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에게서 배운다
이창호에게서 배운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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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잃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도전정신

‘적’마저도 존경심 갖는 반상의 일인자

 

“이창호를 가진 것은 한국엔 행운이고 다른 국가엔 재앙이다. 이창호는 바둑계를 30년간 통치할 것이고, 바둑계에 300년간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 네티즌)


“중국 바둑의 영원한 고통 이창호(石佛成爲中國 圍棋永遠的痛)” (중국 언론)


“이창호는 다른 기사들이 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거대한 산이다

(李昌鎬就像一座大山一樣難以逾越)” (중국 언론)

 

중국인들의 자부심이나 자존심은 유별난 데가 있다. 중화(中華)를 부르짖는 그들에게 중국은 곧 세상의 중심이다. 그러나 이런 중국인들에게도 아픈 구석이 있다. 바로 축구에서의 공한증(恐韓症)이다.


중국 축구는 지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27년간 한국과의 A대표팀, 올림픽대표팀 간 경기에서 30차례가 넘게 맞붙어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이제는 공한증이 자연스러운 보통명사가 되어버릴 지경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축구 못지않은 ‘공한증’을 느끼는 분야가 또 있다. 그것이 바둑이다. 사실 중국은 바둑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고, 일본이 현대바둑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이전까지는 최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게도 번번이 패하면서 ‘공한증’이 차츰 심해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둑에서의 ‘공한증’은 ‘공이증(恐李症)’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는 이창호 9단을 말한다.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고 있으니, 천군만마도 공략하지 못하는구나

이창호 9단이 그간 반상에서 이룩한 성과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1986년 11살의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이 9단은 14살이던 89년 세계 최연소 타이틀을 획득했고, 그 이후 국제대회 22회 우승, 국내대회 102회 우승을 포함해 124번이나 우승했다.


이 9단이 세계대회 결승에서 패한 것은 단 세 차례. 그러나 모두 상대가 한국 기사였다. 즉, 중국을 포함한 외국 기사들을 상대한 세계대회 결승에서는 단 한 차례의 ‘이변’도 허용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 기사들에게 매번 좌절을 안겨줬던 이창호였지만, 올해 초의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았다. 중환배 4강에서 왕리청에게 패했고, LG배 준결승에서는 위빈에게 패했다. 더구나 국수전에서는 신예 강자 최철한 9단에게 3연패를 당했다. 2005년 전적 1승5패. 일부 언론에서 조심스럽게 이창호의 시대가 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흘러나왔다.


이런 부진은 중국에게는 ‘희소식’이었다. 2월 23일부터 속개되는 제6회 농심배를 앞두고 이창호를 꺾을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농심배는 유일한 국가대항전이다. 한중일 3국의 대표 기사 각 5명씩이 출전해 연승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한중일이 순서대로 맞붙으면서 이긴 기사가 계속 다른 나라의 다음 기사와 대결하는 방식이다. 앞선 다섯 차례의 대회에서 한국은 모두 이창호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 예외 없이 우승했다. 그러나 6회 대회에서의 성적은 초라했다.

 

오직 이창호 혼자만이 남고 중국과 일본은 다섯 명이 살아남았다. 한국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이창호가 이 다섯 기사들을 모두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창호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창호는 금강산에서 펼쳐진 국수전 이후 거의 휴식할 여유가 없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나흘을 연속해서 바둑을 두는 강행군 일정이었다.


중국 언론들은 “이창호를 신격화하지 말라(別把李昌鎬當神)”(南京日報)면서 자국 기사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와 다름 없었다. 이창호의 오관참장(五關斬將)으로 승부는 마무리되었다.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고 있으니, 천군만마도 공략하지 못하는구나(一夫當關 萬夫莫開)”(現代快報)라는 한탄이 쏟아졌다.

 

신은 곧 여전히 신일 뿐이었다
중국이 설욕할 기회는 다시 있었다. 국제 기전 중 유일하게 중국 기업이 후원하는 춘란배가 3월 14일부터 중국에서 열렸다. 결승 상대는 이창호와 저우허양. 이 대회의 우승 상금은 15만 달러였지만, 중국 기원에서는 저우허양이 이창호를 꺾을 경우 10만 달러를 별도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첫 판은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신산(神算)이라고 불릴 정도로 끝내기의 최고수인 이창호가 막판에 실수를 연발해 저우허양이 승리한 것. 하지만 그 뿐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판에서 이창호는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했다.


이창호는 신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중국 언론은 이 대회가 끝난 후 이렇게 묘사했다.


“이창호 그가 자신의 본령을 회복하자 신은 곧 여전히 신일 뿐이었다(只要李昌鎬 回了狀態 神還是神)”(競報)


중국인들은 이제 이창호에 대한 경외감을 넘어 존경심까지 느끼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 바둑팬들은 이창호가 세계제일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록 ‘적장’이기는 하지만 이창호의 승리를 바라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이창호는 ‘바둑의 신(神)’인 것이다. 중국 최대의 스포츠신문인 <체단주보>의 수석 바둑기자는 이창호가 이상기류를 보이던 즈음에 시작된 농심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의 눈으로 이창호 9단의 패배를 볼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계 바둑인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이창호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두터움의 미학
80년대까지 세계 바둑을 주름잡던 일본의 기풍은 ‘모양’을 중시했다. ‘형식’과 ‘명분’에 집착한 것이다. 그러나 이창호의 바둑은 ‘두터움’으로 대표된다. 어찌보면 밋밋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창호가 부각된 초기에 일본측은 이창호의 바둑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승자는 이창호였다. 결국 이창호류의 두터움은 가장 강한 바둑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도 형식이나 명분이 ‘금지옥엽’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편법과 거래가 판을 치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노사관계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존의 형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모두의 승리를 위한 신뢰를 두텁게 쌓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눈을 뜨다
지난 몇 해 동안 이창호는 ‘지는’ 일이 잦아졌다. 여전히 다른 기사들에 비해서는 앞서고 있지만 한 때 80% 중반까지 치솟았던 승률이 지난해에는 72%(49승 19패), 2003년에는 71.1%(49승 20패)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이창호가 바둑 이외의 다른 것들을 알아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창호는 11살에 입단한 이후 바둑 한 길만을 걸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운동과 독서 등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관심사의 확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10대, 20대에 ‘천재’로 평가받던 시절을 넘어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것은 바둑에도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노사관계도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 그간 ‘임금’을 중심으로 한 경제주의에 매달려 있었다면 이제는 사회적 연대나 공헌에 대한 보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위기에서 빛을 발한다
농심배를 앞두고 올해 전적이 좋지 않던 이창호로서는 큰 위기를 맞았다. 아무리 세계 1인자라 하더라도 다섯 명의 상대를, 그것도 중국과 일본의 최고수들을 연속으로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3번기인 춘란배에서 앞서던 바둑을 역전당해 1국을 지고 나머지 두 판을 내리 이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바둑을 포함해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3판2선승제일 경우 첫 판을 이긴 쪽의 승률이 80%를 넘는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창호는 모든 부담감을 다 떨쳐내고 승리를 거뒀다.


지금 노사관계도 상당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나 노동운동은 잇따른 비리 연루, 폭력 사태 등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조합원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진화한다
최근 들어 이창호의 기풍이 변하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초반에는 두터운 실리만을 추구하다가 종반 끝내기를 통해 승리하던 공식이 공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창호가 올 들어 승리한 8판의 대국은 모두 불계승한 것이다. 미세한 반집 승부로 대표되던 이창호의 흐름에 변화가 있는 것이다.


세계의 기사들이 이창호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끊임없는 진화때문이다. 지금으로도 세계 최강인 이창호가 계속 변화, 발전한다는 것은 정말 큰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 당사자들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히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적 진화여야 한다.


바둑이 장기나 체스와 다른 점은 아무 것도 놓여있지 않은 반상을 채워 나간다는 점이다. 노사관계 당사자들이 그 ‘채움’의 미학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