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Y의 선택
SONY의 선택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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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나온’ 중년의 소니, ‘젊은 피’가 필요하다

소니의 힘은 막대한 이윤이 아니라 위기대처 능력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답인가?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대개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서 선택이란 전략의 선택, 리더십의 선택, 기업문화의 선택 등 사람(People), 프로세스(Process), 상품(Product)에 관해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집합이다.


경영자들이 존경하는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임스 마치(James March) 스탠포드대 교수는 1970년대 중반 경영전략과 기업문화의 패턴을 연구한 결과 익스플로러(Explorer) 유형 기업과 익스플로이터(Exploiter) 유형 기업에 대해 논문을 발표했다.


익스플로러 기업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 그리고 조직 내부경쟁이 심하지 않은 수평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문화를 원천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하게 하고, 실패하는 경우에도 문책보다는 학습하는 기회로 삼게 한다. HP, 3M, 애플 컴퓨터, 노키아, 노바티스, BP, 소니 같은 기업들이 익스플로러들이다.


익스플로이터 유형 기업은 상대적으로 내부경쟁이 치열하고 수직적 의사결정 조직문화, 그리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기업문화로 알려진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프로세스 중심으로 최대한 효율성을 달성하려 하고, 측정 가능한 성과지표를 통해 관리경영에 치중한다. GE, 인텔, 델 컴퓨터, 월마트, 마쓰시타, 그리고 삼성전자 등이 익스플로이터들이다.


간혹 이들 두 가지 유형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기업들도 있는데 IBM과 도요타 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포드는 ‘죽어도’ 델 컴퓨터를 못 따라간다
그러면 과연 익스플로러와 익스플로이터 중 어떤 유형의 기업이 우세한가? 답은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른바 신경제 물결을 타고 창업했던 벤처버블이 꺼지면서 익스플로이터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0년 장수기업 GE는 열 가지 분야가 넘는 문어발 사업포트폴리오에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승부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인재개발 문화를 토대로 철저한 성과측정을 실천하는 익스플로이터이다.

 

PC 제조기업 중 유일하게 흑자를 유지하는 델 컴퓨터의 경우 전세계를 묶는 공급사슬시스템을 무기로 주문에서 부품확보, 제조, 유통, 배달, 애프터서비스까지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있다. 오죽하면 포드 자동차 생산관리 임원들이 델 컴퓨터의 조립공장을 견학한 후 “포드에서는 꿈도 못 꾸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는 말이 있을까.


델 컴퓨터 공장은 일층에 조립라인이 있고, 바로 위 천장공간에 부품 창고가 연결되어 있어서 초스피드 재고관리가 가능한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매출액 규모 세계 일등기업 월마트의 경우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의 배달트럭이 미리 정해진 10분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크에 들어왔다가 떠나야만 한다. 단 1분도 일찍 또는 늦게 도착해서는 안 된다. 효율성과 경영관리 프로세스의 스피드가 경쟁력을 말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과거 혁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소개하며 앞서가는 브랜드로 인정받았던 HP나 소니같은 익스플로러들이 상대적으로 수난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니와 같은 익스플로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 네트워크 경제로 옮겨가는 전환기에서 컨텐츠와 이노베이션, 브랜드 가치가 왕이라는 예측이 빗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

 

익스플로이터 기업이 가진 비장의 무기는 알고 보면 병목을 틀어쥐고 있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수요와 공급으로 돌아가는 시장원리를 모래시계로 비유해 보자.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기업은 빠른 스피드를 통해 모래시계의 좁아지는 병목까지 남보다 먼저 도달해서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을 줄이기 위해 재고, 채권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경영관리의 초점을 기능에서 프로세스로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기업답지 않았던 소니
‘성공 기업의 딜레마’(원제 : The Innovator’s Dilemma)라는 책을 보면 1950년대 미국 제니스 진공관 라디오를 제치고 업계의 판도를 뒤집은 한 일본 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내세워 비싸고 덩치 큰 진공관 라디오에 관심이 없던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한 ‘소니’라는 회사다.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와 그의 오른팔이자 후계자인 모리타 아키오, 이 두 엔지니어가 창업한 소니는 소비자 가전산업을 선도하는 일본 대표 기업이면서도 가장 일본 기업답지 않은 기업이다.


소니의 창업자들은 소니를 ‘탈(脫)일본’, ‘향(向)세계형’ 기업으로 키웠다.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제품 생산에 주력했고,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전개해 일본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미 뉴욕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십 수년 전 콜럼비아 영화사 매입을 필두로 글로벌 미디어 산업으로의 전략적 혁신도 시도해 왔다.

 

소니는 왜 외국인 CEO를 영입했나
이제 소니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서 또 한 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 소니를 이끌게 된 하워드 스트링어 신임 회장은 어떻게 소니를 변모시킬 것인가. 63세인 그는 미 CBS방송에서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CBS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시킨 경력을 토대로 1990년대 말 소니의 미국법인에 합류했다. 그의 강점은 파면을 통고하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 이건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일거야”라고 수긍하게끔 만드는 인간적 흡인력에 있다고 한다.


오늘날 소니는 크게 디지털미디어, PC, 게임, 미디어 사업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은 플레이스테이션(PS)으로 알려진 게임사업부밖에 없다.


소니 내부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성장이 둔화되면서 전략적 선택을 놓고 기술을 우선으로 여기는 엔지니어들과, 시장과 함께 호흡하려는 마케팅 부문 간에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링어 회장은 외부, 그것도 외국인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한 선택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니의 미국법인을 개혁하면서 내부가 아닌 외부, 그것도 다른 업계에서 젊은 인재를 끌어왔다. 별다른 이익을 내지 못하는 컴퓨터 사업에서의 철수가 검토될 것이요, 홈네트워크 산업에서 표준화를 선도하지 못한다면 음향영상가전 사업도 접어야 할지 모른다.

 

스트링어의 눈앞에 놓인 과제는 첫째, 연간 700억불 매출액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디지털미디어 부문의 수익 끌어올리기, 그리고 둘째, 이데이 회장이 과거 10년간 이루려 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자산을 결합해 시장과 고객으로 하여금 그 결합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사게끔 하는 것이다.


늙어가는 소니
외부적으로도 애플(MP3 Player), 마이크로소프트(게임기), 삼성전자(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추격자들이 소니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업계표준화 전쟁에서 과거 베타맥스(Betamax)를 가지고 VHS 진영에게 패한 경험이 있는데, 메모리스틱이나 차세대 DVD에서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소니가 1980년대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했던 직접적 동기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VHS 진영을 손들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그렇다면, 이제 소니픽처스와 MGM까지 아우르게 된 소니가 블루레이 DVD를 차세대 표준으로 말뚝 박으려 하는 전략에 할리우드 인사이더들이 과연 협조를 할 것인가?


방송과 컨텐츠와 미디어기기의 디지털컨버전스가 코앞에 다가온 현실이라면 소니만의 차별화는 어떻게 다져 나가야 할 것인가? 한때 매력적이고 건강한 젊은 청년을 떠오르게 했던 소니 브랜드가 이제 뱃가죽이 늘어진 중년을 연상시킨다면 큰 문제다.


스트링어 신임 회장은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회사의 기존 틀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 발표했지만, 소니가 외국인 CEO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이렇게 다급한 현실이 놓여 있다.

 

기업의 적은 내부에 있다
여기서 한국의 기업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대기업들도 소니처럼 성장 한계에 이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마다 준비경영이다, 신성장 동력 발굴이다 하며 고민을 하지만 획기적인 방안이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강점인 ‘대규모 생산에 따른 효율성’을 되풀이해 적용할 수 있는 업종을 찾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전통적인 방식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일류 기업은 소니가 1년간 버는 이익 규모를 한 달이면 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위기가 다가왔을 때 소니보다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한국 기업은 매출의 87%를 해외에서 올리고 글로벌 생산기지를 완벽에 가까운 공급사슬로 묶어 시스템 경영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략적 변화를 시도할 만한 글로벌 인재를 키우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기업의 적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내부에 새로운 피를 공급하는 준비작업이 필요한 때다.

 

 

존 슈레이더 [경영전략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