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서 무얼 배울 것인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서 무얼 배울 것인가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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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서 꾸준히 경제 체질을 바꾸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지난 1/4분기 실질GDP 성장률이 6.1%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집계돼 완연한 회복세에 들어섰음을 증명했다. 또 기업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경기판단지수는 제조업 기준으로 지난해 3/4분기부터 플러스를 회복한 이래 올 2/4분기에는 22%포인트를 기록했다.


일본의 위기극복 경험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사이클이 국내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는데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은 지난 80년대 토지 가격 상승에 따라 90년대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을 펼치고, 곧이어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시작됐다. 이는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소비와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그러자 부실채권이 늘어난 은행이 자금 회수에 나섰고, 자금 압박을 받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다시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지금 우리 경제와 거의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과 우리 경제의 닮은꼴은 이 뿐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가장 깊은 골 중 하나인 수출 호조 속 투자와 내수 동반 침체라는 현상을 일본도 똑같이 겪었다. 현재 국내 상황은 수출이 20%에 가까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설비투자는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이 걸어온 길도 똑같다. 91년 783억 달러 흑자이던 무역수지가 92년에는 1071억 달러로 크게 늘어난 반면, 90년 10.9%에 달하던 설비투자는 92년 -5.6%로 급전직하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 경제는 장기 불황의 길목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에 놓인 길은 여러 갈래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진 셈이다. 위기는 우리 경제의 체질이 일본 경제보다 훨씬 허약하다는데서 비롯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불황대처능력을 볼 때 기초체력이 미약해 일본처럼 10년간의 장기불황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경우 탈출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기회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라는 반면교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열쇠가 될 수 있다.


일본은 장기 불황을 맞아 안이한 정부의 자세와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 부족을 드러냈다. 정부가 산업 체질 개선에 먼저 나서지 않고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면서 엄청난 적자를 떠안게 됐고, 기업은 생산 기지 해외 이전에만 골몰하면서 정작 불황을 더욱 키우고 말았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해진다. 우선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정책기조를 유지해서 산업구조 건전화를 위한 투자 활성화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기 위한 투자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 이경 선임연구원은 “국내기업은 자립적인 기술력에 기초한 상품의 품질이나 성능을 강조하는 고부가가치 전략에 소홀한 채, 경쟁력 하락의 원인을 비싼 임금이나 불안한 노사관계에서 찾고 있다”고 꼬집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부품 소재산업을 고리로 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기술협력관계 덕택에 일본이 10여 년 내수의 장기불황을 벗어나게 됐다”면서 “수출부문의 국내 생산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부품 및 소재산업의 강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본식 대기업-중소기업 기술협력관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서너 발자국 앞서 나가고 있는 일본과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 사이에서 고사당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방법, 지금부터 노사정 경제주체들이 찾아가야 할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