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기고] 침묵의 봄, 보이지 않는 위험
[녹색연합 기고] 침묵의 봄, 보이지 않는 위험
  • 참여와혁신
  • 승인 2023.04.07 10:14
  • 수정 2023.04.07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mint@greenkorea.org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 지 어느새 12년 지났다. 지난 1월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하는 물탱크가 부지 용량이 한계에 도달했다며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를 이르면 4월 내에 실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새어 나온 핵연료 덩어리를 식히기 위해 매일 원자로 건물에 물을 쏟아붓는 중이다. 많은 양의 방사능 오염수가 만들어졌고, 그 양이 2023년 3월 9일 기준 무려 132만 7,545톤에 달한다.

그동안 일본은 ‘다핵종 제거 장치 설비’를 통해 오염수의 방사성 핵종들을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기술상의 한계로 64종의 관리핵종 중에서 ‘삼중수소’*와 ‘탄소-14’*는 제거하지 못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1,000개가 넘는 방사성 핵종 중에서 일부인 62종만 걸러낼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 삼중수소(tritium):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능 물질. 핵융합발전에 사용되는 연료지만, 환경에 누출돼 섭취하면 체내에서 돌연변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다.
* 탄소-14: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능 물질로, 삼중수소보다 생물농축이 잘 되고, 인체에도 더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있다.

사고 이후 사실을 은폐하기 급급했던 일본 정부가 현재 오염수의 삼중수소 농도를 정확하게 밝혔다 치더라도, 탱크에 보관중인 방사능 오염수를 100배 이상 희석해 법정 고시 농도*에 맞게 방출하려면 방류 기간만도 무려 40년이다. 희석이 완료되기 전에 누출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오염수 고체화, 탱크 추가 건설로 장기 보관 등이 오염수 처리 방법으로 제안됐으나 방사성 물질 농도 반감기를 고려하면 100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비용과 시간을 볼 때 해양 방출의 국제적 비난 정도는 ‘사소한 위험’으로 감수했을 일본의 속내가 빤히 보인다.
* 일본이 방류수의 삼중수소를 '고시 농도' 이하로 방류하겠다는 기준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권고에 의한 것이다. 이 기준은 방사능 피폭 시 아동 같은 대상의 취약성 등을 감안하지 않아 피폭 피해가 과소평가될 수 있고, 여러 핵종에 의한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비과학적이란 논란이 있다.

해양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DDT 살충제의 위험성을 고발하면서 희석된 미량의 오염물질로 발생할 ‘생물농축’에 의한 치명적인 위험성을 강조했다. 또 두 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상호작용했을 때 통제 불가능한 위험성도 경고했다.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도 마찬가지다. 삼중수소를 아무리 바닷물로 희석한들 위험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할 뿐이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인 거대한 바다는 물리적 역동과 생물학적 반응을 통해 방사능 오염물질을 표면에서 심해로,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먼 바다로 실어 나를 것이다. 결국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이르게 되고, 복잡한 생물학적 관계망을 거치면 어떤 치명적인 결과가 우리 미래에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삼중수소를 포함한 방사능 물질에 대한 위험성이 이전에는 없었는가.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지 37년이 지난 지금도 우크라이나 버섯에서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방사성 물질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한국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동일본 8개 현(県)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 중이다. 도쿄 올림픽 당시 선수단의 안전을 위해 식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했던 기억을 잊었는가. 우리가 감시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것은 이 문제가 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안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1978년 부산 기장 고리에서 핵발전소를 처음 가동한 이후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도, 핵발전소 주변 세계 최대 인구 밀집도를 가진 나라이다. 모든 핵발전소에서는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고,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은 이미 방사능 피폭과 오염의 문제를 겪고 있다. 경주 월성 핵발전소 지역주민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발견됐고, 전국 핵발전소 주민들은 갑상샘암 공동소송을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문제는 핵발전소가 갖는 본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을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런던의정서’라 불리는 국제법 위반으로 제소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직접적으로 대응을 할 의사가 없고, 오히려 안전성을 홍보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실질적 피해가 예상되는 제주도민, 부산 지역민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는 중이다. 나만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전국적이고, 동아시아적이면서 지구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가장 가까운 나라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며,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더불어 우리는 방사능의 ‘사소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유혹으로부터 빠지지 않도록 핵발전의 진실을 끊임없이 일상으로 스며들게 하자.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클릭 ▶ 탈핵신문 www.nonukesnews.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