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 척결법’, 건설노조가 알려드립니다
‘건폭 척결법’, 건설노조가 알려드립니다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2.28 10:32
  • 수정 2023.11.05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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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불법 근절, 건설노조도 가장 원하는 일”
“불법 다단계 하도급 없애야 불법행위 사라진다”
[인터뷰]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위원장

정부가 연일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외치고 있다. 그 원흉으로는 건설노조를 지목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 ‘조폭’이라고 표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건폭’(건설 폭력)이라는 조어까지 만들며 건설노조 비판에 열을 올렸다.

이런 정부의 압박에 건설노조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은 건설노조도 가장 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만 “방법이 틀렸다. 건설노조 탄압으론 절대 건설현장을 깨끗하게 만들 수 없다”며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파생시킨 구조적 원인을 없애야 불법행위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설노조가 말하는 구조적 원인과 건설현장 불법행위에 대한 해결책을 자세히 듣고자 장옥기 민주노총 건설노조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월례비, 건설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
건설노조, “월례비 근절해야”

- 정부에서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건설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에 대한 건설노조의 생각이 궁금하다.

정부에서 ‘건설현장 불법행위’라고 지목하는 월례비 지급, 조합원 채용 등에 대해 이해하려면 건설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런 제도가 생긴 이유를 알 수 있고, 그에 따른 해결책도 말할 수 있다. 

-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것 중 하나가 ‘타워크레인 조종사 월례비 강요’다. 월례비는 생소한 단어다. 월례비는 무엇이고, 어떻게 탄생했나?

월례비에 대해 이해하려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0년대엔 건설사에 타워크레인 부서가 따로 있었다. 그러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건설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타워크레인 부서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이때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가 많이 생겼다. 과거 건설사 정규직이던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요즘엔 타워크레인 임대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타워크레인 임대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공사가 있을 때마다 건설사가 임대 회사로부터 타워크레인과 함께 조종사의 노동력을 빌려오는 구조다. 물론 건설 현장에서 지휘·감독은 건설사가 한다. 이때 건설사에서 조종사에게 따로 지급하는 수당이 월례비다.

- 임금을 받고 있는데 왜 건설사에서 따로 수당을 주나?

건설현장의 모든 작업은 타워크레인의 자재 인양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다른 건설노동자들보다 빨리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한다. 연장근무가 많은 거다. 그런데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임금을 주는 임대 회사에선 연장근무에 대한 추가수당을 줄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러다 보니 공사 기간을 줄일수록 자금을 아낄 수 있는 건설사가 조종사에게 연장근무를 해달라며 연장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월례비의 시작은 건설사가 지급하던 ‘추가근무에 대한 임금’인 거다. *지난 16일 광주고등법원은 “월례비는 임금”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 다른 이유로 월례비를 주기도 하나?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하나는 급행료 성격의 성과금, 다른 하나는 안정규정을 위반한 작업에 대한 사례비다.

- 자세히 알려달라.

앞서 말했지만, 건설업은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자재를 인양해야 작업이 시작된다. 건설현장의 여러 업체가 자신의 물량을 먼저 인양해 달라며 급행료 명목으로 월례비를 지급하는 경우가 꽤 있다.

또 타워크레인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장에서 지켜야 할 안전규정이 많다. 하지만 건설업체에서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안전규정에 위배되는 작업을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부탁하고, 대신 월례비를 지급하곤 한다.

정리하자면 월례비는 이 세 가지 성격(▲연장근로에 대한 수당 ▲급행료 성격의 성과금 ▲안전규정에 위배되는 작업에 대한 사례)으로 지급하는 금품을 통칭하는 용어다. 이렇게 건설사가 자기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급하던 금액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 월례비다.

- 안전규정에 위배되는 작업을 하게 한다는 점, 암암리에 지급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당연하다. 건설노조에선 불법·위험 작업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월례비를 받지 않을 것을 여러 차례 결의하기도 했다. 건설협회, 전문건설협회, 전문건설업체에 공문을 보내 월례비를 요구하는 조합원을 고발할 것을 요청한 적도 있다. 그때 고발을 한 곳은 없었다. 건설사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월례비를 줬다는 방증이다. 그러더니 정부가 불법행위를 언급하니 월례비 요구가 건설노조 때문에 생겼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거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월례비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건 건설노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월례비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임대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고, 건설사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기형적인 고용구조가 있는 한 월례비가 쉽게 사라지진 않을 거다. 정부가 월례비 관행을 뿌리 뽑고 싶다면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노동이 정상적인 근로 계약을 통해 제대로 평가받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월례비 관행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건설사가 고용에서 불법 저질러
건설노조는 불법 다단계 고용구조 근절 원해

- 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조합원 채용을 노동조합이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월례비처럼 건설현장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건설업은 프로젝트성 사업이다. 따라서 대기업인 원청건설사와 그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전문건설업체 모두 상시적인 고용을 회피한다. 공사가 있을 때만 건설노동자를 고용하기를 원한다. 실제 건설사에 상시 고용된 건설노동자는 한 명도 없다.

여기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포개진 것이 건설업의 현실이다. 법에 따르면 건설업은 (시공사에서 전문건설업체로) 한 차례의 도급만 허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선 전문건설업체가 다시 중간관리자(일명 십장, 오야지 등)에게 하청을 주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 얼마나 만연해 있나?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표한 ‘2022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건설근로자 1,327명을 대상으로 조사)에 따르면 건설노동자의 74.9%가 인맥을 통해 일을 구한다. 전문건설업체가 오야지에게 연락을 하면 오야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건설노동자에게 연락해서 팀을 꾸리는 구조다. 물론 불법이다.

유료직업소개소를 이용하는 노동자는 7.6%로 집계됐다. 흔히 말하는 ‘△△인력’같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을 구하는 거다. 이런 곳은 보통 일당의 10%를 소개비로 받는다. 이 또한 불법이다. *고용노동부는 유료직업소개소에서 1% 이하의 수수료만 받도록 정하고 있다.

- 상시적 고용 불안에 불법하도급까지, 건설현장에서 ‘고용’은 중요한 이슈일 것 같다.

그렇다. 건설노동자에게 고용은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 그래서 건설노조는 건설사와 단체교섭 과정에서 불법적인 채용 대신 합법적으로 직고용해달라고 요구한다. 합법적인 채용을 요구하는 것이 채용 강요인가?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말이 “노동조합은 건설사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매일 오야지 눈치 보며 언제 잘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건설노조는 계속 합법적인 고용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고용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하는 건 오히려 건설사다. 건설사들은 합법 고용을 요구하는 건설노조 조합원을 고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유지해야 안전관리 등 추가 비용이 들지 않고, 추가 업무도 눈치 보지 않고 맘껏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를 조합원 채용 강요라는 프레임으로 매도하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다.

전임비는 노사 자율 결정의 영역
강요 아닌 교섭에서 요구일 뿐

- ’노조 전임비‘를 강요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건설현장에서도 법에 정해진 근로시간면제 제도*에 따라 전임비를 받는다. 건설업의 경우 지부에서 채용한 상근자가 전임비를 받으며 지부가 포괄하는 현장을 관리한다. 전임비는 노사가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으로 정한 것이다. 여기에 강요가 있다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단체교섭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는 것이 강요인가? 그걸 강요로 보는 건 단체교섭에 의한 단체협약을 부정하는 말이고, 이는 곧 헌법에 보장된 노조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인사노무활동으로 인정해 기업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

- 전임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해법은 뭐라 생각하나?

전임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인 기준도 그렇다. (ILO는 전임비 지급을 노사 자율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한다.) 다만 근로가 면제되는 시간을 설정할 때 법에서 사용하는 기준인 상시근로자가 없는 건설현장에서 근로면제시간을 어떻게 책정해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 정말로 건폭 없애고 싶다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부터 없애야

- 건설 현장을 좋은 일터로 만들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건설노조를 탄압한다고 건설사의 묵인 아래 이뤄지던 월례비 등의 관행과 불법행위가 근절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프로젝트성 사업인 건설업의 특성으로 파생된 불안한 고용구조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불법행위의 주된 원인이다.

건설노조가 지금 하는 (건설노동자의) 안정적 고용을 위한 노력을 정부에서 해주면 불법행위도 확연히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공사를 원도급사가 직접 시공하도록 의무화해 불법적인 하도급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또 발주사에서 시공사로, 시공사에서 전문건설사로 공사를 도급할 때 공사 금액만 보고 공사 낙찰 여부를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낙찰의 판단 기준에 공정별로 시공이 가능한 기능 인력을 고용했는지, 그에 알맞은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지 등 고용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강제하면 건설사들도 법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건설노동자 고용에 힘쓸 거로 생각한다.

- 올해 건설노조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7월 총파업 예정이다. 슬로건은 ‘모든 건설노동자를 위한 7월 총파업. 현장을 바꾸자! 건설 산업을 바꾸자!’다. 총파업을 통해서 우리 사정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기업·정부와 건설산업 변화를 위한 노·사·정 교섭을 맺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교섭을 통해 건설노조는 비조합원들까지 단체협약을 확대하자고 주장할 예정이다.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조합원을 넘어 전국의 모든 건설노동자를 위해 용기를 잃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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