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노동자’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노동자’
  • 안형진 기자
  • 승인 2009.06.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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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배타성
십일조 없이도 나눔 실천하는 교회
정직한 소통 꿈꾸는 류상태 목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2005년 학교의 예배 강요에 항의하며 종교의 자유 선택권을 주장했던 당돌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권리가 있다면 학생들도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던 이 학생에게 학교는 제적처분을 내렸다. 대광고와 당시 대광고 학생회장이던 강의석 군의 이야기다.

학생 한명의 작은 목소리가 종교 선택의 자유라는 커다란 파장으로 우리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던 당시 강의석 군을 지지했던 대광고 교사가 있었다. 그는 사건이 있은 후 목사자격증을 반납하고 홀연히 한국 기독교를 떠났다. 그가 바로 류상태 목사다.
 
그가 4년 만에 다시 ‘목사님’으로 돌아왔다. 놀랄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목사로 돌아온 그는 이웃종교의 잔칫날인 부처님 오신 날에 ‘108배’라는 불교식 방법으로 ‘이웃 종교’에 대한 예의를 표시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는 배타성이 기독교의 문제

“제가 108배 한 것이 왜 이슈가 되죠?”
류상태 목사는 이렇게 되물었다. 기자가 108배라는 특별한 형식으로 예배했던 이유를 물었을 때다. 이슈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일반적인 기독교에서는 평신도조차 절을 하지 않는다.
“이웃집 어르신 생일날 가서 축하드린다며 그 분들 방식으로 인사드렸습니다. 그게 화제가 될 이야기인가요?”

기자가 십계명 중 1계,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경구를 들어 다시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성경은 고백의 언어입니다. 내가 아내에게 ‘평생 당신만 바라보겠다’고 말했다고 저에게 볼일 있는 모든 여자를 진짜 안 쳐다봐야 하나요? 왜 모든 걸 문자 그대로 해석합니까? 이런 교리들이 타 종교를 배척하게 하고 종교 간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천불지(예수천당 불신지옥)라고 말씀하실 편협한 분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의 신앙으로 교회와 이웃종교가 하나 되어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에요.”

‘다름’을 ‘틀림’으로 지각하고 소통을 무시한 채 무조건 배척하는 배타성. 그것이 그가 지적하는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배타적이라 모이는 ‘돈’

하지만 배타성은 교회를 유지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는 대한민국에 있는 90%의 기독교들이 배타적 교리로 돈을 모으며 부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그저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교인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라고 맹목적으로 가르치니 돈 내라면 돈 내야하고 쉽게 교회를 떠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교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교리는 서기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그가 무너져가는 로마제국을 되살리기 위해 정신적인 구심점을 찾다가 유일신교인 기독교에 주목한 것이죠. 이러한 논리 때문에 기독교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겁니다. 배타적 교리가 사람의 편의에 의해 정립된 것이죠.”

배타적으로 모인 돈이 사용되는 방법은 더욱 배타적이다. 일부 목회자는 수 억짜리 외제차를 타고 억대 연봉을 받는다. 그에게 이런 목회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데다 자질 없는 목회자는 난립하죠. 정말 큰 문제예요.”

교리의 벽으로 지켜지는 기독교의 치부를 이토록 낱낱이 파헤치는 사람이 기독교 목사라는 사실이 신선하다. 그 자신감의 배후에는 논란의 중심, 바로 그 ‘예수동아리교회’가 있다.

조금 ‘특별한’ 예동

그가 담임목사를 맡은 예수동아리교회(이하 예동)는 다른 교회에 다 있는 십일조가 없다.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한 달 회비 1000원 만 내면 된다. 모인 회비는 운영위원들이 투명하게 관리한다.

예동의 한 달 재정은 70만 원선. 그 중 절반은 이웃돕기, 30%는 교우 복지에 쓰고, 10%는 운영비, 나머지 10%가 류상태 목사의 월급이다. 목사인 그가 목회활동을 통해 버는 수입은 한 달에 고작 7만 원인 셈. 아내와 대학생 자녀가 둘 있는 한 가정의 가장에게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액수다. 그는 이것으로 생활을 할 수 없어 택시운전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영위원들이 ‘꼼수’를 쓴다고 한다. “30%가 교우 복지 예산인데 목사님도 우리 교우니까 생활이 어려운 담임목사를 위해 복지예산을 쓰자”면서 30만원을 주려한다는 것이다.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목소리 높여 말한다.

“그건 꼼수죠. 꼼수는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저도 성자형 인간이 아닙니다. 돈 보면 당연히 욕심나죠. 하지만 정직해야 합니다.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불우이웃을 돕고, 교우들을 위해서도 쓰고, 저도 작지만 생활비를 받습니다. 이것도 기성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죠. 금액도 작고,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지만 우리는 할 것 다 하고 있다는 겁니다. 떳떳하죠. 그게 앞으로 예동이 가질 힘이 될 겁니다.”

진정한 예수 운동은 ‘사회혁신운동’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가 말하는 진정한 기독교, 그것은 어쩌면 노동운동을 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예수님은 오늘날로 말하면 노숙자와 같은 노동자였습니다. 예수가 했던 운동은 종교운동이라기보다 사회혁신 운동이죠. 정의롭고, 평화롭고, 있는 자보다는 없는 자를 위한 나라. 이것이 진보신학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진정한 예수운동은 가진 자들에 대한 저항운동이며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민중운동이었다는 그의 말에는 그와 예동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묻어났다. 그는 기독교를 참으로 알기 위해서는 교회를 뛰쳐나가 노동자들과 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독교의 토양이 너무 보수적이에요. 모르는 사람도 많고, 알아도 말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말하면 저처럼 다 쳐내니까. 이단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죠.”

그의 꿈은 지금의 교리기독교가 가진 독선을 깨우쳐 종교 갈등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 활동을 ‘기독교 의식 개혁 운동’이라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기독교 의식 개혁운동의 방향은 두 갈래로 명확하다.

첫 번째는 글을 써서 알리는 것이다. 그가 가장 집중하고 싶은 분야도 바로 글쓰기다. 글은 한 번 써놓으면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활이 여의치 않아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당신들의 예수(삼인, 2007)>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삼인, 2008)>, <소설 콘스탄티누스(인물과 사상사, 2008)> 등 몇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종교관을 가감 없이 알려왔다.

두 번째는 예수동아리교회다. 교우들이 많아지고 예동과 같이 열린 교회도 교회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 현재의 보수기독교에 경종을 울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분명 어려운 일이고 실패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꿈꾸는 것은 자유 아닙니까? 만약 실패하더라도 저는 정직하고 떳떳합니다.”

아닌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위해 자신이 가졌던 많은 것을 포기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이단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가 지적하는 기독교의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항변할 수 있는 기독교인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가 전하는 작지만 무거운 목소리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열어 변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