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트 자동차 왕국은
어떻게 몰락의 길로 들어섰나
피아트 자동차 왕국은
어떻게 몰락의 길로 들어섰나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11.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변화에 안이한 대응·노사정간 소모적 대립 끝에 나락으로

 

지난 1987년에 당시 국영기업이었던 Alfa Romeo를 인수-합병함으로써 이탈리아에서 유일한 자동차 생산업체라는 독점적 위상을 굳힌 피아트자동차(Fiat Auto SpA)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피아트의 경영위기는 비단 이탈리아 자동차산업 차원의 문제로 그치기보다는 이탈리아 국가경제에 있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트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짐에 따라 국내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 자동차, 항공기, 중장비기계의 제조사업 뿐 아니라 보험, 전력에너지, 출판·언론 등의 다양한 사업부문을 포괄하고 있는 이탈리아 최대의 기업집단인 피아트그룹에 있어 자동차사업 부문은 그 모태가 되어 왔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 그룹 매출의 40~50%를 차지하는 핵심 주력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피아트자동차에는 1998년 이래 현재까지 적자행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2002년 한해 동안 무려 14.6억 달러 상당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이같이 주력사업 부문인 피아트자동차에서의 계속되는 사업부진과 적자 누적으로 인해 피아트그룹은 지난해 초에 66억 유로라는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서게 되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피아트
피아트자동차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에 대해 몇 가지 측면에서 그 배경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피아트자동차에 의해 그동안 추구되어온 시장경쟁전략에서 최근의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지적되고 있다.

 

피아트는 전통적으로 “이중특화전지략”, 즉 내수시장과 소형차종 중심의 생산-판매 전략에 고수하여 왔다. 그런데, 경쟁업체들이 1990년대에 들어 차종다원화 전략을 새롭게 추구하였던 것과는 달리, 피아트 경영진은 기존의 소형차종모델 개발-판매(1980년대의 Uno 모델과 1990년대 전반기의 Punto 모델에 의존하는 소위 “one-trick pony” 정책으로 표현되는 사업방식)만 고집함으로써 시장수요의 다변화에 대응치 못하고 국내시장에서뿐 아니라 전체 유럽시장에서도 1990년의 14%에서 2002년 현재 겨우 8% 수준으로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들어 이같이 국내외 자동차시장에서의 경쟁격화에 따라 피아트자동차의 입지가 상당히 위협받게 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취해진 경영진들의 공격적인 세계화전략이 최근의 경영위기를 자초한 직접적인 화근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무려 15억 달러 상당의 막대한 설비 투자를 통해 비유럽지역에서의 여러 생산기지를 건설함과 동시에 피아트 경영진은 월드카로서 Fiat 178 모델을 신규 개발하여 유럽 이외의 시장에서만 100만대를 생산-판매하겠다는 야심찬 “세계화(internationalization)”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피아트의 이러한 세계화전략은 1990년대 말에 불어닥친 중남미국가들의 재정위기와 폴란드·터키 등지에서의 판매저조로 인해 당초 계획의 100만대 생산-판매에 크게 못 미치는 40만대 수준의 영업실적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게 됨으로써 피아트 경영에 상당한 타격을 안겨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실패한’ 세계화전략과 더불어 피아트자동차의 경영위기를 초래한 점으로서 피아트그룹 차원의 사업다각화 전략이 지적되고 있기도 한다. 1990년대 상반기까지 자동차사업 부문에서의 신규차종 개발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지원해 온 피아트그룹의 경영진은 1990년대 하반기에 들어 자동차사업의 위축을 고려하여 보험이나 전력에너지 그리고 중장비기계사업부문의 신규 진출 또는 인수를 위한 투자를 통해 그룹차원의 사업영역 다변화를 모색하였다. 그

 

런데 피아트 그룹의 이러한 사업다각화전략은 자동차사업 부문에서의 신규차종 연구개발투자를 크게 제한하게 되어 피아트자동차의 경쟁력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
이상에서 살펴본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배경 속에서 1899년 창업 이래 최악의 경영위기에 직면하게 된 피아트그룹은 2002년에 들어 피아트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피아트자동차의 경영위기 상황 속에서 노사(정) 간의 심각한 대립이 심화노정되었던 바, 회사 경영진과 정부 그리고 노조들 간에 첨예한 입장차이는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표출되었던 것이다.


첫 번째로 회사(와 정부)는 피아트자동차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1~2차에 걸쳐 실시된 1만2000명 상당의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조합들은 회사의 고용감축과 공장폐쇄에 반대하며 근로시간-임금삭감을 통해 현행 인력의 고용을 유지할 것과 이를 위해 CIG 및 전직명단(mobility list)의 기금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여 일자리나누기(work sharing)의 임금보조재원으로 활용할 것을 거듭 요구하였다.


두 번째로는 몰락위기의 소생방안에 대해 노조들이 그룹의 소유주 Agenelli가족에 의한 사재 출연과 더불어 특히 정부에 의한 공적 자금의 투입을 통해 피아트자동차의 국영기업화를 통한 경영정상화를 요구하였던 반면, 회사 경영진과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통해 위기극복을 고집하고 있다.

 

 2001년 말의 경영위기에 직면하면서 초기에 피아트그룹의 경영진은 노조의 요구안과 마찬가지로 자동차사업 부문의 공기업화 방안을 검토하기도 하였으나, 2002년 중반에 채권단과 자본제휴관계에 있는 GM이 강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정부 역시 EU의 시장경쟁지침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함으로써 이같은 그룹 내의 국영기업화 논의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게 되었다.


피아트는 어디로 가나
그런데, 2002년 하반기에 피아트자동차의 부실경영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피아트그룹 내 최고경영진과 정부의 경제부처 그리고 일부의 언론기관에 의해 자동차사업부문의 자력회생이 불투명하다는 여론이 득세하면서, 지난 2002년 5월 자본제휴를 통해 피아트자동차의 주식지분 20%를 이미 차지하고 있는 GM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그룹 소유주인 Agenelli가족이 피아트자동차의 위기 타개를 위해 사재 출연과 일부 그룹계열사의 처분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해외 매각이나 공기업화의 길이 아닌 ‘그룹차원의 자력 회생’이 모색되고 있다.


1999~2001년의 기간 동안 한 발 앞서 대우자동차의 몰락과 사후 처리과정에서 경험하였던 우리 노사정 간의 숱한 갈등과 논란이 이탈리아 자동차산업에서 그대로 재연되었다.


1970~80년대에는 유럽자동차업계의 선두 자리를 넘볼 만큼 거대한 자동차왕국으로 군림하여 왔던 피아트가 급변하는 자동차시장 환경의 변화에 안이하거나 부적절한 대응을 함으로써 최악의 경영위기에 빠져들게 된 가운데 노사정 간의 소모적인 대립을 연출시키면서 이탈리아 경제에 크나큰 멍에를 짊어지우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게 된다.


이같이 피아트의 경영위기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자동차산업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서 무엇보다 우리 국내 자동차업계 역시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다 격화되는 시장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깊이 새기며 공존공영의 노사관계를 서둘러 만들어가야 한다는 ‘자명한’ 숙제를 제기하게 된다.

 

■ 이병훈_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