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까지 이어진 추모행렬
새벽까지 이어진 추모행렬
  • 안형진 기자
  • 승인 2009.05.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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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분향소 밤풍경] 한 손엔 국화, 한손엔 촛불
시민들,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 떠나지 못해

▲ 덕수궁에 차려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은 한 손에 국화, 다른 한 손엔 촛불을 들었다. ⓒ 안형진 기자 hjahn@laborplus.co.kr

지난 25일 밤,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후 3일이 지났지만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밤늦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장사진을 이뤘다.

시민들의 조문 행렬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극장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손엔 촛불, 한 손엔 국화를 들고 침통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조문을 하기위해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2시간 30분 여.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조문 행렬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문행렬 곁에는 행렬을 인도하기 위해 줄이 길게 처져 있었다. 시민들은 고인에게 전하는 애통한 마음을 적은 리본을 만들어 매달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를 위해 매달린 리본엔 대통령에게 전하는 글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안형진 기자 hjahn@laborplus.co.kr

정동극장으로 향하는 골목에서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왔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동영상을 보는 시민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인을 추억했다. “이렇게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동영상 속 그의 직설화법에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통쾌해 하기도 했다.

덕수궁 돌담, 길 바닥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가득 담긴 대자보가 빼곡하게 붙었다. 정부의 표적수사를 힐난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 앞에서는 작은 다툼이 일어났다. 대자보의 내용이 너무 편향적이라는 이야기로 시작된 다툼은 감정적인 대화로 이어졌다. 지켜보던 시민들이 “여기 모인 모두가 민주시민이고,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으니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자”며 말리자 그들은 곧 해산했다.

▲ 삼삼오오 모여 앉은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다. ⓒ 안형진 기자 hjahn@laborplus.co.kr

경찰은 소수의 교통정리 인원을 제외하고 나타나지 않았지만, 덕수궁 앞을 둘러싼 경찰 버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버스에 국화와 리본을 달고 대자보를 붙였다. 조문을 마친 시민들이 택시를 타기 위해서는 버스를 지나 시청 앞 차도 한가운데 서야했다. 늦은 시간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와 함께 선 사람들이 위태로워 보였다.

경찰 대신 분주히 움직인 것은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조문 행렬이 보행자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통제했고, 취객이나 감정 섞인 목소리가 오고가는 일이 생기면 어느새 나타나 상황을 정리했다. 봉사를 하다가 짬이 생기면 거리 곳곳에 널린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대한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시민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고인을 추억했다. 그가 가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그의 빈자리가 비워진 술잔과 같이 허전하다. “내가 인정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 있나?” 술잔을 기울이던 한 시민은 울음을 터뜨렸다.

▲ 덕수궁 돌담길 근처 가로수에 매달린 국화와 추모 리본.ⓒ 안형진 기자 hjahn@laborplus.co.kr

조문 순서를 기다리던 한 시민은 인터뷰를 청하는 기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자기 구미대로 쓰는 게 언론사인데 굳이 인터뷰할 필요가 있느냐?”며 “이번 조문 행렬 역시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진보언론은 진보언론대로 자기 식대로 해석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게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길게 늘어섰던 조문행렬은 새벽 2시 40분 경 정리됐다. 길었던 행렬은 사라졌지만 조문객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았다. 몇몇 시민들은 조문을 마치고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낙담한 표정으로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