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활동은 행복해야 한다”
“조합 활동은 행복해야 한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4.0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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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즐기는 행복한 위원장, 즐거운 노동조합을 꿈꾸다
시작은 솔직하게 다가서는 마음으로부터
전국철도노동조합 김기태 위원장

2000년 철도노조 민주화투쟁으로 해고된 뒤, 2007년이 되서야 복직하면서 김기태 위원장은 “이제 제대로 한번 살아봐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7년이라는 해고기간은 김 위원장에게 초조함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경제적 고통이 수반된 험난한 기간이었다.

그런 그에게 복직 2년 만에 노조 위원장으로 나서달라는 부탁이 들어왔고 그는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전임 집행부가 총사퇴하면서 조합 활동 자체가 어려운 시기에 모든 현장조직을 아우르는 통합집행부를 구성하려는 노조 활동가들의 간절한 부탁을 그는 외면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고를 당해도 아무 말 없었던 아내가 위원장 선거에 나가면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어도 어려운 중책을 맡은 김 위원장은 조합 활동은 무조건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행복한 얼굴의 그이지만 닥친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인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사장 선임, 계속되는 철도산업 민영화, 풀리지 않는 KTX 여승무원 문제 등 ‘난제’들뿐이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행복한 조합 활동을 만들어 나갈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합원들에게 받은 사랑 돌려주고 싶다

08년 임단협 과정에서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어렵게 지금까지 왔다. 이로 인해 새롭게 집행부를 꾸리는 것조차 힘들 것이란 평가가 있었다. 당시 위원장으로 입후보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 들어서 사실 상황이 안 좋았다. 철도노조만 봐도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2007년, 08년 투쟁이 제대로 성과 있게 마무리되지 못해 조합원들의 노조에 대한 신뢰가 일정정도 무너져 있었다.

또한 열심히 활동해왔던 간부들이나 현장 활동가들도 투쟁의 피로감과 그 과정에서 입었던 상처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나 또한 복직 이후 막 현장에 적응하는 단계였다. 어쨌든 조합 내부에서 차기 집행부를 어떻게 꾸릴 것이냐는 논의가 진행됐고 대단히 어려운 시기이니 이번에는 통합된 집행부를 꾸려야 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래서 통합집행부 추진위가 만들어지고, 추진위 속에서 이런 저런 후보를 논의하는 데 나한테까지 공이 온 것 같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사람들이 찾아 왔을 때는 진짜 안 하고 싶었다. 몇 차례 거절하다가 나중에 승낙은 했다.

해고기간 동안 조합원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주고 힘들었을 때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고 했던 그런 관계들이 이번 위원장을 맡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최종적으로 하겠다고 하면서도 사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조합원에게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08년 임단협 최종 합의가 조합원들의 승인을 받았지만 실제로 얻은 것은 없지 않느냐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쨌든 상황이 썩 좋은 것이 아니었다. 연말에 정치, 사회적 분위기도 경색된 상태였고 임금, 단협, 해고자 문제까지 해결하기가 사실 벅찬 과제였다. 그나마 그런 조건 속에서도 준비 과정에 많은 조합원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힘을 기울였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성해야할 지점은 있다. 정말 우리가 그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밑에서부터 정말 제대로 준비해왔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이번 선거운동하면서 조합원들에게 들은 것이 조합으로부터의 일방적 지침이나 지시는 있는데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소통의 움직임이나 소통관계들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것이 제도로 해결되지 않으면 이후 어떤 투쟁을 하던지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잘못과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08년 임단투에서도 발전 및 지하철과의 공동파업 등을 기획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운수연맹의 지원 또한 미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 비해 연대의 힘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데 이를 복원할 방법은 무엇인가.

“철도 뿐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 진영이 위기라고 본다. 솔직하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어쨌든 노동운동 진영이 제대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이 말로만으로는 안 된다. 사실은 나의 잘못, 나의 부끄러운 점을 드러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문제해결의 방향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잘못된 것을 감추거나 작은 것을 큰 것처럼 과대포장하면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지 해결이 안 된다.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연맹이든 단사든 간부나 활동가들 모두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적은 지혜나마 모아가는 것 필요하다.

내 잘못, 네 잘못만 이야기하면 결국 상처만 받고 갈라치기 밖에 더 되겠나. 내 잘못을 드러내는 진정어린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질 수 있다. 연대의 문제도 그러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자본과 정권의 총체적이고 상시적이며 전면적인 탄압에 대해 실제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싸운다면 백이면 백 전부 진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적은 힘이나마 모아야 하고 그러면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연대 틀만 형성된다면 예전과 같은 위력 있는 투쟁모습도 복구하고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도 상황자체가 각 사업장이 떨어져 있어 조합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여기에 소통구조를 담보할 수 있는 구조도 형성되지 못해 조합원 사이에서는 대의원 만나기도 힘들다는 불만도 있다.

“사실 철도 같은 경우 활동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물론 집단 사업장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원격지에 흩어진 사업장이고 전국적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된 산업이다. 거기에 3조 2교대 근무로 근무시간도 일정치 않다. 사실 한 개 지부에서 소속 조합원을 다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직접적 소통의 관계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러면 그러한 것을 메울 수 있는 소통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까 조합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도 없는데 매번 지침과 지시만 내려오니까 조합원이 대상화되는 것이다.

노조의 주인으로서 정체성은 사라지고 어떤 사업이나 투쟁의 대상으로 전락되는 소통의 부재가 조합원들의 조합에 대한 소외감을 부추긴다. 그래서 이번 집행부에서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제반 사업이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코레일 사장으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선임됐다. 전임 강경호 사장도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인사 중 하나로 지목됐었고 결국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또 다시 낙하산 사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철도산업에 대한 전문성도 없는데다가 내부의 논의를 통해서 정말 식견과 인품을 가지고 철도산업을 비전 있는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강경호 사장에 이어 허준영 씨의 낙하산 사장 선임은 정말 난감한 문제다. 철도공사 사장은 정권의 자리만 채워주는 곳으로 전락된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도 반감이 심하다. 국민들도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정책 중 하나가 인사정책이라고 이야기하듯이 실제 조합원, 비조합원을 떠나서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생각이다. 일간지 1면 광고, 기자회견, 현수막 게시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국민들에게 MB식 막무가내 인사가 얼마나 전문성도 떨어지고 비효율적인가를 알려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철도산업에 대한 국가 직접 투자 늘어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고속철도 레일 패드와 관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사시점의 비리가 주요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위원장은 이런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민들은 이 문제를 철도공사의 문제라고 보시는데, 사실은 철도공사와는 별도인 철도시설공단의 문제다. 잘못된 비리가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부실한 고속철도 시공이 이루어진 것은 근본적으로 운영과 시설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디젤에서 전기로 운영하는 단계인데 그럴수록 운영과 시설이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운영권자가 잘 하려고 해도 시설이 부실화하면 안전이 담보 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분리해서 건설 따로, 운영 따로 하니까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철도공사에서 고속철도를 건설한다고 하면 운영권자의 다양한 생각이 거기에 녹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안전 문제를 최대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사고를 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런데 시설이 분리되어 있으니 시설 입장에서는 일단 깔고 보자는 생각들이 먼저 앞서게 된다. 그렇게 되니까 자연히 부실시공을 하게 되고 비리가 개입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어쨌든 세계적인 추세는 운영과 시설의 일체형으로 가고 있다. 운영과 시설이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임의적으로 분리해낸 후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권에서는 철도산업 전체를 다시 합쳐야 한다거나 반대로 민영화를 더 가속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장하고 있고 그 중심에 철도산업이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 대륙에 고속철도를 놓겠다고 하고 있을 정도로 철도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산업이다.

영국철도의 경우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서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공공성, 공익성을 도외시 했을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도가 이윤만 쫓아서 가버리면 보편적 권리인 국민의 이동 권리는 몇몇 돈 있는 대도시와 일부 국민에게 국한되게 된다.

노조가 바라는 것은 철도산업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투자가 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동차 중심, 도로 중심으로 해왔지만 도로는 이미 포화상태다. 환경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도 도로 우선 정책이 더 이상 유익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다 들어났다. 오히려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철도산업에 정부의 직접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는 민간 자본에 의존하려고 한다. 민간 자본은 당연히 이윤을 추구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철도산업의 공공성, 공익성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천공항 철도를 보자. 한해 수천억의 적자를 정부에서 보전해주고 있다. 도로와 똑같이 철도를 설치해서 경제적 실익도 없는 사업에 돈을 쏟아 붇고 있다.

이런 잘못된 정책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철도 산업의 소유가 정부나 공적 소유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영화를 막아내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영화와 함께 역무무인화와 외주화도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노조의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정부는 철도선진화계획이란 명목으로 현장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노조 차원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역무무인화나 외주화가 일부 진행됐고 이 부분에 대해 사실 고민이 많다.

철도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지켜내는 것은 안전한 철도, 국민 모두가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철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실제로 인력을 줄이고 자동화, 무인화하면서 안전에 대한 문제는 빠지고 비용을 줄이는 효율화 측면만을 계속 강조하고 부각시킨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인력감축으로 눈이 엄청나게 온다든지 사고가 나도 적절하게 대처할 인력이 없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소한 부주의가 엄청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철도 사고다. 그런데도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들을 사측이나 정부가 뭉개고 도외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노조는 내부적 TF팀을 구성해 인력 감축으로 어떠한 결과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다. 자동무인발매기를 설치함으로서 줄일 수 있는 비용과 사람이 직접 매표업무를 담당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안전문제나 효율성 문제를 함께 비교해서 제대로 된 자료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사업을 진행할 것이다.”

KTX 문제, 계속 투쟁할 것

해고자 문제도 난감한 문제 중 하나다. 오래된 문제인데 해고자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노조 내의 세대 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철도노조 해고자는 굉장히 건강하다. 끊임없이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늘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철도해고자들이 가장 잘하고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조합원들로부터 신뢰와 믿음을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현장이 어려우면 늘 달려가고 현장 조합원과 함께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해고자 문제에 대한 생각은 우려한 것과 달리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위원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잘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적 신호라고 본다.

해고자가 꽤 많지만 그런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조합원들이 믿음과 신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어렵게 보지 않는다. 특히 해고자들이 철도 민영화, 사유화 과정 속에서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 싸우다가 해고됐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거기에 대한, 철도 공공성과 공익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동지라는 사실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갖고 있다. 또한 해고자들이 현장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처럼 다가가니까 신뢰가 거의 전폭적이라고 보면 된다.” 

KTX 여승무원 문제가 법의 1차적 판단은 정리가 됐지만 아직까지 코레일에서는 구체적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장기간의 투쟁으로 동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인데 어떻게 할 예정인가

“KTX 동지들의 투쟁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 많은 투쟁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이 떠나가기도 했지만 종업원 지위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른 것도 사실이다.

KTX 동지들은 철도노조 조합원이다. 비록 자본의 논리에 따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눠져 있지만 노동자는 하나라는 입장만은 동일하다고 본다. 물론 정규직 동지들의 이해를 높이는 점은 장기적 과제라 할 것이지만 KTX 동지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부분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노조는 지난 3년 동안 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함께 투쟁해 나갈 것이다.”

조합 활동이 행복해야 한다

ⓒ 철도노조

당선된 이후 현장을 순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조합원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철도도 2000년 노조민주화투쟁 시기에 비하면 조합원의 참여 의지가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사가 되면서 임금도 어느 정도 인상됐고 24시간 맞교대하다 3조 2교대 근무로 근무형태가 변하면서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노조활동보다 동호회나 집안을 챙기는 문제로 관심이 많이 가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노조의 활동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뭔가 상층에서 논의하면 조합원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침내리고 지시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은 여전하다. 그러니까 조합원들은 지침만 내려오고 정말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지 않는다는 불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노조활동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부장이나 간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다. 노조가 존재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활동가나 간부들이 양성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되는 것이다. 젊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하기 싫어한다. 노동조합을 보는 인식도 가장 보수적인 조직으로 본다.

조합 지부장이나 간부들은 늘 ‘죽겠다. 몇 명 동원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한번만 도와줘라’라며 인상 쓰고 있고. 조합원 만나면 웃는 얼굴이 안 된다. 젊은 조합원인들 보기에 저기가면 삶이 달라지고 뭔가 행복하겠구나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조합 간부들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든다. 그러니까 누가 임원하고 대의원하고 간부하고 싶겠나. 차라리 낚시 가고 가족들하고 여행가고 싶지. 상당히 심각하다.

그래서 현장을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80, 90년대에는 가정을 너무 챙기는 사람을 비난했는데 지금은 가족을 제대로 챙겨내지 못하는 간부는 노조활동도 훌륭히 해낼 수 없다. 매일 조합원과 술 마시고 12시, 1시에 집에 들어가서 퍼지면 어느 마누라하고 아이하고 좋아하겠냐. 아무도 안 좋아한다.

정말 노동조합 활동도 행복하게 해야 한다. 행복하게 활동한다는 것이 투쟁을 안 하거나 대충 눈치 보면서 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합 활동이 뭔가 중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가족도 느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간부들이 가정생활을 잘해야 한다.

조합 활동이 즐거우면 조합원들에 대한 배려나 이해도 달라진다. 간부들끼리 모이면 산에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그러면 조합원들이 보기에 ‘간부하는 사람들은 다 재미있게 사는구나’하고 자기도 대의원 해보겠다고 나서지 않겠냐. 그래야 새로운 간부들이 나온다.

이제는 정말 ‘내가 행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라는 것이 되지 않으면 힘 있게 못한다. 돈을 아무리 줘도 억지로 하는 일이 행복하겠는가. 억지로 떠밀려서 지부장하고 간부하는 데 그 활동내용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조합원과 함께 하면 힘들지 않을 것 같다. 의연하게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안됐다고 자책하지 말고 냉정하게 평가해서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자 생각한다. 어쨌든 즐겁게, 기쁘게 내 삶이 기쁘면, 그 기쁨을 노동조합 활동 통해 녹아내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과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잘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이 그런 제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늘 말씀해주시고, 저도 모르는 것 있으면 조합원에게 묻겠다. 부족한 것,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고백하고 그러면서 처음부터 소통의 관계를 놓치지 않고 할 생각이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저를 믿고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가족에게 늘 고맙고 감사하다”

7년간의 해고기간 동안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 속 깊이 느꼈다는 김기태 위원장은 복직되자마자 요리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또 퇴근 후 아내를 위해 발마사지를 해주면서 김 위원장은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가족에게 한다.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노조 활동으로 지금은 서울에 위치한 조합 숙소에서 보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가족과 함께 있는 듯하다. 

7년 정도의 해고 기간을 어떻게 견뎌냈나.

“해고자들은 해고 기간 동안 현장과 떨어져 있어 상시적 압박감이 있다. 조합원들로부터 멀어지면 어떠하나, 조합원들이 나를 잊어버리면 어떠하나, 이런 초조함과 불안함이 늘 있다. 사실 가족과의 문제도 사실은 원만해 지지가 않는다. 해고 이후 천막농성하고 또 감방에 들어가고 하니까 오히려 불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진다. 한마디로 계속 지쳐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맑고 청순했던 모습들이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망가지는 상황으로 간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내가 삶을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정말 어렵다. 지금 철도의 해고자들은 약 6년째인데 그 마음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정말 힘이 닿는다면 이 분들을 현장으로 돌려보내서 사람다운 모습으로 가족과의 관계도 회복하고 조합원들에게 받은 빚도 좀 갚아가면서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지금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처음 위원장하려고 하니까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다. 해고당했을 때도 안 그랬는데. 특히 2006, 7년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주위의 우려도 컸지만 복직하고 많이 좋아졌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생활이 잘 돼야, 삶이 건강하게 잘 이루어져야 노동조합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찌들어서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생활이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복직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요리학원 등록한 것이다. 그동안 손맛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복직하면서 진짜 제대로 한번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학원등록을 했다.

생각해보니 집사람과 애들한테 진짜 제대로 못했더라. 늘 밖에서만 생활하니까. 아버지라고 들어가서는 애들 얼굴만 보고 나오니까. 그래서 요리학원 등록해서 요리를 배웠다. 기존에 손맛이 있는데다 조금만 배우니까 정말 잘 됐다. 하하하.

집에서 요리하고 찌개하고 빨래, 청소 등 가사노동을 열심히 했다. 집사람한테는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가 뭘 믿고 나한테 와가지고 이렇게 계속 살아주는가’ 이런 생각하니까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그런데 정말 남편으로, 아버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집에 가면 아내를 위해 한 발에 20분씩 발마사지를 해준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늘 감사하다고 이야기한다. 복직하고 2년 동안의 그러한 생활이 그나마 이혼하자고 불화살처럼 노발대발하던 아내를 이해하고 설득시켰던 이유였던 것 같다. 2년을 열심히 산 사람의 본심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쨌든 알아준 것 같다.”

 

김기태 위원장 약력

1962년 경남 거창 출생 / 1988년 부산만호제강 노조민주화투쟁으로 해고 / 1989년 부산‧양산지역노동조합연합회(부양노련) 조직부장/ 1993년 입사(부산보선사무소) / 2000년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공동대표, 부산정비창지방본부 위원장, 파면 및 구속 / 2004년 철도노조 정치위원장 / 2006년 복직(마산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