을 수도 있으므로, 사용자는 협상자체를 거부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협상에 응하는 것은 법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노조의 정당한 협상요구에 사용자가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됨) 협상결렬로 인한 파업이 초래할 손실 즉, 파업비용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노조입장에서도 파업의 선택은 조합원의 임금상실을 초래하게 되고 파업이 적법성을 결한 경우에는 민·형사상의 책임까지도 져야 하므로, 파업으로 인한 손익여부를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노사 간의 협상은 이러한 실리위주의 협상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협상과정에서 몇 차례의 협상을 통해 충분히 협상을 타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수차의 협상을 더 진행시키면서 집행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때로는 파업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데도 ‘명분 쌓기용’ 파업을 하기도 한다.


회사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해야 하는 경제조직이므로 협상에 임할 때 가능한 한 협상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노조는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지 않고 1년 내내 협상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 타결효력은 소급적용되기 때문에 손해볼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노조는 경제조직이 아닌 정치조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협상결렬에 따라 파업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에는 결렬된 요구사항을 관철시켜 노조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 외에, 파업실패에 대비한 명분찾기가 파업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즉, 파업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파업을 종결하기 위한 적당한 명분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파업상태에서의 노사협상의 타결가능성은 파업이전의 협상단계에서 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것 외에 명분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에서 새로 들어선 노조집행부는 전집행부의 임금협상과정을 떠올렸을 것이고, 더 나은 협상결과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조합원의 의혹의 눈초리를 염려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사용자는 노동조합의 행위에 대해 즉시적 대응을 삼가고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 노동조합의 정치성을 일면 이해한다면 때로는 협상과정에서나 협상타결 후 상대방의 체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체면세우기는 합의내용을 원칙과 명분에 조화시키는 것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