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구 노릇’만 하는 중소기업
일본 ‘호구 노릇’만 하는 중소기업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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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in issue ㅣ FTA와 중소기업, 악연 중 악연

 

“아직 파악을 하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이제 곧 피해예상 조사를 할 겁니다.” 중소기업청 한 관계자의 말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일본이 지적재산권을 엄격히 적용하기를 요구함에 따라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예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불법으로 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부분은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라는 대답이다.
  

“FTA? 우리 소관이 아닌데요” … 뒷짐행정 일관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86.7%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위기의식이 부족할 뿐더러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지방의 경우는 실로 참혹할 정도다. 경남지방 중소기업청은 수출기업화 사업, 내수 및 해외 판로지원 사업, 구매시장 개척단 프로그램 등의 중소기업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지만 FTA에 대비한 프로그램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실무 담당자 A씨는 “인력이 부족해 아직까지는 자치단체, 관세청 등 유관기관의 협조를 받아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우량 바이어 및 판로 확보 곤란’, ‘수출절차를 수행하기에 부족한 전문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지역 내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지만 해당 건별로만 고충이 처리될 뿐 지역차원의 구체적 노력들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김수환 연구원은 “중소기업들이 한일 FTA에 관한 실효성 및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세인하 효과 ‘증발’  
1990년 초반까지 중소기업의 대일수출은 중소기업 총수출의 20%에 가까웠으나 2002년에는 10.7%로 절반이 감소했다. 주요 수출품으로는 전자전기제품, 섬유, 기계, 화학제품 등이 70%를 차지한다.

문제는 중소기업의 수출상품 구조에 있다. 현재 관세인하가 예상되는 높은 관세 영역에는 수출규모가 작은 품목이 집중되어 있는 반면, 수출규모가 큰 품목은 무관세, 낮은 관세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협상이 체결이 되더라도 관세인하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관세율이 10% 이상에 속하는 품목들의 수출비중은 고작 3%에 불과하다.
관세철폐로 가장 큰 대일수출 증가폭(46%)을 기대했던 섬유의 경우 대일 수출비중이 2000년 31.7%에서 2002년 23.1%로 급감하고 있는 추세다.

 

한국화섬협회 조사부 김영식 부장은 “직물은 일본 내 중국산 제품의 경쟁력이 워낙 높기 때문에 5.6%인 관세가 무관세가 되더라도 이득 보는 것이 거의 없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김 부장은 “한국은 가공단계를 거치면서 원가가 상승하는 구조이지만 중국은 그 반대”라고 밝혔다. 

 

일본 수직적 분업구조 될 가능성 짙어 
최근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100이라고 놓고 4개 항목을 국내와 비교해 봤을 때 평균 경쟁력은 80.6%로 나타나 일본에 비해 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이는 FTA가 체결됐을 경우 저부가가치 기술력을 가진 한국과 상대적으로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가진 일본이 양극화된 분업구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 대기업은 제품 생산의 초기단계부터 중소기업을 직접 참여시켜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고 있는 반면, 한국의 대-중소기업간 기술협력 및 이전정도는 아주 낮은 편이다.

 

2003년 산업연구원과 산자부가 공동조사 한 ‘한국제조업의 하도급실태’에 따르면 부품업체의 설계 참여도는 20% 이하에 머물고 있다. 
산업연구원 국제협력실 김학기 부연구원은 “중소기업 수출 품목 중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은 많지 않으며, 지금의 경쟁력으로는 당장 한 해를 버티기조차 힘든 곳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공동화’ 페달 가속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과 수직분업관계를 원하지만 중국의 기술향상, 부품 및 소재의 국산화 노력 등으로 수직분업 정도는 낮아질 것”이라며 “부품 및 중간재의 대중수출증가율도 갈수록 둔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중국수출은 급증해 올해 1~7월 280억 달러로 총수출의 19.1%를 차지, 1위 시장으로 부상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중국투자가 급격히 증가해 제조업 투자 중 2003년 64.5%, 2004년 1~7월 51.4%로 중국으로 집중돼 있다.

중국측 통계로는 2004년 1~7월에 한국의 중국투자가 41억2천만 달러로 일본의 34억3천만달러, 대만의 21억2천만 달러를 훨씬 상회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크기 때문에 중국의 고성장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하고 있지만 대량생산형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과 직접 경쟁하게 돼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수석연구원은 “시장유지를 위해 수출가격을 인하하면서 한국의 교역조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면서 “순무역교역지수(수출단가지수/수입단가지수)를 보면 1998년 84.2에서 지난해에는 64.3까지 급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일본보다 기술력이 취약한 대부분의 국내 중소기업들은 해외이전과 도산, 휴폐업 등 극심한 구조조정을 겪을 것으로 분석된다. 핸드폰케이스 제작업체 A텔레콤은 “국내 시장이 축소되고, 중소기업간 과다경쟁으로 힘이 들어 중국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일 FTA를 통한 일본기업의 투자는 불투명해 보인다. 일본중소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에 투자를 했던 일본기업들은 계속해서 중국 등 해외로 생산을 이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수하는 기업들의 66.7%가 중국 지역을 제외하고는 판매가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중·일간 경쟁구도 속에서 철저한 전략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저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된 중소기업들에게 피해만 입히고, 국내 시장을 일본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실제상황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