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들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해져라!
백수들이여 기죽지 말고 당당해져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4.0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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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만 하기보단 할 수 있는 일 찾아 해야
사회적기업 만들어 실업자 취업 도울 계획
14년차 ‘프로 백수’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대표

정부 통계로도 우리나라 실업자 수는 100만에 육박한다. 일부에선 350만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고, 취업을 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도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2009년 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백수들의 놀이터 백수회관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새삼 ‘백수’에게 관심이 쏠린다. ‘이 바닥’ 유명인사인 ‘프로 백수’가 있다. ‘전국백수연대(이하 전백련)’ 대표를 맡고 있는 주덕한 씨(40)가 그 주인공.

그는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회사에 다니다가 영국 유학을 가려고 회사를 그만뒀다. 영국에 갔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뒤에는 잠깐 동안 인터넷포털업체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접은 1996년부터 그는 실업자로 지내고 있다. 두 권의 책도 냈다. IMF 외환위기로 실업문제가 심각했던 지난 1998년에는 전백련을 만들었다. 전백련은 2006년 서울시에 정식 NGO로 등록됐다. 전백련은 ‘백수회관(http://cafe.daum.net/backsuhall)’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백수회관의 ‘쥔장’이다.

화려한(?) 경력을 지닌 주덕한 씨가 13년 동안 백수로 지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2년 버티기도 힘든 백수생활을 13년이나 했다니 뭔가 특별한 생존비법이 있을 터.

광화문의 대형서점에서 만난 그가 인터뷰 장소로 택한 곳은 모 은행 영업점. 돈 들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1시간여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청원경찰이 자꾸 눈치를 주지만 그는 아랑곳 않는다. 이런 게 한 가지 비결이겠구나 싶다.
“조용하게 얘기 나누기 좋은 곳이 몇 곳 있어요. 요즘 너무 자주 갔으니 오늘은 여기서 이야기하죠.”

움츠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요즘엔 활동이 많아서 조금 바빠요. 보통 5시 정도에 일어나서 카페 회원들이 올린 글을 봐요. 아침 먹고 잠시 쉬었다가 12시에 ‘0시클럽’ 모임에 나가죠. 어제(3월 24일) 모임 때는 구직명함을 만들고 남대문시장에서 직업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저녁 7시부터 희망대학교 행사에 회원들과 함께 참여했다가 대학 언론사와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오니까 11시30분쯤 됐더군요.”

0시클럽은 매일 낮 12시에 서울 삼성동에서 모임을 갖는다. 여기서 이력서를 작성하거나 명함을 만들고, 이미지메이킹, 개인기 찾기 등 구직활동에 도움이 될 자기계발 활동을 한다. 올해 2월 말에 시작한 이 모임의 목표는 ‘한 달 이내에 취업하기’다.

“실업자들은 스스로가 위축되기 쉬워요. 그럴수록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0시클럽은 방안에, 카페 안에 움츠리지만 말고 밖으로 나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든 일종의 자구프로젝트죠. 밖으로 나가서 일단 부딪쳐 보는 겁니다. 실업은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사회적인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아무 것도 않고 그냥 있을 수는 없잖아요?”

0시클럽은 주덕한 씨의 말대로 일단 ‘부딪치고’ 본다. 실업극복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일단 해보는 것. 그러다 보면 취업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0시클럽 회원들은 작성한 이력서를 들고 ‘청계천 잡페어’ 같은 취업행사장을 찾기도 하고, 직업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 무작정 일을 해보기도 한다.

쓸 사람은 써야 한다

프로 백수인 주덕한 씨의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될까? 최대로 잡아도 30만 원을 넘기지 않는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교통비와 휴대폰요금이 3만~3만5천 원 정도씩 들어가고 활동비가 10만~20만 원 정도. 활동비는 주거비 외에 식비와 도서구입 등 문화생활비로 들어간다. 누나 집에서 생활하면서 10만원 씩 생활비를 낸다. 서울에서 3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는 건 어지간한 짠돌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백수는 수입이 불규칙적이에요. 어떤 때는 전혀 없기도 하고, 지난 번에는 인구통계 알바를 15일 동안 했더니 70만 원이 나왔더라고요. 보통 때는 출연료나 인터뷰, 정책자문 비용 등으로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들어와요. 생활비 외에는 수입이 없을 때를 대비해 저축합니다. 백수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생활하는 게 거의 일정하게 맞춰져요. 요즘처럼 활동이 많아지면 교통비 같은 게 더 들어가기는 하지만 한 달 지출에 크게 변화는 없는 편이죠.”

이렇게 아끼는 게 몸에 밴 그이지만 ‘거금’ 6만 원을 들여 일본을 여행한 적도 있다. 전백련을 막 만들었던 1998년에 일본 백수단체와의 교류를 위해 무려 15일 동안 일본에 다녀왔다. 수중에 한 푼도 없던 그는 카메라 렌즈를 팔아 생긴 6만 원을 일본 여행에 ‘아낌없이’ 들였다. (6만 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비결’은 백수회관으로 문의하면 혹시 알려줄 지도 모른다.) 그때 만났던 프리터족(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직까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 경우를 보면 부족하긴 해도 항상 쓸 만큼은 어떻게든 생기더라고요. 무턱대고 아낀다고 능사는 아니에요. 저 같은 백수들이야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쓰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은 써야 해요. 모두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면 식당은 뭐 먹고 살겠습니까? 아낀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며 아껴야죠.”

백수명함을 만들어라

백수로 생활하는 게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주덕한 씨는 잃는 게 있으면 그만큼 얻는 것도 있다며 백수로 생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적인 직장생활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란다.

“얼마 전에 카페에 한 여성 실업자가 죽고 싶다는 글을 올렸어요. 모든 일을 중단하고 그 여성을 만나 상담을 했죠. 물론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일이지만 가치 있는 일 아닌가요? 일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죠.”

그렇다고 불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관계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백수를 다르게 보는 시선 때문에 친구들 모임이나 전화 받는 것마저도 피했다는 경험을 들려주면서, 그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백수라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2만 원 들여서 만든 백수명함을 내보인다.

“생각하기 나름이죠. 백수가 가진 최대의 특권은 시간 여유에요. 보통 직장인들은 외국어학원이나 스포츠센터 등록하고도 못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하지만 백수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죠. 실업자가 됐어도 회사에서 잘렸다고 한탄하기보다 잠깐 쉬면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는 백수라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즐기라고 충고한다. 길은 간단하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이미 백수가 됐다면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 요즘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백수들이 구직활동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유로 본인이 원하는 취업을 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아요. 이들이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갖고 생계수단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건 영업비밀인데 분야는 제과제빵입니다. 지금 시장조사와 마케팅 계획을 짜고 있고, 조만간 제품연구실을 개소할 예정입니다.”

주덕한 씨가 앞으로 언제까지 백수로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보통 백수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직장에서 돈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히 백수다. 하지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자신만의 일을 찾는 그에게 굳이 호칭을 붙인다면 ‘백수전문가’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뒷담화_ 백수의 눈으로 바라본 실업문제

주덕한 씨는 요즘 언론 인터뷰를 자주 한다. 실업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에 ‘프로 백수’라는 그의 명함이 ‘먹히는’ 것. 그는 이런 인터뷰가 백수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적극적이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다른 데가 있다. 모두들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왜 하필 청년을 29세까지만으로 한정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한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들이 넘쳐나지만 30세만 넘으면 그런 대책들과는 영영 ‘빠이빠이’다.

인턴제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다. 인턴이 원래 취업을 전제로 한 것인데, 요즘 이야기하는 인턴은 단순한 임시직 아니냐고 비판한다. 인턴이라는 말 대신 임시직이라고 이름을 바꾸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더구나 이런 인턴마저도 30대나 고졸 미취업자들과는 인연이 없는 정책이라고 덧붙인다. 인턴이 되려면 29세 이하 대졸이어야 한다는 것.

그는 실업자들 중에는 백수회관에 죽고 싶다는 글을 올린 사람처럼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귀띔한다. 이런 이들이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면 생목숨 끊겠다는 사람 앞에다 두고 규정만 따진다는 불만도 쏟아낸다.

딱히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얼마 안 되는 월세도 못 내 살던 방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실업자들이 도움을 청하면, 기관에서는 노숙자가 아니어서, 성매매여성이 아니어서 머물 곳을 제공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기 일쑤라고 전한다.

그는 실업자가 아닌 정부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당사자가 아닌 바에야 얼마나 실업자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겠냐는 것. 그래서 그는 요즘 실업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은 그런 취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