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변화가 위기극복의 시작이다
현장의 변화가 위기극복의 시작이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3.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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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구조개선 위한 다양한 컨설팅ㆍ실천방안 마련
평생학습시스템 조직을 통한 고숙련 노동자 양성
<우리가 뛴다>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

▲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 개소식 ⓒ 코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한국에 몰아닥친 경제위기는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양한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꼭 어려워져야만 관심을 둔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위기를 미리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적 과제를 제출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소를 잃었어도 외양간이라도 고쳐야지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기에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KOWIN, Korea Workplace Innovation Center)’다.


불합리한 작업장의 혁신 시스템 구축

고성과작업장혁신센터(이하 코윈)는 한국 경제의 가장 기초단위인 현장, 즉 작업장에서의 새로운 혁신 모델을 개발하여 생산성 향상과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1월 13일 개소한 정부출연기관이다. 코윈은 2004년 개원한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와 한국노동연구원 내 임금직무혁신센터가 합쳐져 새롭게 탄생했다.

과거 70, 80년대의 대규모 자본투자를 통한 경제성장은 한계에 봉착했고, 글로벌 경쟁의 격화와 지식·정보화 사회의 발전은 지식 숙련 산업의 발전을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혁신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시행해야 할 작업장 내 노동자의 기술숙련도 향상의 중요성은 점차 증대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인력개발 투자는 여전히 미숙한 상태다.

이와 함께 작업장 자체의 불합리성도 지적된다. 장시간 노동, 높은 산재율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작업공정의 개선, 작업 표준화, 작업량 및 품질에 대한 통제 등이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코윈 이영호 박사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진단해보니까 매우 낮았다. 일본은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위기가 오면 더 높은 경쟁력으로 극복한 것이다. 더 이상 요행수를 바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작업장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고성과를 이룰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코윈에게 맡겨진 임무다.

▲ 작업장혁신위원회 회의 모습  ⓒ 코윈

4대 사업을 근간으로 작업장 혁신 나서

그렇다면 작업장 혁신이란 무엇인가. 김수곤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 서기관은 코윈이 발간하는 월간 ‘윈’에서 “기업이 외부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장 수준에서 ‘일하는 방식’ 및 ‘사람관리 방식’이라는 사회시스템의 변화 관련된 제반 혁신활동을 의미한다”며 “‘고성과 작업장’은 노사파트너십 기반 위에 지식근로자를 육성하고, 참여를 촉진하는 고성과 작업관행들을 체계적으로 활용함으로서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고 근로생활의 질을 개선해 나가는 조직”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직무개선, 임금제도 개선, 노동자 숙련도 향상을 위한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코윈의 사업 또한 김 서기관의 설명처럼 △ 근무제도 개선 △평생학습 컨설팅 및 실행 △ 임금 직무혁신 △ 노사파트너십 구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영호 박사는 “이 4가지가 작업장 혁신을 위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각 기업에 적용할 통합진단 툴을 개발해서 컨설팅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보여주고 성과분석을 통해 실천적인 개선과제를 제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구체화할 실행 사업으로 코윈 설립 이전의 뉴패러다임센터는 기업 컨설팅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코윈은 컨설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량의 교육사업들을 전진배치해 기업내부의 인식전환부터 접근하고 있다.

송철복 코윈 홍보팀장은 “기업의 인사노무담당자, 노사협의회 위원 및 노동조합 간부, 컨설턴트 및 노무사 등 크게 3부류의 교육 대상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작업장 혁신의 필요성 및 추진방법에 대한 교육을 통해 작업장 혁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부터 잡아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퍼실리테이터 양성과정 공개 워크샵 ⓒ 코윈

고용구조개선사업으로 시작해 사업영역 확대

▲ 중소기업구조개선사업 공모
비록 코윈은 출범한지는 채 2개월도 안됐지만 현 시기 가장 중요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업으로 만들고 있다.

첫 번째 사업은 ‘중소기업구조개선사업’이다. 중소기업에 고용된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중소기업 인사관리체계 개선 및 비정규직 능력개발 프로그램 구축, 임금 및 직무 재설계 컨설팅을 통해 고용구조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사업 목적이다.

이에 대해 이영호 박사는 “경제위기로 비정규직의 어려움은 더 악화되고 있다”며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될 수 있는 가능성 중 하나는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인사관리역량”이라고 지적했다. 즉 중소기업의 인사관리역량을 증대시켜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서 오히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 고용구조개선 사업을 첫 번째 사업으로 배치했던 것이다.

두 번째 사업은 ‘여성고용촉진 컨설팅비용 지원사업’이다. 여성의 취업과 고용안정을 위해 직장 내 인사체계 및 모성보호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컨설팅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여성의 취업과 직장생활은 남성에 비해 제약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고용불안을 느끼는 것이 바로 여성이다.

그러나 여성을 일시적 일꾼 정도로 생각해서는 장래 한국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이미 고령화 저출산 사회로 이전하고 있는 한국에서 여성 인력을 경시할 경우 심각한 고용난과 함께 저숙련 노동의 확대로 자치 성장동력의 훼손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코윈은 이번 사업과 함께 여성노동력의 노동시장 진출을 돕는 다양한 장치로 △ 적극적 고용제도 △ 여성고용촉진 컨설팅 사업 △ 가족친화경영 확산 등을 이후 사업의 아이템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고령자 실업의 심각성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도입, 정년 연장 및 계속고용유지 등 고령자 실업대책 마련을 위한 ‘고령자 고용안정프로그램 컨설팅비용 지원제도’ 또한 운영하고 있다.

컨설팅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코윈의 사업을 보면 주로 컨설팅 지원사업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코윈의 사업은 컨설팅을 통한 해결책 마련과 그 실행 방안의 확산에 있다. 이에 대해 송철복 팀장은 “고객맞춤형, 실행 중심형 컨설팅”이라고 규정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회사 내 각 부서 현장 대표들과 코윈에서 파견한 컨설턴트들이 TF팀을 구성해 3~4개월 동안 매주 회의를 통해 문제점 진단을 하면 그것을 전체 직원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대해 이제 어떤 실행단계를 거칠 것인가에 대해 TF팀은 다시 논의에 들어간다. 이후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할 사내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을 통해 문제점 해결에 대한 실천적 실마리를 마련한다.

이영호 박사는 이러한 사내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은 ‘지·현·완·전·자’로 불리는 5가지 학습원리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작업장 혁신을 위한 리더를 양성해 그들이 각 기업에 맞는 구체적 실천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현·완·전·자’는 지속학습, 현장학습, 완전학습, 전원학습, 자율학습의 앞 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지속적이고,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이어야 하고, 직무뿐 아니라 교양이 포함되는 완전학습이어야 하며, 엘리트 중심이 아닌 직원 전원이 교육받아야 하고, 강제가 아닌 스스로 참여하는 학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호 박사는 “작업장 혁신을 위한 현장 문제 해결에는 그에 따른 현장 리더가 반드시 필요하고 전 구성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5가지 학습원리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또한 약 10여 개월 동안의 이러한 컨설팅과 실천작업이 종료되면 그 결과는 곧바로 발표를 통해 다른 사업장에도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단순 컨설팅 회사와 코윈의 다른 점이다.

ⓒ 코윈

경영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

이러한 코윈의 사업 진행은 개별 기업 구성원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코윈은 강제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자문기구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강제하는 권한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코윈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경영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구조개선이라는 것은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이익을 위한 준비단계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 이익만을 생각하면 이러한 개선작업은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무료라는 것 때문에 실시했다가 10개월이라는 장기간 동안 이런 저런 회의를 진행하고 실행해보다 지쳐서 나 몰라라 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그러나 경영자의 의지가 분명한 곳은 그 결과 또한 명확하게 등장한다. 과거 뉴패러다임센터 시절의 사례이긴 하지만 제일화재해상보험(주)의 사례는 그래서 중요하다. 제일화재해상보험은 특이하게도 2000여 명에 이르는 재무설계사(FP)를 대상으로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재무설계사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그런 대규모의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의외지만 ‘4조 1학습’ 체제(5일 근무일 중 하루를 완전히 교육에만 할애하는 제도)를 유지했다는 것은 대단히 신선하다.

그 결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평생학습 프로그램 실시 이후 영업직인 재무설계사가 일주일 중 하루를 온통 교육에만 쏟아부었는데도 매출은 7배 이상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만약 당시 제일화재해상보험의 경영진이 “어떻게 하루를 온종일 교육에만 몰두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반대했다면 절대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근무시간 줄이고 교육시간 늘렸더니 생산성 향상

<사례> (주)KTP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나

(주)KTP는 폴리아세틸 제조업체로 (주)코오롱과 일본의 도레이사가 7:3의 비율로 합작투자한 회사다. 2005년 말 당시 뉴패러다임센터의 컨설팅을 지원받아 당시 3조 3교대제였던 근무교대제를 4조 3교대로 전환했다.

또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들의 역량 제고를 위한 학습 체계를 구축하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실시했다. 이후 체계적인 현장교육과 노동자들의 의욕상승은 만년 적자였던 KTP를 2007년 말 흑자전환에 이르게 했다. 이는 또다시 경영성과에 대한 인센티브의 대폭 증가로 전체적인 생산성을 또 한번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최초 회사설립 당시 일본 도레이사의 상용기술이 아닌 파일럿 기술을 들여와 공정 안정도가 떨어졌던 부분을 현장교육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가 안정된 생산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는 성과까지 올리게 됐다.

중소기업이 경쟁력 가져야

이러한 성과들은 코윈으로 하여금 지금의 사업들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작업장 혁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거의 없다. 전문가도 부족할 뿐더러 현재는 추상적인 이미지만 구축되어 있는 상태다.

코윈도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시인한다. 그렇지만 어쩌면 코윈이 제기하고 있는 고성과작업장 혁신이란 것은 한국에서 이제 시작일 뿐이고 시작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은 인력에 대한 투자를 ‘불필요한’ 투자 정도로만 사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영호 박사는 “실제 코윈이 달성해야 할 것은 현장의 조직이 도요타처럼 개별 작업자들의 학습을 통한 현장 조직구조 강화와 현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며 “이는 노동자의 다기능화, 숙련화를 통해 안전사고율을 낮추는 동시에 품질 수준을 높여 고 생산성을 이루기 위한 기본적 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CEO와 현장 근로자를 레벨업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중소기업 경쟁력이 대기업의 경쟁력이고 한국의 경쟁력이다. 지금에서야 하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의 현장 경쟁력이 높으면 어떤 위기가 와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종속된 하청계열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들이 그 기업 자체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