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사람과 분리시켜라
문제를 사람과 분리시켜라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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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단체교섭에서 노조는 현재 실질적으로 전임역할을 하고 있는 노조위원장의 전임인정을 단체협약으로 명문화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당초 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던 이 문제가 사측의 거부로 인해 장기간 난항을 거듭하다가 결국 다른 교섭사안에까지 영향을 미쳐 파업에 이르게 되었다.’ (B사의 사례)

 

 

교섭에 있어서 당사자들은 두 가지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섭내용(problem)과 인간관계 즉, 사람(people)에 대한 것이다. 교섭당사자들은 교섭이슈와 관련하여 자신의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합의도출을 원하지만 아울러 상대방과의 관계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교섭과정에서는 교섭당사자들의 평상시 인간관계가 교섭에서의 실질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나타나게 된다. 평소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면 교섭도 좀 더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진행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교섭의 시작단계에서부터 당사자들의 인간관계 장벽에 부딪혀 실질적인 문제는 논의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섭당사자들은 교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말과 행동을 주고받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사람’과 ‘문제’를 하나로 결부시켜 생각하게 된다.

 

‘노동조합의 이번 교섭요구안은 전혀 회사사정을 반영하지 않았어!’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단지 ‘교섭내용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여기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신의 ‘의도나 태도’에 대한 언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섭은 어떻게 진행시켜야 할까. 인간관계의 훼손을 염려해서 ‘문제’에 대해 양보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실제적인 이슈에 대해 양보한다고 해서 관계가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한 원칙 없는 양보는 오히려 앞으로 당신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확신시켜 줄 따름이다.

 

교섭과정에서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서로 상충되지 않고 조화시킬 수 있다. ‘사람’에 관한 것은 부드럽게 다루되, ‘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실질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 부드럽게 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의사전달을 명료하게 하고, 상대의 체면과 자존심을 훼손하거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언어사용을 자제해야 하며, 상대에 대한 선입관을 배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측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이번에는 또 뭘 해 달라고 보자고 하나’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상대방의 모든 언행은 부정적으로만 보이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입장(position)에 근거한 교섭을 시도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가장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게 된다. Win-Win 교섭에 필수적인 적극적 경청은 커녕 속으로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읊조리고 있을 것이다.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교섭이슈를 평상시 또는 교섭과정에서의 인간관계와 철저히 분리시켜 그 자체로서 논의되도록 해야 한다.


앞의 사례에서 B사는 노동조합의 전임자 공식화 요구를 결국 수용하게 된다. 교섭타결 후 위원장이 사측에게 ‘왜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전임자 공식화 요구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으려 했느냐’고 물었을 때 사측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단지 당신이 싫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