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신문산업
위기의 신문산업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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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 바꿔야 살아남는다
경쟁력·고객서비스와 무관한 이윤결정 시스템
투명성·공정성 확보한 구조적 개선책 마련 필요

 

신문산업의 위축세가 뚜렷하다.

아직 한국의 신문업계는 발행부수조차 파악할 수 없는 복마전이기 때문에 정확한 산업규모를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독자수가 감소하고 있고, 광고시장규모도 줄어들고 있고,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TV나 인터넷에 비해 밀리고 있다는 점은 언론계에서나 학계에서나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신문산업의 축소세는 광고매출액을 통해서 보다 명확히 나타난다. 1996년 2조3186억 원이었던 신문광고비는 2003년도에는 1조8900억 원으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방송광고비는 1조5873억 원에서 2조3671원으로 늘었다.


신문산업의 위축세는 고용인력 현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03년의 신문산업 종사자는 1만4849명으로, 1996년에 비해 무려 22.5%나 감소했다.

 

신문, 산업? 언론?
현재 한국의 신문산업은 1920년 조선일보사와 동아일보사가 설립되면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매우 전통 깊은 산업분야이다. 한국의 기업 중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들이 드물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신문 시장의 위기 징후는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 등록법이 제정되면서 시장진입제한이 풀렸고, 신문산업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이후 신문시장은 치열한 증면경쟁, 부수경쟁 등을 벌였지만 시장 확대에는 실패했다. 특히 젊은 독자들이 감소하고 광고주들이 회피하면서, 매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


신문의 광고수입과 구독률 하강추세는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하고는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급격하게 신문시장이 축소되는 국가는 드물다. 이는 한국 신문산업의 독특한 역사와 현실에 기인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신문의 산업적 성격을 규정한 것은 시장이라기보다는 국가였다. 한국 신문산업의 구조는 정부의 신문정책에 따라 형성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국가의 간섭으로 강제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신문이 생기기도 하고, 국가의 보호 덕분에 엄청난 특혜를 누리며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신문도 나타났다.

 

신문발행 자유화와 함께 무한경쟁 체제로
구한말 개화의 목적으로 출발한 한국 신문은 일제시대에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극소수 발행인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신문발행의 자유가 신장되긴 했지만, 좌우익의 대립구도 하에서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견제를 받아야 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정부의 시장보호 속에서 한국의 신문산업은 고성장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대기업화 단계를 거쳤으며, 1980년대에는 독과점 시장구조 속에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게 된다.


본격적인 시장경쟁 체제에 한국 신문이 편입된 것은 1988년 정기간행물 등록법이 제정되고, 신문발행의 자유가 대폭 완화되면서부터였다. 군사독재체제가 종식되고 신문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크게 줄면서, 새로운 신문들이 잇달아 창간되었다. 정부의 통제나 간섭이 거의 없는 정책적 진공상태가 형성되면서 신문시장은 치열한 경쟁과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1988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신문은 시장구조나 경영기술과는 무관하게 신문기업의 이윤이 결정되었다. 신문상품의 경쟁력이나 고객서비스가 매출액이나 순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신문은 기업이면서도 시장이나 경영에는 무관한 듯 운영되었다. 국가가 시장을 통제해주고 이윤을 보장해주는 체제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발행제한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완화되고, 신규 신문이 늘어나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신문산업의 산업적 토대는 급격히 취약해졌다. 그러나 기존의 신문이나 신생 신문이나 시장경쟁 경험의 부재로 인해 효율적인 경쟁을 하지 못했다. 대신 물량경쟁, 설비투자, 차입경영 등 1960년대식으로 대응했다.

 

무가지·경품 동원한 ‘제 살 깎기’ 경쟁
신문사들은 줄어드는 독자와 광고주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전체의 규모를 늘리는 전략보다는, 해당 신문사의 점유율을 늘리는 데에만 몰두했고, 신문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신문의 질과 고객서비스를 높이는 경쟁이 아니라, 무가지와 경품 제공 등 제 살 깎기 경쟁이었다. 결국 자본과 보급망을 확대한 거대신문사와 그렇지 못한 신문사 간의 격차가 더욱 확연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의 신문 시장은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과점 시장으로 굳어졌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실패한 신문들이 퇴출되지 않고 계속 시장에 남아있는 기이한 구조를 지탱하고 있다.


한국의 신문산업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이 제공하는 경쟁력과 효율성을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신문시장의 구조와 신문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신문관련 정책과 법제도 언론의 자유와 시장경쟁 체제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


구한말 이후 문민정부 등장 이전까지 역대 정부는 신문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신문을 통제하고 선전과 홍보의 매체로 동원하고자 했다. 신문시장은 시장논리와는 무관하게 정권의 필요에 따라 조정되고 재편되었다. 신문시장의 진입은 철저히 규제하는 대신 신문기업에 대해서는 많은 특혜와 지원을 제공했고, 불법적 담합이나 부당거래는 묵인해 줌으로써 권력통제에 대한 신문업계의 반발을 무마해왔다.

 

오히려 정부는 특혜금융, 세제혜택 등을 통해 언론 시장의 자유경쟁 질서를 더욱 왜곡시켰고, 신문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정략적 이해관계 떠난 신문산업 진흥 대책 세워야
민주화 이후에도 역대 정부의 신문정책은 정략적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신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정책도 신문사업자들의 반발이나 이견으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했다. 신문기업들은 신문의 공적 기능을 감안한 구조적인 개선책보다는 자사의 이익만을 위한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에만 매달려 왔다.

 
신문산업의 위기는 국가적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신문을 읽지 않는 국민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제반 사안에 무관심해지고 무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반영해 해결되어야 할 민주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공론이 형성되질 않고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된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다.  정부와 신문업계가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문산업 진흥을 위한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정책적, 법적 대안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

 

장 호 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