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나갈 사람’만 만든다
정부 정책, ‘나갈 사람’만 만든다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05.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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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없는 2만2천명, ‘예비 실업자’
채용은 하되 정원 늘리지 말라는 정부
Issue in Issue 진단_ 일촉즉발 공공부문 ① 공공 구조조정의 서막 열리나

공공, 共은 사라지고 空만 떠돈다

일자리는 늘리되 정원은 늘리지 마라?

이 모순화법의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 정부다. 범정부 차원의 일자리 창출 총력 대책을 연일 내놓으면서도 정작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정원을 줄여나가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금융노조가 공단협 과정에서 임금 동결을 통한 신규 인력 채용이라는 카드를 던졌다. 정부가 ‘양보 교섭’을 올 노사관계 최대화두로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 노동계가 ‘선수’를 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제안이 나오자 금융 공기업들이 화들짝 놀라 발을 뺐다. 인원을 줄이라는 압력이 계속되고 있는 판에 늘릴 수는 없다는 게 그들을 물러서게 만든 이유다.

여기에 더해 대졸 초임 삭감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지금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하반기 최대 격전장이 공공이 될 수밖에 없는 구도로 가면서 팽팽한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노정 갈등의 최전선인 공공부문의 현재를 진단해 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4월 18일 기획재정부는 70개 주요 공공기관 기관장과 관계 장관이 참석한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공공부문 인력 감축 및 대졸 초임삭감, 청년인턴제 시행에 대한 실적을 점검하고 개혁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날 기획재정부는 정부의 선진화 방안 추진 실적에 대해 129개 기관에서 2만2천 명을 감축할 예정이며 18일 현재 91개 기관에서 1만4천여 명이 감축됐다고 보고했다. 또한 청년 인턴 1/4분기 채용 목표의 92.2%를 달성하고 대졸 초임 인하에 대해 2천만 원 이상 269개 공공기관 전체가 인하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졸 신입사원에 대한 초임 삭감, 그리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공공부문, 과연 정부의 중간점검 대로 ‘선진화’가 이뤄지고 있을까.

인원 감축, 조용한 전쟁

정부는 일괄적 방침을 통해 ‘2012년 예정 정원을 이사회를 통해 올해 정원으로 확정하고 이후 구조조정 될 인력에 대해서는 정원 외 추가 예산으로 집행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현재 정부가 발표한 2만2천여 명의 ‘구조조정 대상자’는 현재 해당 공기업 내에서 ‘아직’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속속 추진되고 있는 이사회 통과로 ‘정원 외 유휴인력’으로 분류된다. 즉, 아직 누가 될지 모르는 예비 퇴직자의 숫자가 미리 결정돼 버린 것이다.

전력 관계사 노동조합의 한 집행부는 이에 대해 “어차피 조기 감축을 한다고 해서 지금 다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추진과 함께 ‘인력 감축 현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이는 (MB정부가) 공공부문을 이용해 떨어진 지지도를 높여보려는 것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산하의 관광공사노동조합 박용환 사무국장은 “우리는 760명 중 221명, 전체 정원의 29.8%가 구조조정 목표”라며 “누가 대상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의 불안감이 심하다”고 전했다.

한편 2007년 인력 증원에 합의했던 기관 역시 올해 다시 일괄적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금융노조 한국감정원지부 김성찬 위원장은 “우리는 2007년 과도한 업무로 70여 명의 인력 증원에 합의했으나 현재 12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개별 공기업의 현황과 역할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전체 인력 감축을 정부의 성과로 가져가려 하면서 생기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침에 따라 2008년 70여 명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화를 합의했던 한 공기업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공기업 노동조합 홍보국장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정규직화를 했고, 정당성을 한 번 인정했으면서도 정원에 포함되지 않아 공중에 뜬 상태”라며 “일괄적 구조조정 방침에 따라 출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정원이 늘고 있는 곳도 있다. 전파진흥원의 경우 위탁교육 등 업무영역이 늘어나면서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원이 아닌 외부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사람은 필요한데 정부의 눈치는 보이고, 결국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채용하되 채용 없다

지난 3월 31일 기획재정부에서 발표된 공공기관 대졸 초임 인하 추진 계획에 보면 “대졸 초임 인하를 통해 발생한 재원으로 청년 인턴 등 직원 채용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나, 공공기관 정원은 공공기관 선진화 및 경영효율화 계획에 따라 감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채용’을 확대하되 ‘정원’을 늘리지는 않겠다는 엉뚱한 계획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각 공기업에서는 이와 관련한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올해 신규인력을 채용한 한 공기업은 대졸 초임 삭감 문제에 맞닥뜨렸다. 총연맹의 지침에 따라 초임 삭감 저지 투쟁에 돌입했으나 이후 상급단체의 방침이 ‘초임 삭감을 합의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혼란에 빠졌다.

현재 개별적으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이 노동조합의 한 집행부는 “이 문제는 절차상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서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개연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노총의 입장과 연맹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고 토로했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신현주 본부장은 “금융권의 시간 외 근로가 한계에 와 있는 상황에서 신입직원 채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신입직원 임금 삭감에 노동조합이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간 신규 인력 채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왔던 노동조합에서 채용을 반대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방침에 따라 청년 인턴을 채용했던 금융 공기업들 가운데 한 곳은 채용 두 달 만에 48%의 인턴이 은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책은행의 인사 담당자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청년 인턴을 채용했지만 이들의 객관적인 업무 능력은 은행 채용기준의 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돈을 만지는 만큼 채용에는 많은 비용과 신중한 절차가 필요하며 인턴의 정규직 채용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청년 인턴제의 실시가 오히려 ‘업무’를 늘리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 관계자는 “어차피 10개월 후면 떠날 사람인데, 일을 주지 않을 수도 없고 맡긴 일을 점검해 주고 또 설명하고 가르치다 보면 내 일을 할 시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인턴이 떠나도 걱정”이라며 “그 동안 일을 배분하다가 인턴이 떠나고 나면 다시 그 일을 떠안아야 하는데 사람을 자르는 마당에 인턴 없어졌다고 더 채용해 줄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한 노동자조합 집행부는 “대졸자 초임 삭감을 합의하면 그 다음 단계는 전체적인 임금 삭감이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며 “노동조합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승진 비율 제한 현실화 되나

정부가 공공부문 슬림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각 공공기관들 사이에서는 ‘승진 비율 제한’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점검 워크숍에서 발제를 맡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현재를 공기업 선진화 2기”로 규정하고 “공기업 3대 거품 빼기 전략을 통해 보수, 직급과 조직, 사업구조의 3대 거품을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공부문 노동계에서는 그간 승진자리 창출, 상위직급 확보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한국도로공사노동조합 정화영 위원장은 “간부 비율을 줄이게 되면 향후 파장이 클 것”이라고 전망하고 “평균 17% 정도를 고정 비율로 간다고 하면 (간부 비율이) 많은 곳은 13%를 더 줄여야 하는 곳도 있는데, 그러면 향후 적게는 몇 년간 아무도 승진을 못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감정원지부 김성찬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것을 보면 2월에는 반발이 심하니까 각 기관 특성 반영하고 재검토 한다고 하더니 3월 말 되니까 ‘검토 없다, 일률적으로 맞춰서 간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만약 우리 감정원이 공공성을 잃어버리면 부동산 가격이 마구 높아질 수 있는데 부풀려진 자산 가치가 은행 부실로, 그 부실이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모든 공기업은 공공부문으로서의 설립 이유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 금융 공기업 노동조합 임원은 “내가 보기에는 선진화를 민영화 전 단계로 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며 “직원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이럴 거면 차라리 민영화해서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공공연구소 김경근 연구위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평가제도와 정책은 민영화의 흐름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정부 통제 강화로 인한 공기업 내부의 구성원의 시각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도 민간기업의 잣대로 평가해 ‘공공기관’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일괄적인 인력감축 역시 “개별 공공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부서가 부족하고 남아도는지 평가나 분석 없이 인력감축이 된다면 반드시 필요한 부서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민영화에 대한 활용과 맞물려서 보자면 돈벌이가 가능한 부서는 인력이 유지되지만 공공적 역할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력을 축소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 공공부문은 술렁이고 있다. 한 노동조합 간부는 “신의 직장, 방만한 운용 등 공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공공부문의 근로조건 하락은 곧 민간 부분으로 전이되고 이는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정부가 비효율적인 부분을 혁신하고 개혁한다는 것까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다만 공공부문 구조개혁을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는 국정 패러다임과 이념에 따라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기조로 간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공공적 서비스 영역은 어느 정도인가. 정부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국민의 권리, 공공의 재화들이 공공부문의 무조건적이고 일괄적인 축소로 인해 침해받게 된다면 이는 향후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선진화 방안이 공공부문의 통제와 구조조정을 넘어 한국 사회에 전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과연 인력 및 임금의 축소로 이뤄지는 공기업 선진화가 국민들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그래도 난 꿈을 꾼다
인턴, 그들의 이야기

“정규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찾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죠. 여기 들어오기 전 구직자의 입장에서 본 상황은 참 암울했습니다. 월급은 낮출 수 있어도 내 미래와 장래의 꿈까지 낮출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지금 상황에서 갈 곳이 없습니다. 나이도 많고, 남들이 말하는 ‘스펙’도 안 되고.”

한 금융 공기업에서 ‘청년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홍정수(32, 남, 가명) 씨는 지난 4월 초에 ‘입사’했다. 그리고 오는 9월 30일에는 이곳을 나가야 한다. 그는 “일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정규직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일하는 것은 정말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가 지금 정규직으로 일하시는 분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도 여지껏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착실하게 취업 준비를 하면서 당당하게 내 역할을 하면서 살 수 있길 기대했는데 마치 선심 쓰듯 일을 주고 ‘어차피 넌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최근 행정직 인턴을 그만두고 다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김지연(27, 여, 가명) 씨는 “구직이 안 되면 차라리 다시 경기가 풀릴 때까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인턴을 하지는 않겠다”고 말하며 “‘난 죽었다 깨어도 여기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과 ‘도대체 내가 이들보다 모자란 것이 무언가’라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더욱 답답한 심정만 커졌다”고 토로했다.

공기업에서 3개월째 일하고 있는 한 인턴은 ‘일은 만족스러운가’라는 질문에 “아무리 만족스러우면 뭐 합니까. 어차피 일이 좋다고 해서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나중에 이 큰 곳에서 나가 더 적은 돈을 받고, 늘 밤 늦게까지 일하고 환경도 열악한 곳에 취업을 하게 된다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만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포기하고 주변을 원망만 한다면, 그건 결국 내 손해잖아요. 뭐가 문제였는지,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건 뭐고 정부가 잘못한 것은 어떤 건지. 똑똑히 기억해 둬야죠. 우리 20대들이 절대 지금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모자라서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멀어졌지만 저에게도 대학 생활 내내, 그리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고, 잊지 않고 있어요.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쓰디쓴 경험이 결국 약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0개월의 시간으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 청년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지식보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고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며 얻고 있었다. 올 한해 동안 1만9천여 명의 인턴이 공기업 및 대기업을 ‘스쳐 지나갈’ 예정이다.

이들이 다시 사회에 나왔을 때 반드시, 이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