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건강검진, 일상화되면 좋겠어요”
“마음 건강검진, 일상화되면 좋겠어요”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3.13 14:15
  • 수정 2023.03.13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박우옥 운영팀장, 김경선 상담팀장

참여와 시민단체

참여와혁신이 매달 노동·시민·사회단체를 소개합니다. 노동을 주로 다루던 참여와혁신인데 ‘장르’가 달라진 게 아니냐고요? ‘참여’는 일터 내 민주주의뿐 아니라 일터 밖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참여민주주의 학교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만나며 여러 형태의 참여 경험을 참여와혁신 독자와 나누려 합니다.

(왼쪽부터) 박우옥 운영팀장, 김경선 상담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왼쪽부터) 박우옥 운영팀장, 김경선 상담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도록 힘을 보태는 시민사회단체와 산재·해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 보호 등 노동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대표적이다.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이하 통통톡)은 이런 활동가들의 심리 건강에 주목했다. 직접 만나본 활동가들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고통받는 이들을 치유하고자 나서지만 정작 자기 돌봄을 소홀히 해 심리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는 이유였다. 통통톡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치유공간 ‘와락‘을 모태로 한다. 와락 활동 이후 각 지역에서 상담활동을 하던 개인과 단체들은 각자 상담을 하며 생겼던 고민과 심리치유 프로그램 등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이를 연결해 주는 통통톡이 출범한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다시봄 심리치유센터를 운영하는 박우옥 통통톡 프로그램 운영팀장, 서울시 종로구에서 하제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는 김경선 통통톡 상담팀장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늦게 시작한 심리 공부
나와 사람을 돌보기 위해 상담 시작

- 상담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우옥 : 대학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시작했어요. 운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까 한계에 부딪혔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의미를 찾는 활동을 계속했는데 거기에 제 에너지를 다 썼어요. 그러니까 제 개인은 그 활동에 다 종속된다고 얘기해야 될까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사회활동이나 투쟁에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없는 거예요.

개인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잖아요. 그런 개성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니까 부딪히는 일도 많아졌고요. 나중에는 제가 화를 버럭버럭 내기도 하고 사람들과 얘기할 때 공격적으로 대하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저와) 편하게 얘기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럴까’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전부터 상담이 일종의 사람을 살리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있긴 했는데요. 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심리학 기초부터 공부하게 됐고, 상담활동까지 하게 됐죠.

김경선 : 저도 일찍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지금은 심리학회 전문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원래 상담활동 전에는 독서치료를 하면서 비행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그들을 만나면서 치유를 해 준다고 하지만 구조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이들의 어려움이 되풀이 되잖아요. 왠지 막 희망고문을 시키는 것 같아서 그 활동을 잠깐 멈춘 적도 있거든요. 멈추면서 뒤늦게 시작한 공부가 상담이에요. 내가 상담 전문가라도 돼야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다른 상담사들과 교류하게 된 건 2014년 세월호 때부터였어요. 그때 처음으로 상담사들끼리 시국성명을 내고 활동을 했죠. 그런 마음으로 모인 상담가들이 통통톡 활동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품앗이처럼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도와주면 그 사람이 또 자기가 할 수 있는 걸로 도와주는 일을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연결고리를 하나씩 만든다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김경선 상담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경선 상담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대리외상’ 자주 겪는 활동가들
주로 논리적 언어 사용… 감정표현 어려워하기도

- 상담사로서 보시기에 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김경선 : 주로 투쟁 현장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활동가들은 개인의 취약성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게 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상담을 받으러 오면 나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러다가 결국 그게 곪아 터져 위험해지고…. 이런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활동가분이 많이 오세요.

대리외상을 겪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예를 들면 10.29 참사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현장에 가서 본 것이나 관련 문제를 날 것으로 다 전해야 하고, 또 그것을 수없이 반복해서 이야기하시기도 해요. 그걸 (심리적으로) 견디면서 활동하는 건데 한계에 다다르면 공황증상을 느끼는 경우들도 있죠.

박우옥 : (활동가로서) 제 경우 어떤 방향과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언어도 논리적·이성적인 것을 주로 쓰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정서나 감정과 관련된 단어를 별로 안 쓰고 살았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상적으로 감정적인 언어를 교류할 만한 시간이 부족한 것도 있어요. 회의하고 토론하고 그 다음 일을 또 계획하고 진행하고 하니깐요. 그래서 내가 이래서 섭섭하고, 이래서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던 거예요. 그게 일정 시기가 지나니까 번개를 맞듯이 알게 됐어요. ‘나를 제대로 알고 내가 편해져야 내가 사회에 기여하려는 일도 잘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요.

내담자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 있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식의 상담도 필요

- 어떻게 상담을 진행하십니까?

박우옥 : 힐링이나 쉼이 필요하신 분들, 공동체 내 갈등이 있는 집단 등 그에 맞는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개인적으로 다룰 이슈가 있으면 개인 상담, 관계 속에서 나의 역동을 다룰 경우 집단 상담을 하는데 두 가지를 같이 하기도 하고요.

김경선 : 주로 개인 상담을 하는 저는 심도 있는 상담을 하는 편이죠. 예를 들면, 노동자분들 중에서는 본인도 힘든데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그 죽음 이후의 뒷일들을 처리하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과는 안전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지난주에 어떤 생각이 흘러갔는지 안전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 최근 2년간 통통톡은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의 지원을 받아 콜센터노동자들의 상담을 지원했습니다. 통통톡이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한 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콜센터노동자들은 주로 어떤 어려움을 말했으며, 어떤 상담이 진행됐는지 궁금합니다.

김경선 : 개인 상담을 진행했었는데, 콜센터노동자분들이 상담을 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너 성격이 문제야. 성격부터 고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하세요. 하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내가 견딜 수 없는 취약함이라는 게 있잖아요.

상담해 보면 콜센터노동자들은 결정권이 없어 힘들어해요.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가지고 고객 상담을 하지만 결정권이 다른 데 있어, 고객에게 원하는 답변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잘 모르니까 힘드신 거죠. ‘내가 무능하거나 못나서 이런 일을 겪는다’라는 생각도 하세요.

사회적으로 (콜센터노동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개인의 문제를 파고드는 게 전통적인 상담 영역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그런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개인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사회적 인식이나 구조가 변할 수 있도록 내담자가 그 목소리를 내게 하고, 궁극적으로 상담사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거죠. 이를 ‘사회정의 상담’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상담이 필요하다고 봐요.

박우옥 : 콜센터노동자분들과 상담을 실시하기 전 먼저 이분들의 욕구를 사전에 조사했어요. 어떤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는 상태인지 알아야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거든요. 또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이해도가 높은 상담사들이 적절한 말과 태도를 사용할 수 있기도 하죠.

콜센터노동자들은 당장 쉼이 필요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명상, 아로마 테라피, 원예 치유, 미술 치료 등을 진행했는데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죠. 프로그램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실 때 보면 표정이 더 가볍고 편안해지세요.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 좋았다고 말씀도 하시고요. 올해는 템플스테이도 계획하고 있고, 기존에 참가했던 분들까지 다 열어놓고 모집할 계획입니다.

박우옥 운영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박우옥 운영팀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모든 사람의 '마음' 건강검진
일상적으로 실현되길

- 상담사로서 어려운 점은 없으십니까?

박우옥 : 활동가나 노동자들한테 도대체 어떤 상담이 적절할까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있어요. 그래서 조금 외로운 것도 있고요. 그리고 저처럼 활동가로서 활동을 하다가 상담사로 전환된 분들이 아직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터전을 잘 만들고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통통톡도 코로나 전에 1년 정도 상담사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전문적인 상담사는 아니지만 각자 현장에서 심리치유 활동을 하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 분들을 교육하는 일이었는데 끝까지 참가하셨던 15분 정도가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계세요. 그래서 다시 활동가 양성 과정을 정기적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경선 : 상담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이를 푸는 방법은 각자 다를 텐데요. 저는 예전에 상담도 많이 받았는데, 최근에는 저만의 방법을 찾았어요. 책을 보거나 뜨개질을 하는 등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작업을 해요. 또 어려운 상담을 하고 나면 꽃을 하나씩 관리하면서 힘든 마음을 비워내기도 하죠.

-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우옥 : 건강검진을 하잖아요. 1년에 한 번씩 마음 건강도 그렇게 검진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울증, 불안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서 어떤 치료를 받는 건 결국 병이 발생한 이후잖아요. 심리적인 건 사전 예방이 중요해요. 스스로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 때 (상담을) 하면 조금이라도 고생을 줄일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마음 건강검진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일상적인 영역으로 가면 좋겠어요.

김경선 : 최소 몇십 년을 사는데 사람들이 몸은 검진받지만 마음은 검진을 잘 안 받아요. 그래서 학교 들어갈 때, 사춘기 때, 성인이 됐을 때, 중년기 때 최소 한 번씩은 의무적으로 검진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상담사들은 상담비용의 20%를 통통톡 운영기금으로 기부하고 있어요. 또 상담비용을 낼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 상담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상담을 원하거나 심리적 위기에 처한 분들이 부담없이 상담을 신청하셨으면 합니다.

통통톡과 함께하기 ▶ 후원하기

참여와혁신은 2월호에 소개한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노동조합’에 지난 2월 23일 후원금 30만 원을 전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