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는 병원, 어디까지 왔나?
보호자 없는 병원, 어디까지 왔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5.0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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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서비스 향상에 일자리 창출까지 1석2조
전면 실시 위해선 사회적 합의 절실

지난 4월 14일 서울 행당동에 위치한 한양대학교병원 16층.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과 곽정숙 의원이 보건의료노조 나순자 위원장과 함께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한양대병원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실’을 방문한 것.

보건복지가족부(장관 전재희)는 지난 2007년 7월 1일부터 2008년 6월 30일까지 1년간 4개 병원을 지정해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한양대병원을 비롯해, 단국대병원, 건국대병원, 화순전남대병원에서 모두 21개 병실이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됐다.

한양대병원에서는 보호자 없는 병실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높은 호응에 따라 시범사업이 끝난 후에도 보호자 없는 병실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예산 문제로 규모는 기존의 6개 병실에서 6인실 3개 병실로 줄었다. 한양대병원 보호자 없는 병실은 여전히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양대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보호자 없는 병실에 입원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일반 병실에는 대기자가 없지만 보호자 없는 병실에 입원하려면 사흘 이상 기다리기도 한다. 환자들이 줄서서 입원하려고 하는 보호자 없는 병실. 그곳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줄 서서 기다리는 보호자 없는 병실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생기면 가족들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간병인 문제다. 가족 중 여유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보호자가 꼭 필요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사설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생업을 포기하는 일까지 생긴다.

보건의료노조가 올해 핵심 사업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을 제기한 이유다. 병원에서 환자에 대한 간병까지 보장해 준다면 환자나 보호자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병원의 서비스 질도 높이고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이자는 것이다.

보호자 없는 병원이 운영되면 환자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효율적인 간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병실에 보호자용 침대나 불필요한 짐이 없어 일반병실보다 조용하고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가족 입장에서는 병원비도 줄일 수 있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간병인으로부터 믿을 수 있는 간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아울러 한양대병원의 사례처럼 보호자 없는 병실은 병원의 홍보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또 보호자 없는 병원을 통해 심각한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노조는 보호자 없는 병원을 전면적으로 실시할 경우 앞으로 5년 동안 보건의료산업에서 간호사 9만1천 명, 간호사 외 인력 3만8천 명, 간병인력 18만1천 명 등 총 31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모두 6조575억 원으로 추산된다.

보건의료노조는 보호자 없는 병원의 단계적 확대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안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을 확대해 나가자는 것. 보건의료노조는 공공병원 64개, 민간병원 100개를 대상으로 2010년부터 1단계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2011년부터는 민간병원 100개를 추가해 2단계 시범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1, 2단계 시범사업을 통해 기반이 조성되면 2013년부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전체로 확대하자는 것이 보건의료노조의 구상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일자리 창출, 보건의료산업이 최적지

보건의료노조는 이를 위해 올해 보건의 날 토론회 등을 통해 보호자 없는 병원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이어서 1단계 시범사업에 앞서 올해 5월부터 12월까지 예비시범사업을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1단계 시범사업과 마찬가지로 64개 공공병원, 100개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예비시범사업을 통해, 3857억 원을 들여 4만3822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예비시범사업 실시를 위해 정부에 추경예산을 편성할 때 시범사업 예산을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보건복지가족부는 물론 각 정당의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이 요구는 여당의 반대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보호자 없는 병원이 실시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개별 병원에서 실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은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양대병원에서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주관한 시범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자체적으로 보호자 없는 병실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지역자활센터협회와 계약을 맺어 모두 12명의 간병인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3교대로 3개의 병실에서 간병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범사업 당시에는 모두 6개 병실이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됐지만 지금은 3개로 축소 운영되고 있다.

한양대병원이 보호자 없는 병실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간병인의 급여 일부를 노동부로부터 지원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간병인의 월급은 111만3000원. 이중 노동부는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지원 예산으로 간병인 1인당 87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나머지는 병원에서 부담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환자가 부담하는 간병비도 포함돼 있다.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는 정부의 예산지원이 없으면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실시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족한 간호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힘든 개별 병원들이 보호자 없는 병원 실시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이후 조사한 설문조사는 보호자 없는 병원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 병실을 이용한 환자들보다 보호자 없는 병실을 이용한 환자들의 만족도가 더 높게 나온 것은 물론, 환자 보호자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간병서비스 만족도가 높다고 응답한 보호자들이 89.0%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보호자 없는 병실을 이용하겠다는 보호자도 93.1%나 됐고, 93.9%는 다른 사람에게 보호자 없는 병실 이용을 추천하겠다고 답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당사자 간 지혜 모아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 외에도 보호자 없는 병실을 이용한 환자가 일반 병실 환자보다 하루에 56분의 의료 서비스를 더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환자와 보호자뿐만 아니라 의사 등 의료진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간병인에게 환자 보호를 맡겨 안심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는 “필요성이 확인됐으니 확대·전면 실시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높은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확대 실시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들도 많다. 예산 문제는 그중 하나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비록 올해 추경예산에 시범사업 예산을 반영시키지는 못했지만 내년 예산에는 포함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질적인 병원의 인력 부족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병원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데에는 노사가 이견이 없다. 100병상 당 의료인력 수를 기준으로 보면 의사 수는 미국이 22.9명인데 비해 한국은 13.9명 수준이며, 간호사 수는 이보다 더 심각해 미국 133.7명 대 한국 27.9명으로 거의 5배의 차이가 난다.

일자리 나누기가 사회적으로 화두이지만 병원 인력에 관한 한 나눌 일자리 자체가 없는 게 문제가 된다. 이러다보니 인력확충의 필요성은 보건의료산업의 해묵은 과제가 되고 있다. 최근엔 간호 인력을 수입하는 문제까지 제기될 정도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확대 실시하는 것은 곧 병원 인력을 확충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보건의료노조가 제기한 시범사업 근거에서도 드러나듯 단순히 간병인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와 간호사 외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간병 서비스에 필요한 재원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은 정부의 예산으로 재원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지원할 수는 없다. 결국 환자가 온전히 이 부담을 떠안게 하지 않으려면 건강보험으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관련 당사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 인력을 어떻게 충원할 것이며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건강보험 적용 여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준비해야 할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공급자와 소비자, 각 직종협회, 보험 당사자, 정부 등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보다 수준 높은 의료와 간병 서비스를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