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하면 다 좋다
뭐든지 하면 다 좋다
  • 권석정 기자
  • 승인 2009.06.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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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에서 하늘을 지키는 남자
아시아나항공 정비기술팀 황재술 기술감독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사고율이 훨씬 낮다는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자동차를 탈 때보다 비행기를 탈 때 더 긴장되곤 한다. 비행기에서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축소모형 같은 풍경들은 앙증맞기 그지없지만 1만 미터 상공을 날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진다.

보잉747의 경우 한 번에 실어 나르는 승객이 359명이다. 그리고 승객을 태우고 이륙하는 비행기의 무게는 무려 400톤에 육박한다. 400톤에 이르는 거대한 물체가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싣고 20시간 이상 공중에 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안전’이다. 비행기가 아무리 자동차보다 사고율이 낮다고는 하지만 한 번의 사고가 엄청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항공정비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비행기’란 단어를 생각하면 ‘상냥하고 예쁜’ 스튜어디스나 ‘고연봉의 폼 나는’ 파일럿을 떠올리곤 하지만,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실하고 꼼꼼한’ 정비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항공정비 분야 기술개선으로 서울시장상을 수상하고 아시아나항공 최초로 두 번이나 ‘이달의 정비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아시아나항공 정비기술팀의 기술감독 황재술 과장은 38살의 젊은 명장이다.

‘항공기정비작전’의 감독

인천공항에서 북인천 톨게이트를 지나 해안도로를 타고 들어가다 보면 항공기들의 안식처인 ‘아시아나항공정비고’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점검이 이루어진다.

정비를 위해 이리저리 해체된 비행기들이 들어서 있는 항공정비고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바로 옆에서 보면 정말 거대한 비행기들과 자동차 한 대 크기만 한 부품들이 들어서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황 과장은 항공정비에 대해 먼저 ‘무결함’과 ‘복잡성’을 강조했다.

“항공기는 조그만 결함도 곧바로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체계적인 정비가 중요하죠. 그런데 항공기는 수만 가지의 부품들이 연동돼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함부로 수리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수리에 앞서 먼저 그에 맞는 정비 프로그램을 짜야 합니다. 저는 그 수리 및 개조의 절차를 마련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황 과장은 아시아나항공 정비기술팀의 전자기술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항공기를 운항하는 항법장치, 화재감지장치, 항공기에 전기를 제공하는 전기동력장치 등에 대한 기술 검토 및 결함을 파악하고 해결한다. ‘직접 기계를 고치는 선수’가 아니라 ‘작전을 꾸리는 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즉 어떻게 고칠 것인지 경로를 제시하는 셈이다.

작업절차를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작업절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항공기의 구조에 대해서 깊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 외에도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정비사들이 법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절차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미연방항공국(FAA), 유럽은 유럽연방항공국(EASA)에서 각각 항공사에 개조 및 점검에 관한 법적 절차 및 지시사항을 내린다.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그러한 사항들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렇게 절차가 복잡한 이유는 그만큼 비행기가 많은 인명을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내용들을 작업자들이 일일이 다 알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황 과장은 기술적, 법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들을 종합해서 정비절차를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을 ‘정비기술지시’라고 부른다.

비용 절감이 버릇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항공기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항공기는 마음만 먹으면 반영구적으로 계속 쓸 수 있다. 단, 정비프로그램에 의해 부품을 정기적으로 교환해줘야 한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타이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항공기 관련 부품들을 수입해서 쓰고 있다. 지금 전 세계의 항공기 시장은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데 이 두 회사에서는 각 항공기의 정비에 관한 매뉴얼을 제공한다.

황 과장의 경우 일단 그 매뉴얼을 기본으로 작업절차를 꾸린 후 작업자들에게 전달하게 된다. 문제는 항공기의 특성상 부품을 자주 교환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항공기와 본래의 매뉴얼 사이에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해 수리할 때 빈틈이 발생할 수 있다.

부품이 많은 항공기의 특성상 한번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원인을 규명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물론 매뉴얼은 수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부품교환으로 달라진 사항을 매뉴얼에 반영하기 위해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의뢰를 하면 무려 20만 달러(약 25억)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황 과장을 비롯한 정비기술팀은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생고생’을 마다않는다. 아시아나항공기와 기존 매뉴얼간의 차이점을 일일이 찾기 시작했고 항공기 사양에 맞는 정비절차를 따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매뉴얼의 내용을 하나하나 수정하고 그 내용을 재확인하기 위해 따로 부품제작사에 문의·회신받기를 한 달여. 무사히 초도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당시의 초안을 바탕으로 많은 부분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비용을 줄이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일단 비용이 많이 나오면 왜 비용이 많이 나올까?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버릇처럼 합니다. 그러다보면 거기에 관련된 작업의 절차라든가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파악하게 되고 자연스레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상(賞)’ 보다 사람이 좋다

아시아나항공에는 ‘이달의 정비인’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 상은 항공기에 결함이 발생했을 때 슬기롭고 빠르게 해결한 정비인에게 주는 일종의 공로상이다. 남들은 한번 타기도 힘든 상이지만 황 과장은 아시아나항공 최초로 두 번씩이나 이달의 정비인에 뽑혔다.

2005년에 ‘자동으로 작동되는 비상조난위치발생기’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에 장착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당시 황 과장은 5개 기종에 대한 작업절차를 혼자서 추진했는데 회사 차원에서도 처음 하는 초도작업이라 준비할 것이 많았다고 한다.

황 과장은 예전의 경험을 살려 항공기 개조작업 시의 작업절차 및 도면에 대해 수정해야 할 점들을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부품제작사에서 지원 나온 외국엔지니어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이로써 50여대의 항공기에 비상조난위치발생기를 장착하게 됐고 황 과장은 ‘이달의 정비인’으로 처음 선정되게 됐다.

두 번째 수상은 2007년이었다. 추석을 코앞에 둔 9월 어느 날 밤 항공기 한대의 화물칸에 160가닥이나 되는 전선이 타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황 과장은 추석연휴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속히 작업을 끝내야 했다.

일단 160가닥이나 되는 전선의 스펙과 이와 관련된 수백 개의 부품을 찾아서 자재를 신청함과 동시에 민첩하게 정비기술지시를 만들어 작업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게 했다. 다행히 조기에 자재가 확보됐고 추석 전에 항공기를 투입할 수 있었다.

“작업자들이 모두 밤샘작업을 한 덕분에 추석 전에 항공기를 띄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체정비팀과 김포안전정비팀 작업자 분들이 야간작업에 투입돼 짜증 한번 안 내고 다음날 아침까지 작업해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죠. 지금도 그분들을 만나면 같이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오래된 친구들 같고 그렇습니다.”

자기 담당 아니어도 알아두면 도움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황 과장은 일을 할 때 “본인의 업무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무슨 업무를 하는지 아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항공업계가 워낙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타 분야에 대해 많이 공부할수록 일을 보다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입사 초기 선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황 과장은 회사에 막 입사했던 1997년 당시 파트장으로 있었던 심건형 부장이 “뭐든지 하면 다 좋다”라고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황 과장은 이 ‘짧은 문장’을 “이것저것 기회가 있을 때 다 해보면 다른 업무를 맡을 때 적응도 빠르고, 업무효율도 높아진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런데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인가? 황 과장도 처음에는 일을 할 때 “내 담당이 아닌데 그거 왜 해야 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의 말대로 입사초기부터 여기저기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던 것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됐다.

황 과장은 현재 3살, 1살 난 두 딸이 있다. 지금이 가장 사랑스러울 나이지만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아줄라치면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일쑤다.

“현장에서 야간에 작업을 하다가 문제점에 봉착하면 문의가 오기 때문에 아예 집에 일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죠.”

퇴근 후에도 맘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이 달가울 리는 없겠지만 항공업계의 특성상 1년 365일,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명절에도 황 과장은 항상 비상대기를 하고 있어야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예방정비를 통해 미리미리 사고가 안 나게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저 말고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항공기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품질 심사위원’ 역할 맡기도

황 과장은 2005년부터 아시아나항공에서 ‘품질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품질전문가란 회사직원들에게서 올라오는 각종 제안들을 심사하는 일종의 심사위원이다. 황 과장이 심사한 제안이 작년 한 해에만 무려 300건이 넘을 정도로 사원들의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

불과 30대 중반의 나이에 품질전문가로 활동하게 된 황 과장은 당시 심사위원으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사이버대학에서 ‘품질경영과정’을 공부했다. 당시 리포트를 쓰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그때 공부한 것이 심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황 과장은 현재 품질전문가로서 회사직원들이 ‘품질경영대회’와 같은 대외활동 시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