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낳듯” 계속 나아진다면
“알을 낳듯” 계속 나아진다면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05.15 00:21
  • 수정 2023.05.15 0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장동이라는 공동체가 좋아질 거란 믿음
[인터뷰] 장진 대성한우에프엔에스 대표이사
장진 대성한우에프엔에스 대표이사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그 시간에는 찾아오셔도 가게로 못 들어와요.” 발골 작업할 때는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했다. 취재도 예외는 아니란다.

장진 대성한우에프엔에스 대표(41)는 26살에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발을 들였다. 시장에서 15년을 지냈지만 아직 만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을 ‘형님’이라고 부른다. 터줏대감 많은 축산물시장에서 흔치 않은 ‘농협안심한우’ 인증을 사업 시작 5년 만에 받으며 장진 대표는 20평 남짓한 가게에서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깐깐한 일 처리 덕분인지 꽤나 유명한 외식 업체에 고기를 납품한다.

“사람과 만남이 가장 즐겁고 소중하다”는 장진 대표의 말은 영업력에만 머무르진 않았던 것 같다. 직원 10년, 사장 5년. 장진 대표는 그간의 인연으로 모인 축산물시장 한우 가게 대표 10여 명과 이웃을 돕기 위한 모임을 갖고 있다.

“시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만난 분들이고 술자리에서 매일같이 보는 사이인데, 함께 좋은 취지의 일을 해보자며 만든 거죠. 만나서 일적인 대화만 하지 말고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이웃을 돕자고. 오래된 건 아니고 5년 정도 됐어요. 제가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예요. 직장생활 할 때는 솔직히 잘 안되더라고요. 지금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벌이가 있으니까요.”

모임에선 두 차례 명절, 그리고 여름과 김장철에 한 번씩 돈을 모아 마장동 주민센터에 기부를 한다. 기부를 하면 주민센터에서 물품을 구입해 도움이 필요한 주민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돈은 법인이 아닌 개인 명의로 내는 거라고 장진 대표는 설명한다.

“마장동에 취약계층이 되게 많아요. 서울이라서 안 그럴 것 같지만 아직도 연탄을 떼는 집들이 있어요. 독거노인들도 많고 취약계층 아동들도 여럿이에요. 어르신이나 어린 친구들이 아무래도 한우를 자주 접하지 못하잖아요. 그러면 저희들이 고기를 내놓는 거죠. 명절 때는 거의 떡국용 고기를 드리고, 구이용도 드려요. 고기는 아무래도 국에 들어간 것보다는 구워 먹을 때 더 맛있잖아요. 김장 때는 김치와 보쌈용 고기를 나누고. 저희한테 고기는 많으니까요. 업체당 20kg씩만 해도 300kg는 돼요. 여름에는 얇은 이불과 선풍기를 지원해요.”

자신이 하는 일이 봉사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장진 대표는 말한다. 계기를 물어보니 군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군대에 있을 때 대민지원으로 장애 아동 봉사활동을 간 적 있는데, 아이들이 사람만 와도 엄청 안기더라고요. 지금도 생각나요. 아마 그때부터 크진 않아도 누군가 돕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웃에 꽤나 진심인 듯한 그는 삶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직접 보고 듣고 겪어왔던 일을 통해서 관심과 도움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민지원을 나갔을 때보다는 10년가량 거슬러 올라간 얘기다.

“집 주변에서 아동급식카드를 사용하려는 아이들을 종종 마주쳐요. 편의점만 가도 단박에 보여요. 뭘 사려고 왔다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거든요.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하면 처음엔 다 거부해요. 최대한 잘 다가가려 하지만, 그 친구들 입장에선 불편할 수도 있을 거예요. ‘뭐 하는 놈인가’ 그러다가도 두세 번 마주치다 보면 벽이 좀 무너지더라고요.

제가 그러는 건 자꾸 예전 생각이 나서예요. 중학교 1학년 때 집이 IMF 외환위기 충격을 세게 맞았는데, 수도·전기를 한 달 동안 못 썼을 정도였어요. 한 달 동안 못 씻은 거죠. 어머니가 수입 사골인지 국물을 한두 달간 끓인 것도 먹어 봤는데, 뼈가 부서지더라고요. 골이 다 나가서 먹을 게 없는 거예요. 학교 가면 수돗가에서 물을 엄청 많은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당시의 저보다 어린 초등학생이라서 진짜 먹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아동급식카드로 살 수 있는 게 한정돼 있더라고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복지의 사각지대.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을 개선해 가야겠지만, 당장 미비한 행정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건 주변의 관심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저 돈만 낸다고 끝난 게 아니라, 직접 어려운 이웃을 마주하면 생각이 달라져요. 주민센터에서 여름 이불과 선풍기를 받아가는 분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두 눈으로 접해본 주변 사람들은 더 도움을 주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좀 다른 데 좀 알아봐야겠어’ 이런 말이 나오는 거죠. 저는 마장동이라는 공동체가 좋아지고 주변도 더 활성화될 거란 생각을 해요.”

아직 젊은 세쌍둥이 아빠에게 지금과 같은 이런저런 활동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물었다. “먹는 게 주는 그 행복이 있잖아요. 그냥 꾸준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하고 있어요. 도움은 전염 같더라고요. 결국 제 아이들 세대에도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생길 테고, 계속 알을 낳듯이 뭐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