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연대투쟁은 우리가 최고다
지역연대투쟁은 우리가 최고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4.0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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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충북공대위 주도하며 소외된 노동자 보호 앞장
조합원을 만나는 현장이 바로 연대의 시작
[여기는 지금] 충북 -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지난 3월 8일은 101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한국노총은 3월 5일 강서구민회관에서, 민주노총은 3월 8일 종로 영풍문고 앞에서 각각 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양 노총 모두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혹하다. 비근한 예로 지난 3월 24일 종업원 197명 중 113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힌 경기도 시화공단 내 파카한일유압은 해고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맞벌이 부부에 -5점을 부과했다. 징계에 대한 벌점 기준 최고가 -5점인데 맞벌이 부부라는 이유로 -5점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 노동은 남성 노동의 부차적 노동일뿐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3.8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다시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 충북지역에서는 나이가 많고 명예퇴직을 안 한다는 이유로 조직적인 사내 ‘왕따’를 당한 40대 여성 노동자를 위해 지역 노동인권단체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 3월 25일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주최로 구조조정 공동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한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진 조직적 테러

한국 유수의 대기업인 KT에서 벌어진 일이다. KT 청주전화국 고객서비스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미희(48) 씨는 2008년 10월 31일 회사로부터 파면 통지를 받았다. 일명 114 안내원이라고 불리던 전화교환원 출신의 한 씨는 114가 분사된 이후 2001년부터 지속적으로 퇴직을 강요당했다.

그러던 와중에 2006년 새로운 팀장이 부임하면서 한 씨에 대한 퇴직강요는 직장 내 왕따, 무리한 업무지시 등 다양한 형태로 강도가 높아졌다. 예를 들어 전화교환원으로 20년을 근무했던 한 씨에게 가설업무를 부여하며 전봇대에 오르는 작업을 강요했다. 남성 노동자도 하기 힘들다는 전봇대 가설업무를 시키며 전봇대에 못 오르겠으면 회사를 그만두든가 사람을 사서 작업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한 씨는 10만원을 주고 사람을 사서 가설업무를 한 적도 있었다. 또한 가설업무를 주면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 가설업무를 배정하는가 하면 아파트같이 가설작업이 편리한 곳은 배제하고 위험한 지붕에 올라가야 하는 단독주택이나 오래된 주택의 가설작업에만 투입하거나 고과점수가 높은 메가TV 가설업무는 일체 배정하지 않았다.

여기에 사내에서 큰 소리로 “저런 거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가 XX같이 되고. 이런 XXX”라는 식의 일상적인 언어폭행은 물론이고 책상이 남는데도 불구하고 간이책상과 간이의자에서 근무하게 했으며 심지어는 식탁에서 근무하게 한 적도 있었다. 조례나 종례, 회식에서도 한 씨의 참여는 배제됐으며 한 씨에게 힘내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사내 직원 중 한 명을 1년간 영업직으로 돌려 불이익을 주는 일도 발생했다.

이후 직원들은 한 씨와는 말 한마디도, 식사 한 끼도 같이 하지 않았다. 한 씨는 이에 대해 “저를 도와줬다는 이유만으로 다음 퇴출대상이 된다는 두려움이 직원들 사이에 있었다”며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파면 전부터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 씨와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진해서 퇴사했지만 한 씨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결국 사측으로부터 파면통보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12월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충북지역 노동인권단체들과 함께 ‘KT 여성노동자 인권침해ㆍ부당해고ㆍ노동탄압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북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KT충북공대위, 위원장 조순형)를 발족했다.

김기연 대외협력부장은 공대위 출범 당시 “대기업을 상대로 한다는 것,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끈질기게 연대할 수 있는 단위들만 참여했다”고 밝혔다.

KT충북공대위는 한 씨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충북 지노위에 제출하는 즉시 청주전화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충북 지노위는 지난 2월 25일 한 씨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다며 3월 25일까지 원직복직시키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KT는 지노위의 결정에 반발해 중노위 재심을 요청했고, 한 씨에 대한 원직복직에 대해서는 일체 대응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KT충북공대위는 서울 KT 본사에서의 1인 시위를 준비 중이다. 다행인 것은 이번 문제가 지역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방영되고 지노위에서 복직 판정이 내려진 이후 퇴출 프로그램은 KT 사내 전체에서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지역연대의 모범, 충북지역본부

한 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본부장 이정훈)는 지역연대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에 대해 김기연 대외협력부장은 “충북지역본부는 전노협 시절 지역노동조합협의회를 거치지 않은 지역으로 민주노총 건설과정에서 과거 지노협의 역할을 해왔다”며 “그러한 기풍이 지역에 남아있고 지역 산업이 제조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지역 연대가 활발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정훈 본부장은 “노동조합을 찾아가는 순회 활동이 아니라 직접 조합원을 만나는 순회 활동으로 단사와의 관계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한국델파이 노동조합의 매각 반대 투쟁 집회. ⓒ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실제로 충북지역본부는 2003년 한국네슬레, 2004년 충북대병원, 2005년 우진교통, 2006년 하이닉스 투쟁 등 해마다 지역공동파업투쟁을 진행했다. 한국네슬레는 스위스 본사에서 유통부분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려고 하자 스위스까지 원정투쟁을 진행하면서 구조조정을 막아냈으며, 충북대병원의 경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병원장에 맞서 신생조합임에도 150여 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구조조정을 막아냈다.

특히 우진교통의 경우 당시 사측의 폐업에 맞서 지역공동파업투쟁을 통해 현재는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으로 재탄생한 좋은 케이스다. 대구 달구벌회사처럼 소속 노동자가 지분을 보유하는 버스회사는 몇몇 있었지만 우진교통처럼 248명의 조합원들이 직접 회사를 자주관리한 케이스는 한국 버스회사 중 최초다.

이렇듯 하이닉스 투쟁 이전까지 충북지역의 공동파업투쟁은 대부분 승리했고 지역연대는 공고해졌다. 그러나 하이닉스 투쟁의 실패는 충북지역본부에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줬다. 김성봉 충북지역본부 조직부장은 “하이닉스 투쟁이 거의 최초의 지역연대투쟁 실패 사례”라며 “당시 연대투쟁의 힘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인권센터와 구조조정 공동투쟁본부 설립

이를 위해 충북지역본부는 2008년 2월에는 노동인권센터, 2009년에는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지역 구조조정 공동투쟁본부를 설립했다. 한평생 노동자의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하신 호죽 정진동 목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호죽노동인권센터로 명명된 노동인권센터는 충북지역본부 소속 단위사업장에서 후원금을 받아 전액 무료 상담으로 운영 중이다.

호죽노동인권센터의 사무국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남규 충북지역본부 비정규사업부장은 “지역사업장 정규직 노조의 후원으로만 운영한다는 점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호죽노동인권센터가 개소한지 1년 만에 처리한 상담건수는 750건이 넘는다. 이는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 호죽노동인권센터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 3월 21일 열린 충북노동자 대회. ⓒ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2009년,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위협 속에 충북지역본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매각과 관련해 OB맥주, 한국네슬레 등이 매각반대 투쟁을 진행하고 있으며, 옥천 코스모링크는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진천의 한국델파이는 상여금 등 각종 복지제도 축소 혹은 유보를 내건 사측의 특별단체협약 요구에 대해 파업출정식을 갖고 경제위기 고통의 책임전가를 막기 위한 싸움을 준비 중이다.

김기연 대외협력부장은 “대부분의 사업장들에서 매각을 하거나 직접적인 인원 감축, 노조 복지제도 축소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임단협 시즌에 돌입하면 사측에서 복지제도 개악안이나 임금삭감안 등을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충북지역본부는 지난 3월 21일 1200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충북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이어 25일에는 우진교통, 정식품, 한국네슬레, 한국델파이, OB맥주, LG화학 등 10개 노조와 사측의 구조조정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공투본을 결성했다.

이정훈 본부장은 “현시기 구조조정 문제는 단지 단사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단위노조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의 투쟁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화학, 물류, 식품을 중심으로 73개 노조에 2만3천여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는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KT충북공대위와 같이 지역연대를 바탕으로 노동인권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2007년 이정훈 집행부 선출 당시 직선제를 최초로 도입하고 노동인권센터를 설립하는 등 지역 연대 활동에 대한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6명의 충북지역본부 상근자는 낮에는 현장에서, 밤에는 지역본부 회의로 고단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당장 닥쳐 올 거대한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돌파하고 취약계층 노동자 보호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 김기연 대외협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