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설악, 공간의 가치
[녹색연합 기고] 설악, 공간의 가치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2.27 18:56
  • 수정 2023.03.0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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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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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를 마주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설악산 케이블카를 떠올렸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국립공원 케이블카 추진의 중요한 구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공간 감각이 늘 불만이었다. 도시의 지하철, 일상적 공간 속 장애인 이동권에는 그토록 무심하던 정치가 일상과 분리된 나들이 공간에서만 유독 이동권·향유권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려는 것은 온당한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그 시작이 까마득하다. 1982년부터 강원도의 숙원사업이었다는 기록이 긴 욕망의 역사를 설명한다. 그보다 앞서 설악산을 천연기념물·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공간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을 볼 때, 개발과 보전이 대치한 역사도 시작을 같이한다.

7년 전 강원도 양양군은 ‘케이블카 노선이 주요 야생동물 서식지가 아니라 이동 경로일 뿐’이라는 구실로 환경부에 국립공원계획 변경 신청을 했고,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는 사실상 사업추진을 결정한다. 이렇게 설악산 국립공원이란 생태 공간의 보존 가치가 왜곡되면서 국립공원 케이블카는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푯값을 위한 수단으로, 해결해야 하는 고충민원으로 전락했다. 여기에 주민 생존권,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관한 행정심판과 소송이 제기되며 논쟁은 가열됐고, 본질에서 벗어난 새로운 갈등 프레임까지 조성됐다. 긴 싸움은 지난해 12월 말 양양군이 환경영향평가 2차 보완서를 환경부에 제출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최근 정부 산하 전문기관들이 이 환경영향평가 보완서를 검토한 결과, 사업자가 제시한 대책으로는 설악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9년 부동의 결정을 내린 것과 다름없는 의견이다. 멸종위기 산양의 서식과 번식에 큰 교란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고, 상부정류장 지형 훼손은 오히려 증가해 백두대간 핵심구역에 대한 과도한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게다가 사업노선의 풍속을 실측하지 않아 안전성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설악산의 생태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에 주목해야 한다. 설악산, 그리고 국립공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한국을 비롯한 196개 나라 대표들은 긴 논의 끝에 ‘전 지구적 생물다양성 전략계획’을 채택했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 면적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30% 이상 복원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그중 하나다. 기후재앙을 늦추기 위해 지구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 붕괴를 막을 마지막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가뭄이나 홍수, 산불 같은 기후재난은 생태계 균형의 파괴로 이어져 서로 위기를 가속화시킨다. 양양군이 내세운 지역 경제 활성화, 환경영향 저감 기술 확대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게 두려움의 본질이다.

설악산은 공간 그대로의 가치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생물다양성의 균형을 갖춘 한반도의 생태 축이라는 공간 감각을 키우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도시 시스템이 일상 공간에서 장애의 극복에 어떻게 기여할지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처럼, 야생의 공간이 어떤 위협으로부터 가장 먼저 지켜져야 할지 우리가 알아야 한다. 부디 환경부도 이 사실을 놓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