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차원의 직업·직무 능력 표준 시급하다
국가 차원의 직업·직무 능력 표준 시급하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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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기업에 맞는

맞춤형 인력수급은

경쟁력의 첫단추

“신입사원을 뽑으면 처음부터 다시 교육시켜야 한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기업 입장에서는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월급 주면서 교육시켜야 하는 실정이다.”


한 제조업체 인사담당 임원의 푸념은 비단 이 기업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직업, 직무능력 교육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로 전경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학교 교육에 대한 기업 만족도가 3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같은 결과는 현재의 직업·직무 교육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수의 취업준비생들이 자신이 선택하고자 하는 직업이나 직무에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자동차 관련 기업에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이모(26)씨는 기계공학 전공이다. 이씨는 “앞으로 모듈화가 진행되면 완성차 업체보다도 대형 부품업체가 상당히 전망이 있을 것”이라며 부품업체에 엔지니어로 취업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씨는 과연 부품업체에 적합한 인물일까.


국내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 중 하나인 (주)만도의 신종국 인력개발팀장은 ‘No’라고 얘기한다. “흔히들 자동차 관련 업체 하면 기계를 다루는 걸로 아는데, 최근에는 자동차 부품이 거의 전자장비화 되고 있기 때문에 기계를 아는 전자 인력, 이른바 메카트로닉스 엔지니어가 절실합니다.” 하지만 국내 대학들은 메카트로닉스 분야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보다 못한 만도는 경북대와 협정을 맺고 ‘만도 트랙’이라는 인력개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매년 20명씩의 기계, 전자 전공자들을 뽑아 자신들에게 맞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있는 것.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이닉스는 경남 거창기능대, 청주 충청대 등과 제휴를 맺어 반도체장비학과를 신설키로 했다. 전자부품 업체인 LG이노텍도 전남대에 주문형 석사 과정을 신설키로 했고, 넥센타이어는 경남정보대학과 산학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학교에서 대체 뭘 가르치길래
이런 기업들의 노력은 산학협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역으로 보면 지금의 교육 프로그램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경련은 국내 기업들이 기술인력 7만명의 재교육에 부담하는 비용이 연간 2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기계, 전자, 반도체, 조선 등 기간산업 인력에 대한 교육 및 수급을 위한 협의체를 민간 중심으로 구성하고 이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별 인력자원개발협의체’는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이 조사와 분석 업무를 지원한다. 또 교육인적자원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등이 나서 협의체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맞춤형 인력 양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썩 미더워하지 않는 눈치다. 전자업체의 한 인사 담당 임원은 “그동안 정부가 이런 대책을 한두 번 내놓은 것도 아닌데, 이제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정책이 불신을 받는 이유는 그간 일자리 창출, 직업훈련 등과 관련한 많은 정책들을 내놨지만 ‘실적 올리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위원회에 참석 중인 한 기업 임원은 “위원회에 참석해 보면 정부 부처 간에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다투거나, 아니면 아예 서로 업무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정책 대안 모색보다는 위원회를 개최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더라는 것.


이 임원은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목표나 진행 과정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찾아내 개선해야 하는데, 정부에서 하는 일은 정책을 내놓고 난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그 정책을 폐기하고 다른 정책이나 제도를 내놓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표시했다. 기계업체 HR 담당자는 “산업별로 필요한 직무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국가적 차원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재교육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직업 직무능력 표준체계 구축 사업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이 사업은 현재 한국직업능력개발원과 산업인력공단에서 연구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장홍근 연구위원은 “현재 이 작업은 교육부, 산자부, 과기부, 노동부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국가적 중대 사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부처 간 경쟁도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다만 이를 조율하고 성과를 확산시키기 위한 상급단위의 업무 조정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 직업과 직무에 필요한 자격이나 기능을 정리하는 것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학이나 직업훈련 기관이 작업현장에서 필요한 직업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한 당장 글로벌 경쟁 속에 내몰린 기업들로 하여금 이중의 부담을 안게 하는 것이다. 완성차업체 기감 K씨는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설비를 자동화하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것은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면서 “그러면 남는 것은 ‘사람’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인적자원의 질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


따라서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능력계발의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기업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할 사업이다. 아울러 재직노동자 재교육을 위해 노동조합과 함께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