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은 과학이다
협상은 과학이다
  •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 승인 2004.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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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기준을 사용하라

최영우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올해 임금협상에서 노동조합은 기본급 11%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그 주장의 근거는 단순히 며칠 전에 타결된 관계사의 임금인상률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사측은 이에 대해 경기침체를 이유로 임금동결을 주장하였다.’(C사의 사례).

 


지난호에서 WIN-WIN 협상을 위해서는 협상의제 즉, ‘문제’를 ‘사람’과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분리시킨 협상안을 어떤 방법으로 상대방이 저항 없이 수용하도록 만들 것인가.

 

우리의 협상관행을 보면 요구안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자료의 제시 없이 단지 입장을 주장하고 그것을 힘으로 관철시키려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난다. 협상에 대한 사전준비에 소홀한 채 협상을 단지 감(感)으로 진행하거나 문제에 대한 분석없이 All or Nothing으로 밀어부친다.


협상에 임하는 당사자는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합의한 결과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최선의 대안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은 주관적인 존재라서 감정에 치우치게 되고, 협상을 진행하면서 객관적인 목표보다는 주관적으로 원하는 바에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협상태도는 협상을 통해 현안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WIN-WIN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힘을 통해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하면 상대가 굴복당하기는 커녕 강한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고, 설사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결과에 승복하거나 성실히 이행할 생각이 없다.

 

협상이 각자의 입장에 근거하여 일방적인 주장만 난무하거나 사람과 결부되어 감정에 좌우될 때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은 서로의 감정이나 의지와는 독립된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한 협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사협상에서 ‘객관적인 기준’이란 합의절차와 적용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형평성, 회사의 지불능력, 물가상승률과 노동생산성, 적용과 실시의 용이성, 관련 데이터와 전문가의 견해 등이 될 것이다. 입장에 근거한 협상에서 협상자들은 그들의 입장은 방어하고 상대방의 입장은 공격하는 것에 전력투구하게 되는데, 상대를 굴복시키려고 압력을 사용할 때보다 객관적인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협상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다.


압력은 협박, 최후통첩(final offer), 벼랑끝 전술, 위장된 신뢰, 무대응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럴수록 압력이 아닌 원칙에 근거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즉, 상대방의 압력에 상관하지 않고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이에 근거하여 협상과정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협상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어떤 특정 기준이나 논리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상대방은 그 제안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며 나아가 상대방도 그 합의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만족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케이크 한 조각이 있다. 두 형제가 이를 서로 많이 가지려고 다투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상충된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해결하여 둘 다 만족시킬 수가 있을까. ‘케이크를 자르는 것’과 ‘자른 것을 먼저 가지는’ 두 가지 행위를 각자 하나씩 선택하도록 해보자. 형에게 먼저 케이크를 자르도록 하고 동생에게 먼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정한 절차’(impartial procedures)이며, 협상결과에 대한 만족은 바로 이러한 공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앞의 C사의 사례에서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임금협상을 진행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동결을 주장하는 회사측은 각각 그렇게 주장하는 논리적인 근거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노동조합이 임금협상과정에서 주로 임금인상 요구기준으로 삼고 있는 생계비 논리와 사측의 생산성 논리가 좋은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양자의 주장근거가 일면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름대로의 근거기준을 개발하여 논리적으로 상대를 이해시켜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압력에는 굴복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논리에 승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