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클’ 기회를 주자
‘혼자서 클’ 기회를 주자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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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문제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열어주길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노리단 단장, 문화평론 및 기획
저서 <아내와 걸었다> <일하며 논다, 배운다>
<내 안의 열일곱> <너 행복하니?> 등
오늘은 제 연재글의 타이틀이 <혼자서 크는 아이>라고 된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할까 합니다. 혹시 <아무도 모른다>는 일본 영화를 보셨는지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요, 부모가 버린 아이들이 자기들 힘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낸 영화랍니다. 한번 꼭 보시기 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를 보신 어른들이 어린 자녀들을 버린 부모를 비판하는 시선으로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하는 데 반해서, 실상 이 영화가 드러내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 없이 자력으로 이 험한 세상을 스스로 읽고 대처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답니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홈리스 중학생>이라고 역시 일본의 실화인데요.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와서는 아들에게 이제 집이 망했으니 각자 알아서 살자고 합니다. 그때부터 중학생 아들은 공원에서 홈리스로 살아가는데요, 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책이 영화로도 나오고 드라마로도 나온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어른들은 부모의 무책임을 말하기도 하겠고 세태를 한탄하기도 하겠지만, 거리에 나와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아이가 어떤 선택과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TV CF에는 이런 게 나오더군요. 아빠의 바쁜 아침 출근 준비를 보고 어린 딸아이가 돼지 저금통을 들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오늘은 출근 안 해도 돼. 내가 돈 많이 모아뒀어”라고요. 거기에서 아빠는 웃지만, 어린 딸아이의 그 대사가 함축하는 바는 실로 큰 것 같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에 대해 묘한 역설을 담고 있지요. CF가 아니었다면 아빠는 그날 출근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안 그러면 아마 돈 벌러 바삐 산 아빠는 어느 날 해고를 당하고도 그 소식을 말할 수 없어 가짜 출근을 할지도 모르겠고, 그 무렵이면 어린 딸아이는 다 자라서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이상 원치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주절주절 했습니다만,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이 그런 상상을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내 아이가 어느 날 부모가 없어지고 집도 없어진 상황에 처해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면, 수중에는 돈도 없고 그렇다면, 내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도 스스로 그런 상상을 해봤으면 합니다. 무겁지 않게, 슬프지 않게, 그냥 그런 상상을 해보면 아마 아이는 이것저것 궁리하겠지요. 공부는 당장 어떻게 하며, 먹고 사는 것은, 잠자리는, 하고 싶은 문화생활은, 돈도 벌어야겠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행동하게 될까요?

‘혼자서 크는 아이’라는 뜻은 별 거 아닙니다. 부모가 있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거기에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일과가 꽉 찬 우리 아이들에겐 ‘혼자서 클’ 기회가 사라져버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혼자서 크는’ 상황이 주어지면 아이들은 정말 혼자서 큽니다.

문제는 부모가 있고 모든 것이 갖춰줘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크는’ 경험을 통해서만 커지고 길러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우리 각자의 인생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자립심, 독립심, 자발성, 주도성 등 뭐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만,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채, 나에게 주어진 어떤 문제 상황을 스스로 대처해볼 기회가 없는 가운데라면, 아무리 좋은 교육과 애정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힘들 것입니다.

글을 마치겠습니다. ‘혼자서 크는 아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겐 ‘혼자서 클’ 공간과 시간과 관계의 작은 틈마저 모두 꽉 막혀 있는 것 같습니다. ‘막장교육’이란 소리가 나오는 세상이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내 아이에게 그런 틈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글을 끝으로 <김종휘의 혼자서 크는 아이> 연재를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호를 한번 쉬면서 (실은 해외 출장을 가버렸다는 핑계로 편집진에게 펑크를 낸 무례를 저지른 것입니다만) 보니 “아,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하는 걸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새롭게 꺼낼 이야기가 제 안에 더 남아 있지 않기도 하고, 제가 관여된 일들의 환경이 변하고 있어서 당분간 청소년에 대한 글을 쓰기엔 적합하지 않기도 해서랍니다. 그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