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주인노동운동으로”
“종속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주인노동운동으로”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3.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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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트로, 법·상식·관행 완전히 무너진 상태
시정감시?경영감시 통한 섬기는 노동운동 노력
다시 위원장으로 돌아온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연수 위원장

지난 1월 30일,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2008년 임단협 합의안 조합원 투표 부결로 총사퇴한 15대 김영후 집행부에 이어 새로운 집행부 선거를 실시한 결과 14대 위원장을 역임했던 정연수 후보를 16대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로써 서울메트로측의 ‘창의혁신’이란 경영프로그램에 맞서 파업을 조직했던 전임 김영후 집행부는 1년을 채우지도 못한 채 단명했다. 또한 합리적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정연수 위원장의 당선으로 배일도 전 위원장 이후 ‘강성에 이어 온건, 온건에 이어 강성’이라는 집행부 변천의 역사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합원의 선택은 내려졌고 합리적 노사관계를 지향해 왔던 정연수 위원장이 당선됨으로서 서울메트로 노사 관계 또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연수 위원장을 만나 차기 집행부의 방향과 노동운동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종속노동운동이 아닌 주인노동운동으로

- 당선을 축하드린다. 14대에 이어 16대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다시 위원장 후보로 나오게 된 계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 운영 뿐 아니라 노동운동도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진행하던 사업이 집행부 바뀌면 없어지거나 반대로 가니까 노동운동이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뿌리내리기 어렵다. 내가 하던 사업을 미완성한 상태에서 그만뒀으니까 뒤를 이어 새로운 노동운동을 세우려고 한다.

새로운 노동운동이란 노동운동이 소비자, 시민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으로 나아가 노동계가 실제로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경영진의 몫으로만 치부되어 있다. 소비자는 기업하고만 관련되어 있고, 노동은 종속관계에서 자기 임금이해만 요구하는 조직으로 폄하되고 있다. 소비자시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양질의 상품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노동운동이 시민에게 신뢰를 받는 기초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노동운동이 종속노동운동이 아니라 주인노동운동이 될 수 있다. 주인노동운동으로 나아가야 기업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고, 소비자들에게 실질적 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동운동이 기업과 사회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것이 통했을 때 노동운동이 시민사회로부터 양질의 노동운동, 잘못된 정치문화를 대처할 수 있는 세력, 경영을 책임질 수 있는 세력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해방 이후 이때까지 50년 동안 노동운동은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왔다. 시장경제에 맞는 노동운동이 성장하지 못하고 이념의 노동운동만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노동운동을 부정했으며, 노동자들의 조직률도 세계에서 제일 낮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질적 요소, 다시 말해 인적자원은 한국이 좋다. 김연아도 그렇고 박태환도 그렇고.

우리 기업이 나가면 세계일류인데, 왜 노동운동만 좌파이념만으로 60년 운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나. 사회에서 존경받지도 못하고, 사회 실물의 중심이 되지도 못하니까 막연하게 노동해방을 외치면 종북좌파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잘못된 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을 불행하게 하고 어렵게 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 이번 선거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라고 판단하는가.

“이번 선거의 승패요인은 조합원들이 지금 시기에 소위 민주집행부라 불리며 전투적 노조를 지향하는 전임 김영후 집행부를 시험해봤는데, 결국은 전투노조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역량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14대 집행부에서 지향한 과학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노조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조합원들이 허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4대에도 그랬지만 이번 집행부도 제도권 조직을 대상으로 일을 할 생각이다. 제도권 조직이라는 것은 서울시, 시의회, 국회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들이 지하철에 대한 예산 편성, 통제, 행정 감사 등을 실시한다. 이러한 제도권 조직과의 대화, 설득, 싸움을 주로 하는 입장에서 14대는 일을 했었고, 15대 집행부는 민주노총, 재야 전투조직과 연계해서 대정부 투쟁을 해왔는데 결국을 보면 비제도권은 제도를 고칠 수 있는 해결방법이 없다. 목소리를 아무리 높이고, 아무리 투쟁을 해도 거기서 0.1%도 문제해결의 키를 갖고 있지 않다.

14대 집행부는 제도권 조직을 이해, 설득시키고 그것을 통해서 안 되면 단결력을 행사하니까 제도권 조직들이 명분이 없어 해결해줬다. 그런 방법의 차이에 대해 조합원들이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합리적이기에 더 강력한 싸움 가능해

- 전임 김영후 집행부가 제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총사퇴한 계기가 된 사측의 창의혁신 프로그램와 관련해 신임 집행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15대 집행부가 일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파악해봤다. 노동조합법에 단체협약의 조직기구 개편은 노사가 협의하거나 합의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협의라 하더라도 상당한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록도 작성하고 협의가 안 되면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창의혁신 프로그램은 법과 상식을 벗어나서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노동조합의 의견을 듣고, 회의록 작성하고, 상당한 이해당사자의 동의도 구한 바 없고 그냥 문서에 넣고 그 다음에 자기들끼리 임의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법률적 하자가 많았다.

예를 들면 노사 교육시간이라든가 교육계획, 전환배치는 노사협의에 의해 의결해야 하는데 의결 없이 막 진행됐다. 또한 벌금을 맞고도 이행을 안 한다면 법률을 무시한 것이다. 법원 결정에 따라 벌금을 맞았지만 원상회복을 하지 않는 것은 상습적 부당노동행위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못했고, 사측은 조합원의 해고를 걸고, 자기들의 입지를 잡아놓고 무자비하게 일방적으로 한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근로감독관을 불러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상식과 법, 관행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제가 합리적이지만 투쟁을 안 한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더 강력하게 하는데 준비를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 자료준비, 법률적 검토를 토대로 싸움을 하니까 사측이 자신들 스스로가 법률적으로 잘못됐고 상식적으로 어긋났기 때문에 물러선다. 그래서 파업까지 안 가게 된다.

합리적이라고 할 때는 쟁의라는 것은 빼놓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합리적 조직이 분명한 원칙과 내용을 갖고 더 강력하게 조합원을 모아 더 파괴력 높은 싸움을 한다. 또한 이럴 경우 비조합원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 한편으로는 서울메트로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서울시의 지침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사측이 아닌 대정부 투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동감한다. 정권을 잡아서 이기면 거기서 공기업 사장을 내린다. 공기업 경영이란 곧 정치의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한나라당 출신들을 공기업 사장에 앉히고 있다. 자리가 필요하면 그런 사람들을 쓰니 공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된다. 또 정치자금이 필요하면 공기업에서 마련해야 하니까 부실경영을 만들 수밖에 없다. 반면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하면 조합원을 윽박질러 또 그렇게 만든다. 이것은 결국 정치가 헌법을 유린하고 장난치는 것과 같다.

공공부문 개혁한다고 하는데 말장난을 할 것이 아니라 실제 노조와 같이 해야 한다. 우리도 구조조정 한다고 하지만 사측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외주화 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8개 역을 외주화하면서 100명이 필요하다고 치자. 노조원의 신분변동은 단체협약 사항이기 때문에 맘대로 할 수 없고, 모집을 했더니 30명만이 외주회사로 갔다면 70명을 다시 뽑아야 한다. 결국 70명을 재고용해서 인건비가 늘어난 것밖에 없는 결과가 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인 것이다. 5천만 원 써서 법인하나 만들어 여기다가 낙하산 사장이 데려와 연봉 1억씩 주는 것이 분사냐?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갖고 시민사회와 함께 싸우면 크게 어려운 싸움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효과적으로 시민사회에 알리지 못했기 때문에 바보가 된 것이다. 시민들이나 시의회가 알면 땅을 칠 일이 아니겠느냐. 오히려 차라리 어려우니까 고용증대에 힘을 쏟겠다고 했으면 인심이나 받을 수 있었는데….”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가족들이 노동운동 못 하게 하면 죽은 노동운동

- 전임 집행부 기간 동안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등 노사관계가 악화되기만 했다. 사측에서도 노조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조가 방해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영진은 그 자질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집에 있는 것보다 직장에 오는 것이 더 재밌도록 만들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집에 있는 것보다 직장에 있는 것이 더 좋도록 내부고객인 직원들을 대우해주면, 직원들은 그 에너지를 모아서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노동조합이란 조직은 회사가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데 더듬이가 되는 중대한 파트너가 된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조합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CEO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CEO들이나 공공부문 공직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노동조합은 헌법에 보장된 법적단체다. 근로조건 개선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적인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헌법으로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고,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장에도 노조가 거치적거린다고 여기는 것은 헌법을 유린하는 사고방식이다.”

- 그동안 정 위원장이 관심 있게 이야기했던 것이 바로 조합원의 삶의 질 향상이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집단적 노사관계에만 치중되었고 노동자 각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조합원의 삶의 질이 문제다. 삶의 질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인이 행복하고 욕구가 충족되느냐이고, 두 번째는 내가 어떻게 봉사하느냐, 어떻게 남을 도와주느냐가 또 다른 행복의 요소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노동조합 활동에서 조합원들 자녀의 교육 문제, 재무 설계, 가족 내 노인 문제 등은 관심이 없고, 그래서 프로그램도 거의 없다. 조합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러한 가정 복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새로운 요소로 들어가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봉사 기능 또한 강화해나가야 한다. 14대 때도 수해지역 봉사활동을 비롯해 많은 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런 것들을 상설화시켜서 조합원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한다. 노동조합도 도덕적 기능, 사회봉사적 기능을 더 높여야 시민사회가 노동운동을 인정해준다. 처음에는 국민의 친구가 되어주고, 두 번째는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 인정받아 노조에 사회책임을 맡기는 환경으로 가야한다.

노동조합 교육에 강사로 가서 노동운동에 대해서 자기 가족들이 좋아하고, 칭찬하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손을 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가족들이 노동운동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은 노동운동이다.

내 가족이, 내 자식들이 아빠를 노동운동한다고 자랑스러워하게 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편향된 좌파이념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책임지고, 이끌어주고, 윤택하게 하는 운동으로서 역할 해야 한다.”

좌파이념에만 얽매인 낡은 노동운동 지양해야

- 현재 노동운동을 평가하고 변화해야할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제시해 달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남·북한 사회는 이념이 다르다. 북한은 사회주의 이념을 갖고 있고, 남한은 시장경제 사회다. 시장경제 속에서의 노동운동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혁명적 노동운동, 개량적 노동운동, 순수 노동운동. 남한은 내용적으로는 분명한 우파사회다. 그런데 우파사회에서 적응하는 노동운동은 없고, 좌파 운동밖에 없다.

북쪽에 좌파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좌파 이념만 갖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들은 오리지널 좌파 계열이었다. 정치에 나서기 전까지는 사회주의 혁명론자였다. 그런데 정치를 해보니까 시장을 인정 안 하고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당 만들고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노동계 내부에서도 해야 한다.

노동해방이라는 것은 혁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잘 배분해서 각자가 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에 맞는, 또 우리 국가에 맞는 노동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그러한 목소리를 못 내봤다. 왜냐하면 이런 목소리에 대해 어용이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에 맞는 시장을 인정하는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을 정면에서 목소리 내고, 정면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면 허구헌 날 정쟁이나 일삼는 썩은 정치도 긴장할 것이고, 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로 진출해서 우리나라 정치의 질도 개선될 것이다.

새로운 노동운동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종속노동운동이 아닌 주인노동운동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축구를 좋아하면 참 재미있게 공을 찬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 것도 내가 일을 지배하는 한에서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즉 즐겁다. 일에, 사측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에 주인이 되면 내가 지배하는 즐거운 게임이 된다. 게임을 하듯이 진짜 주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 정치이야기가 나와서 묻겠다.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지지 방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히려 노동계는 다양한 정치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당으로 묶지 말고, 이념으로 묶지 말고, 현장의 많은 노동계 출신들이 제도권의 정치구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계 세력이 여·야 구분하지 않고 실물정치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면 그 세력들이 노동자의 삶의 질 문제나 현실의 문제를 많이 다루게 될 것이다.

과거 배일도 위원장이 한나라당 갔을 때 이를 비판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진출함으로서 한나라당 내에서도 노동계 입장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법조계, 학계, 졸부 출신들이 이해 못하는 것을 노동계가 들어가면 시각 변화가 빨리 온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5, 6% 지지를 가지고 그쪽만 가자고 하면, 이념에서 종북론에 가둬놓고 가자고 하면 씨앗이 틀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배타적 지지든 선택적 지지든 노동계는 모든 정치현실에 참여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서울시민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우리가 시민들을 잘 섬기겠다. 섬기는 노동운동이 되도록 하겠고, 시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건강하고 행복한 시민의 지하철이 되도록 시정 감시, 경영감시에 최선을 다하겠다. 관심을 가지고 지하철노조를 성원해주시고 많은 칭찬 해주시길 바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