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쌍용자동차 직격탄 맞은 평택
휘청이는 쌍용자동차 직격탄 맞은 평택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2.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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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팽겨쳐진 운명,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평택시민, “상하이차·노조 모두 잘못” 비판
Close Up 현장르뽀_ 설 앞둔 평택에 가다

쌍용자동차 위기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조업중단을 계기로 표면화된 쌍용자동차의 위기는 각계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법원에서 회생이냐 청산이냐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중이다.

쌍용자동차 공장이 위치한 평택은 민족의 명절인 설 대목을 맞았건만 썰렁하기만 하다. 평택의 주력 기업 중 하나인 쌍용자동차가 휘청이면서 평택 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위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현장, 평택을 둘러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쌍용차 살리자” 같은 주장, 다른 울림

지난해 12월, 쌍용자동차는 12월분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 이어서 지난 1월 8일에는 쌍용자동차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법원에서 2월 초에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쌍용자동차 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대주주인 상하이자동차그룹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1월 22일.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던 쌍용자동차는 이날부터 설날 휴무에 들어갔다. 이번 설날 휴무는 단체협약에 명시된 연휴에 정상조업일수 4일을 묶어 2월 1일까지 계속된다.

같은 날 오후 2시 평택시청 앞 광장. 5천여 명의 평택시민이 모여 ‘쌍용자동차 살리기 범시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송명호 평택시장 등이 참여해 쌍용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또 평택 출신의 가수 박상민 씨가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같은 시각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금속노조는 완성차4사 조합원들과 함께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는 상하이차를 ‘먹튀’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정부도 쌍용자동차를 상하이자동차에 팔아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며 책임을 명확히 할 것과 함께 총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한날한시에 열린 두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모두 “쌍용자동차를 살리자”고 외쳤지만 그 울림은 달랐다. 한편에서는 쌍용자동차가 살아야 평택 경제가 살아난다며 쌍용차를 많이 사달라고 주문했다. 쌍용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에 지자체와 지역이 함께 힘을 보태겠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 위기가 상하이차의 투자약속 불이행과 기술 빼가기에서 비롯된 만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부터 쌍용자동차 살리기가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약속했던 10억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1조2천억 원)의 투자를 하기는커녕 기술만 빼갔다고 주장하며 상하이자동차의 ‘먹튀’ 행태를 비판했다. 상하이차는 먹튀 논란이 벌어지자 뒤늦게 ‘쌍용자동차 대주주로서 이익이 발생할 때 받게 될 배당금을 재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며 ‘쌍용자동차가 자체 경영이익과 자금조달 능력을 통해 투자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시민들 가슴엔 휑한 구멍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위기로 인해 평택시민들의 살림살이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실정이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쌍용자동차가 흔들리면서 평택엔 한숨이 늘고 있다.

1월 22일, 설을 불과 나흘 앞둔 ‘대목’이다. 하지만 여느 때 같으면 제수를 장만하기 위해 북적댔을 통복시장은 한산하기만 했다. 평택시청 기업지원담당 권병관 과장은 “재래시장 매출규모가 평소에 비해 40~50% 이상 감소했다”고 전한다.

나물과 채소를 파는 송모 씨는 “말도 마라. 보시다시피 장사가 안 된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건어물상회 이모 씨도 “매출이 예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고 울상이다. 이씨는 “사람들이 와도 보기만 하고 지나간다”며 “나가는 것은 포하고 술밖에 없고, 밤·대추·곶감도 안 나간다”고 호소했다. “설 대목이라 전날까지는 가게를 열어보겠지만 기대는 않는다. 그래도 아직 건강한 것에 만족해야지”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통복시장 입구에서 30년 넘게 과일가게를 운영했다는 최모 씨는 시장이 어려운 이유를 “대형 마트가 생기고 나서는 재래시장이 많이 죽었다. 젊은 사람들은 시장에 안 오고 마트로 몰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나 올해는 손님들 발길마저 뜸하다. 올해 설 쇨 일이 걱정”이라며 쌍용자동차의 위기가 결정적인 타격이라고 덧붙인다.

어려운 것은 시장뿐만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늘어선 가게들 중 1월 22일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단 두 곳.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는 임모 씨는 “최근 들어 점심시간에도 빈자리가 많을 정도인데, 오늘(22일)따라 이상하게 손님이 많다”며 “주방에서는 오늘부터 휴무라고 해서 준비도 안 해 놨는데 갑자기 손님이 닥쳐서 바쁘다”고 설명한다. 임씨는 “예전에 비해서 매출이 30~40%는 준 것 같다”며 “쌍용자동차 하나만 보고 장사하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네 탓이오’ 공방 속 싸늘한 시선

평택시민들에게도 상하이차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어쨌든 지금처럼 어려워진 데에는 상하이차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쌍용차지부의 주장도 달갑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위기의 당사자들이 벌이는 설전은 평택시민들에게는 ‘네 탓이오’ 공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택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박모 씨는 “쌍용자동차노조가 그동안 평택에서 너무 군림했다”고 독설을 내뱉는다. 그는 “일도 않고 데모만 하면서 돈은 많이 받는다고 시민들이 다 욕한다”고 전했다. “어렵고 힘든 일은 협력업체에서 다 했다”는 것. “이제 와서 상하이차 욕할 거 없다. 쌍용차는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며 박씨가 던지는 말 속에는 날이 서 있다.

또 다른 택시기사 김모 씨도 “일도 안 하면서 돈만 받아간다고 쌍용자동차노조에 대한 평택시민들의 여론이 안 좋다”고 말한다. “지금 위기는 쌍용자동차노조와 경영진이 자초한 것”이라며 “쌍용자동차가 무너지면 평택 경제가 더 어려워지기는 하겠지만 특별히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김씨는 그러면서 “예전에 쌍용자동차 인수하려고 삼성이 뛰어들었을 때 데모만 하는 강성노조 때문에 인수하지 못한 것 아니냐? 그때 삼성이 인수했다면 오늘 같은 일이 있었겠냐? 평택시민들이 그런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여론이 안 좋다”고 덧붙인다.

통복시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지금 힘든 것은 경제위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평택에는 만도도 있고 중소기업들도 많다”며 “쌍용자동차 무너진다고 특별히 더 어려워질 것은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그래도 그냥 망하게 놔두는 것보다는 튼튼한 다른 기업에서 인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해법,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의 운명은 이제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쌍용자동차가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청산하는 것이 시장의 선택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구성원들과 평택시민들은 어느 누구도 청산을 원치 않는다. 쌍용자동차의 청산이 가져올 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주주와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쌍용차지부도, 청산이 시장의 요구라는 애널리스트도, 대주주의 역할을 하겠다는 상하이차도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청산하라’거나 ‘살려야 한다’는 주장만이 있을 뿐이다. 법정관리 판결을 눈앞에 둔 지금, 불안감이 더해가는 가운데 쌍용자동차와 평택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