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설노동자 ○○○이 노숙한 이유는...
나, 건설노동자 ○○○이 노숙한 이유는...
  • 김광수 기자, 천재율 기자
  • 승인 2023.05.18 08:34
  • 수정 2023.05.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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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들, 한목소리로 “고용 불안” 외쳐
“건설사들, 정부 탄압 기조에 발맞춰 노골적으로 조합원 배제”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국의 건설노동자들이 노숙투쟁을 위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집결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16일 노숙 투쟁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건설노동자들의 손엔 망치가 아니라 돗자리와 텐트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오후 8시께 집회를 마친 건설노동자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 청계 광장 등 시청역 일대에 돗자리와 텐트를 펴고 눕기 시작했다.

사전결의대회, 결의대회, 촛불문화제, 용산 행진 등 고된 일정에 피곤했을 법도 하지만 3만 명(건설노조 추산)의 건설노동자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연신 애꿎은 휴대 전화 화면만 바라봤다.

참여와혁신은 건설노동자들에게 노숙 투쟁에 참여한 이유를 물었다. 건설노동자들은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정부 탄압으로 인한 고용 불안’이라고 답했다. 건설노조를 향한 정부의 날 선 발언(‘건폭’ ‘경제에 기생하는 독’ 등), 수사당국의 구속, 압수수색 등이 계속되자 건설사들이 이에 호응해 노동조합 조합원의 채용을 대놓고 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건설노동자들은 “우리 빈자리는 대부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고된 일정을 마친 후에도 건설노동자들은 쉽게 잠들지 못 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대선에서 “나도 그 사람(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다”고 말한 김선영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서남지대 조합원은 “그때의 내가 원망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금 일하는 현장에서 우리 팀에게 나가라는 눈치를 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던 일감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에게 주면서 일감이 없으니 나가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김선영 씨는 “‘노가다’라며 밑바닥 인생 취급받던 우리(건설노동자)가 거대 건설사들을 공갈하는 거대한 적폐 세력이 됐다”며 “정부 엘리트들이 왜 일용직·육체노동자인 건설노동자에게 그런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는지 모르겠다. (노조를 탄압하면 오르는) 지지율 때문인가?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설노조 조합원이 현장에서 차별받는 이유는 단체협약이다. 건설이 완료되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고용과 실업이 반복되는 건설업의 특성상 건설 현장이 열릴 때마다 매번 노동조건과 채용 등에 대해 교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건설노조는 건설사들이 모인 사업자단체인 철근‧콘크리트연합회 등과 중앙임단협을 맺는다. 이 단체협약은 철근‧콘크리트연합회에 속한 건설사의 현장에 일괄 적용된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북 익산에서 상경했다는 이영효 씨는 “단체협상을 통해 중간에 임금을 떼이지 않고 적정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1년 이상 일했을 때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공휴일에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게 됐고, 추석과 설에 쉴 수 있게 됐다. 토요일엔 평상시보다 두 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게 됐고, 일요일엔 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효 씨가 노동조합 덕분이라며 자랑스레 나열한 혜택들은 근로기준법에 비춰본다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가 대부분이다. ‘건폭’이라 불리며 건설 현장의 무법자인 것처럼 오해받는 건설노동자들은 실은 이 정도 처우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에도 감사해하고 있다.

나 아무개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동북지대 조합원은 “건설노조 조합원을 채용하면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임금 후려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를 고용해 최저임금 이하로 주는 것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원래도 건설사들은 언제나 호시탐탐 건설노조 조합원을 현장에서 배제할 기회를 노린다”며 “그런데 정부가 노조를 탄압해 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건설업체들이 정부를 믿고 노골적으로 노동조합 조합원 고용을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요즘 건설 현장은 지구촌”이라며 “한 현장만 가도 중국, 동남아,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전체 인력의 70~80%를 차지한다. 건설사들은 이들에게 불법 철야 작업을 시키면서도 최저임금도 안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 현장 불법행위를 몰아내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건설 현장의 불법 행위를 만들고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조합원 고용을 위해 노력했던 양회동 씨에 대한 추모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선영 씨는 “고생했다. 남은 투쟁은 우리가 할 테니 좋은 곳 가서 편히 쉬고 계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 아무개 씨는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래도 선택하셨고, 돌이킬 순 없다.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도 끝까지 가보고 싶다”며 결의를 다졌다.

건설노동자들의 '서울의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전국의 건설노동자들이 노숙투쟁을 위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집결했다.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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