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은 350개인데 작업치료사는 한 명?
병상은 350개인데 작업치료사는 한 명?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4.06 21:21
  • 수정 2023.04.06 2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
‘보건의료 적정인력 기준 마련=양질의 서비스’ 재차 강조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저희 충주의료원엔 병상 350개가 있고요. 작업치료사는 저 혼자입니다.” 세계 보건의 날을 하루 앞둔 6일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신동원 충주의료원 작업치료사의 말에 곳곳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올해로 18년차인 신동원 작업치료사는 “언제나 인력의 부족을 체험하며 일했다”며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우리 의료 현장에 충분히 수용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전에도 병원에 적정인력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는 토론회는 국회에서 여러 번 있었다. 

신동원 작업치료사는 “그 때의 논의들이 충분히 현장에 반영됐는지, 적절하고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이렇게 발표를 하는 까닭은 오늘의 발표 내용이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고, 무엇보다 작업치료 현장에 함께 몸담을 후배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라며 발표를 이었다.

6일 오후 2시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료 종사자에게 적정인력 기준을! 국민과 환자에게 안전과 양질의 서비스를!’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는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이 주관하고, 정춘숙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대한간호협회, 대한물리치료사협회가 주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그간 보건의료인력의 부족 문제를 알려왔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 중이고, 새로운 전염병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보건의료 직종마다 적정한 인력이 계획적으로 양성·배치돼야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이다.

보건의료노조를 포함한 노동조합들과 협회, 시민단체의 노력이 모여 2019년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보건의료인력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또한 2021년 보건의료노조와 정부는 ‘9.2 노정합의’를 맺고 보건의료 적정인력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현재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작업치료사 등 6개 직종의 직무 실태를 조사하는 연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토론회에서 “이미 늦은 만큼 더 속도를 내야 한다”며 “OECD 수준의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적정 인력기준 마련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오늘의 토론회가 적정인력 기준 마련의 소중한 결실로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적정인력
각 직종별로 논의돼야

이날 6개 직종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각 직종에 맞는 적정인력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고민해왔던 대안을 말했다.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간호사)은 “현장의 간호사들은 양질의 간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그렇지 못한 근무환경과 괴리에 자책하고 자괴감에 점차 소진돼 평균 근속 7년 8개월을 끝으로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적정 간호사 배치수준에 대한 현실적 검토가 필요하며, 의료법상 배치기준 표기를 ‘근무조별 실제 환자를 간호하는 1명당 환자 수’로 적용하고 배치수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의료인 등의 정원)는 의료기관에 둬야 하는 간호사의 정원을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외래환자 12명은 입원환자 1명으로 환산)”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는 의료기관의 내부 정보라 국민이 알 수 없을 뿐더러, 내부 정보인 점을 이용해 의료기관에 의료법을 위반할 유인을 준다는 게 최훈화 정책자문위원의 주장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간호사 법정 정원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기관이 지난 6년간 7,353개소에 이르나, 보건복지부에서 제출한 행정처분 현황은 278건에 불과하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남인영 보건의료노조 한국원자력의학원지부 대의원(간호조무사)은 “간호간병통합병동의 경우 환자당 간호조무사 인력을 1:20 이하로 배치해야 제대로 된 간호간병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남인영 대의원은 “현재 간호조무사 한 명이 40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슈퍼맨도 아닌데 어떻게 환자 40명을 볼 수 있겠나”며 “인력부족으로 간호간병재활병동에서는 요양보호사가 간호조무사보다 훨씬 더 많이 배치돼 요양보호사가 환자 간호까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연섭 대한물리치료대학 교육협의회 회장(물리치료사)은 “환자의 기능 회복과 기능 강화 치료는 상당한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행위라 많은 수의 물리치료사들이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돼 있다”며 “의원에서는 의료보험 환자 기준 한 사람이 하루에 30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고, 산재 환자 등은 30명 기준에서 제외돼 물리치료사들이 하루에 담당하는 환자 수는 그 이상”이라고 토로했다.

신동원 보건의료노조 충주의료원지부 부지부장(작업치료사)은 “작업치료사가 근무하는 어떤 기관이든 1인 근무를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1인이 근무하는 기관은 치료사의 업무 공백이 발생하면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없게 되고, 공백은 환자의 치료와 회복에 방해가 되며, 치료실과 기관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민호 보건의료노조 백병원부산지역지부 대의원(방사선사)은 장비 한 대당 방사선사 2명을 필수인력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민호 대의원은 “최소 2명의 인력이 있어야 환자의 안전을 확인하면서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있다”며 “의료기술과 장비의 발달로 방사선사 인력의 중요성이 높아진 만큼 실효성 있는 방사선사 인력기준이 필요하다. 감당해야 할 환자수가 늘어날수록 방사선사가 느끼는 피로도 또한 가중되고, 절대 일어나선 안 되지만 현재로선 의료사고가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상국 보건의료노조 여의도성모병원지부 지부장(임상병리사)은 “임상병리 검사업무를 하는 모든 의료기관에 임상병리사를 필수 배치”하고 “현행 법 기준, 의료기관 종별 특성, 검사업무별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임상병리사 인력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상국 지부장의 조사에 따르면 병원마다 임상병리사 한 명이 맡는 병상의 수는 제각각이다. 올해 기준 강동성심병원과 여의도 성모병원은 임상병리사 한 명이 9.1개의 병상을 맡고 있고, 서울시 북부병원과 서남병원은 임상병리사 한 명이 각각 40개와 19.4개의 병상을 담당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인력 최소기준 만들고
관리는 국가가 책임져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은 보건의료인력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보건의료종사자에 대한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의사인력의 증원”이라며 “2000년대 초반에 결정돼 지금까지 계속되는 의대 정원의 축소는 우리 국민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도 받지 못하면서 과중한 의료비에 신음하는 현재의 의료제도를 초래했다”고 짚었다. 의대 정원이 축소되며 의사가 부족해졌고, 병원들이 ‘의사 모시기 경쟁’에 골몰하며 의사 고용계약 단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게 정형선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흐름은 자연히 간호사 등 다른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억제한다. 병원이 인건비로 쓸 수 있는 재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에 의사가 아닌 보건의료노동자들은 현장을 떠나고, 보건의료노동자는 더 부족해진다. 이는 다시 노동 강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김원일 간호와 돌봄 시민행동 위원은 “실현 가능한 최선의 정책은 건강보험수가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의사의 업무량을 전제로 한 상대가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행위별수가제도로 의사들에게만 건강보험 보상이 집중돼 있다”며 “의사의 소득이 다른 의료 인력의 5~6배라는 비합리적인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의사와 같이 다른 의료 인력의 업무도 건강보험수가체계에서 보상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은 보건의료 적정인력 기준 제도화를 위해 의료법 제36조(준수사항)와 제87조(벌칙) 개정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은 “의료법 제36조는 의료기관 종류에 따른 간호사 정원 기준이 불명확해 의료기관과 간호사, 환자, 국가조차도 이에 대한 해석이 어렵다”며 “의료기관이 준수해야 할 의료인 및 보건의료인력 등의 적정인력과 정원 기준을 법률로 명시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위반 시 벌칙 사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더 이상 토사구팽 당하지 않고 환자와 국민 곁에서 지속가능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보건의료인력국가책임제’와 직종별 인력 기준 마련, 의료법 제36조 개정을 공동 아젠다로 내걸고 우리 노조와 직종협회, 시민단체가 정부와 사용자단체를 대상으로 공동 요구·대응·투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의료기관이 지켜야 할 보건의료노동자의 적정인력과 정원 기준 등을 법제화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강은미 의원은 토론회 막바지에 “보건의료 적정인력에 관심이 있는 의원들이 많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사용자에게 환자 안전을 위한 근무조별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을 만들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보건의료노조의 요구는 2024년까지 일반병동에 근무조별로 한명의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수를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1:5명으로, 종합병원의 경우 1:7명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의 경우 간호조무사 1인당 환자를 20명 이하로 배치할 것을 요구한다. 방사선사와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작업치료사와 관련한 보건의료노조의 공식 요구는 해당 직종 정책간담회와 중앙집행위원회 등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와 홍보 사업도 이어간다. 앞선 5일 보건의료노조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의 만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5%가 법정 적정의료인력 기준을 마련하는 데 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5.1%에 불과했고, 모르겠다는 응답은 32.4%였다. 또한 과반이 넘는 응답자인 58.4%는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고, 56.1%가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우상국 보건의료노조 여의도성모병원지부 지부장, 정민호 보건의료노조 백병원부산지역지부 대의원, 신동원 보건의료노조 충주의료원지부 부지부장, 이연섭 대한물리치료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남인영 보건의료노조 한국원자력의학원지부 대의원,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우상국 보건의료노조 여의도성모병원지부 지부장, 정민호 보건의료노조 백병원부산지역지부 대의원, 신동원 보건의료노조 충주의료원지부 부지부장, 이연섭 대한물리치료대학교육협의회 회장, 남인영 보건의료노조 한국원자력의학원지부 대의원, 최훈화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박수경 건강보험공단연구원 연구센터장, 정형선 연세대학교보건행정학부 교수, 김원실 간호와돌봄시민행동 위원,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 임대식 보건복지부 의료자원과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 박수경 건강보험공단연구원 연구센터장, 정형선 연세대학교보건행정학부 교수, 김원일 간호와돌봄시민행동 위원,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 임대식 보건복지부 의료자원과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보건의 날 기념 국회 대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