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 강성 노조가 가장 큰 비관세 장벽이다”
일본, “한국 강성 노조가 가장 큰 비관세 장벽이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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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중 6개가 노동관련 조항
부품조달 생산기지 구축위해 노동시장 빗장풀기 안간힘

issue in issue ㅣ 한일 FTA, 대한민국 노동시장 노린다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때, 협상 진행국들은 ‘진지조항’이라는 것을 마련한다. ‘진지조항’이란 말 그대로 ‘협상의 타결을 위해 가장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협상 타결의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한일 FTA 협상에서 일본측이 들고 나온 ‘진지조항’은 한국의 노사관계 개선이다. 양국의 협상 초안격인 한일 FTA 공동연구회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시급히 철폐되어야할 한국의 비관세장벽을 13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이중 6가지 항목이 ▲종업원지주 조합에 신주를 우선 배당하는 규정 폐지 ▲한국 노동위원회가 노사간 분쟁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 ▲무노동 무임금 원칙 준수 ▲노동자의 미사용 휴가에 대한 사용자 보상 의무 폐지 ▲퇴직금 산출 유연성 제고 ▲노동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격하고 신속한 대응 등 우리나라의 노동환경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반면 한국이 제출한 26개 항목에는 노동 및 노사문제 관련 항목이 하나도 없다.
 

 

또, 일본의 경제단체들은 협상 진행 과정에서 자국 정부에 한국의 노사관계 관련 규제 철폐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02년 6월, 공동연구회의 일본측 경제단체 대표를 맡고 있던 오오누키 요시야키(미쓰비시물산 주식회사 고문)는 일본 경단련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한국의 노사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일 FTA가 체결되더라도 우리(일본)기업의 진출이 쉽지 않다”면서 “양국이 이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좀더 효과적이며 실질적인 장치를 만들기 위해 일본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임금-고기술의 중간 생산기지 필요하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한국의 노사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두고 우리 정부와 경제계는 협상 지연을 우려하면서도 ‘한국에 대한 실질적 투자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약간의 기대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노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언급은 단순히 투자를 위한 장벽 해소 취지로 바라볼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박사는 “일본 자본이 한국을 단순 투자처나 판매처로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계산”이라고 전제한 뒤 “한국을 중국 및 동북아 진출을 위한 국제적 생산거점 또는 중간재·부품의 조달기지로서 설정하고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 및 인력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어차피 양국 간의 FTA가 관세장벽 철폐를 통한 상품무역의 자유화를 의미한다면 굳이 한국에 직접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판매를 통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때문에 일본의 대한(對韓) 투자 환경에 대한 우려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2003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인건비는 일본의 10분의 1수준인 반면 노동력의 숙련도는 중국보다 높아 일본으로서는 매력적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생산기반 악화에 규제완화 요구까지 겹쳐
협상 타결 만료 시점을 1년 앞두고 일본 경제단체들의 노동시장 규제 완화 요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지난 8월 10일 한국 진출 일본 경제인 모임인 서울-재팬클럽 (SJC, 회원 1619명, 법인 322사 등록)은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일본 기업들이 국내에서 겪고 있는 6개 분야, 49개 애로사항을 문서화해 전달했다.

이 문서는 한일 FTA 공동연구회 보고서가 담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다양한 분야를 다뤘다. <박스 참조>

 

한일 FTA 가 노동분야에 몰고 올 파장은 단순히 일본의 노사관계 관련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 철강, 기계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생산기반 약화와 국내 생산의 축소는 곧바로 심각한 고용 조건의 악화로 귀결된다. 특히 노동계는 한일 FTA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산업공동화를 가속화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참여와 혁신>이 노사 관계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ㆍ일 FTA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노동조합 간부들은 회사 관계자에 비해 산업공동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비중이 높았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이상학 원장은 “한일 FTA 타결로 주력산업이 흔들리게 되면 IMF 시대와 견줄만한 대규모 실업사태와 고용불안이 예견된다”며 “양국의 경쟁 격화에 따른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양국간의 경쟁력의 조화와 결합 없이 추진되는 한일 FTA가 산업공동화와 고용위기에 대한 노동계의 걱정을 심화시키고 노동기준과 노사관계에 대한 새로운 논쟁거리만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Seoul Japan Club 건의사항 목록
노동·노사관계분야 (13건)

① 노사협정ㆍ관행 시정
② 유급휴가제도, 노동시간제도 적정화
③ 법정퇴직금제도 개정
④ 일한 사회보장협정 조기시행
⑤ 단시간근로자(파트타임)지침 폐지 등
⑥ 파견근로자제도 개정
⑦ 노조전임자수 감축, 임금지불 금지 등
⑧ 노조의 불법노동행위에 대한 엄정하고
   신속한 법 적용
⑨ 업무도급계약에 의한 기사 포함 렌트카 허용
⑩ 국가유공자 고용의무의 탄력적 운용
⑪ 노사협의회 구성ㆍ운영 등
⑫ 노동조건의 하방경직성 해소
⑬ 정규직 해고조건 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