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 매각, 왜 논란인가?
한국항공우주산업 지분 매각, 왜 논란인가?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6.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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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지역민, 매각 후 부실화 될 우려 지적
정부, 공격적 마케팅 위해 민간기업 매각이 필수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에는 100만㎡의 광활한 대지에 대한민국 유일의 완제기 제작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주)(대표이사 김홍경, 이하 KAI - KOREA Aerospace Industries)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항공기를 제작한다는 것이 생소하지만 한국은 엄연한 세계 12번째 초음속 항공기 제작 국가다. 비록 지난 2월, KAI가 제작한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의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수출이 무산돼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국의 지위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지만 현재 싱가폴, 이라크 등과 수출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그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항공업계는 말한다.

이런 KAI가 지금 M&A 시장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으로 산업은행 민영화를 주장하며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KAI의 지분을 팔아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마침 이 매물을 사겠다는 기업도 있다. 그런데 KAI노동조합과 사천 지역민들은 KAI 지분 매각반대를 외치고 있다. 도대체 사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국내 유일의 완제기 제작 업체

1999년 10월, 정부는 항공산업의 역량을 집중하고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당시 우주항공산업에서 경쟁하고 있던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분야를 통합해 KAI를 설립했다. KAI는 1999년 12월, 초도비행을 완료한 기본과정 훈련기 KT-1(단발 터보프롭 항공기)을 개발완료 했으며, 92년 개발에 착수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이 2002년 8월 초도비행에 성공한 이후 2003년 2월 초음속 돌파 비행 성공, 2006년 1월 최종 개발완료했다.

▲ 세계가 놀랄만한 성능을 가진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 한국항공우주산업(주)

현존하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중 가장 좋은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T-50(일명 ‘Golden Eagle’)은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사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완성됐지만 설계부터 제작까지 KAI에서 수행했다. T-50에 대한 외국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군 또한 T-50을 이용해 조종사 훈련을 수행한 결과 훈련기간을 20% 단축했고, 훈련비용은 30% 절감한 반면 조종사 기량은 40%가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후 KAI는 2006년에 국방부와 2012년 개발완료를 목표로 한국형 헬기 개발사업(KHP) 계약을 체결하고 한국형 다목적 헬기(KUH)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듯 군수산업에서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민간 항공기 제작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KAI는 현재 보잉(B787), 에어버스(A350)의 기체조립과 아파치 헬기의 동체조립, F15K의 주익부분(날개부분)을 제작·납품하고 있다. 특히 민항기 같은 거대 항공기는 한 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부품을 만들어 미국이나 유럽으로 부품을 이동시켜 조립하기 때문에 국제공동설계에 참여하지 않으면 단순 생산으로 그치는 경우가 있지만 KAI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국제공동설계에 직접 참여해 설계와 제작을 함께 하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로 매각 위기 몰려

이렇게 성장일로를 걷고 있는 KAI가 갑자기 M&A 매물로 시장에 나오게 된 연유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 때문이다. 2008년 8월,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100여 개 안팎의 공기업에 대해 민영화·통폐합·기능조정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때 산업은행은 민영화가 결정됐다. KAI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민영화에 앞서 KAI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주주 분포도

산업은행의 지분만으로는 경영권 확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2대 주주인 두산인프라코어가 51억 달러를 쏟아 부어 인수한 미국의 건설장비업체 밥캣(Bobcat)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자 산업은행의 지분매각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산업은행과 두산인프라코어의 주식을 합치면 51%로 KAI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KAI에 대한 인수의사를 표시한 기업이 나타났다. 2003년 KAI를 적대적 M&A로 인수하려고 시도했으나 당시 종업원들의 강한 반발로 실패했던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은 KAI 인수에 대해 “항공 운항사업과 항공기 제작 사업이 합쳐질 경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공동매각 방식을 통해 산업은행을 포함해 현대, 삼성, 두산 등 어떤 곳이든 지분매각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KAI노조원들이 본사 운동장에서 지분매각 반대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산업노동조합

부실기업이 알짜기업 인수하는 꼴

그러나 이러한 대한항공의 KAI 인수 시도에 대해 한국항공우주산업노동조합(위원장 박한배, 이하 KAI노조)과 사천지역 주민들은 “한마디로 부실기업이 알짜기업을 통째로 삼키려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KAI가 1999년 통합법인으로 출발할 당시는 항공산업 3사의 부실을 떠안아 엄청난 부채를 안고 출발했다. 이후 T-50의 개발 성공과 항공 군수 장비 개발의 증가, 민간 항공기 제작 증가와 함께 2006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산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대주주로 들어서자 금융비용이 감소해 적자폭은 크게 줄었으며 2007년 마침내 그동안의 적자에서 벗어나 경상이익 42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KAI는 계속해서 2008년 경상이익을 191억 원으로 증가시키면서 2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또한 현재 수주잔고가 5천억 원에 달하며 2009년 상반기에만 470억 원의 영업이익이 발생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경우 2008년 1조 4천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항공산업의 특성상 계속적인 R&D 투자를 통한 기술인력 확충 및 신기술개발이 필요한데 적자상태의 대한항공이 인수할 경우 지속적인 R&D 투자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30년 동안 사업을 지속한 대한항공이 제작부문의 기술개발인력으로 단 90명(KAI는 902명)을 두고 있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전까지 투자 의지가 없던 기업이 새롭게 투자 의지를 보일 것이냐는 의문 또한 상당하다. 기술개발팀에 근무하는 KAI노조 이창수 부위원장은 “대한항공과 KAI는 개발 규모 수준이 비교가 안 된다”며 “그런 대한항공이 KAI를 인수한다고 달려드는 것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시너지 효과? 알 수 없다

여기에 KAI노조와 항공업계는 항공제작 산업과 항공운송 산업이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대한항공의 주장에 대해서도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만약 대한항공의 주장대로 시너지효과가 있다면 외국의 유수한 항공운송업체나 항공제작업체가 왜 M&A 혹은 합병을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KAI노조는 운송산업과 제작산업의 이해 충돌이 발생할 시 한쪽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항공기 한 대를 팔기위해서는 전 국가적 세일즈가 필요하다. 과거 한국의 차세대전투기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서 미국의 대통령까지 나서 세일즈에 나섰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기를 구입하는 쪽에서는 여타의 다른 무언가를 얻길 원한다.

▲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생산한 기본과정 훈련기 KT-1. ⓒ 한국항공우주산업(주)

노조는 이러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KAI가 제작한 T-50의 UAE 수출실패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UAE는 한국의 T-50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자국 항공기의 인천공항 취항을 요구했지만 대한항공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돼 결국 T-50 수출이 실패한 것이란 주장이다. KAI노조 박한배 위원장은 “국가기간산업으로 성장해야 할 항공산업이 부실 민간기업에 인수돼 이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그것은 한 기업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손해를 보는 것”이라며 “KAI가 대한항공으로 가는 순간 대한민국의 항공기 제조 산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KAI노조가 주장하는 첫 번째는, 국가기간산업으로의 성장과 전 국가적 세일즈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분의 일부를 계속해서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항공산업의 개발도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인도 등은 100% 국영기업이고, 한국의 T-50과 경쟁하고 있는 M346을 제작하는 이탈리아의 에어마키(Aermacchi)사도 정부가 지분을 30.5% 소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지속적인 투자와 항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국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산업은행의 출자전환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시황에선 자칫 헐값에 넘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마저도 안 된다면 둘째로, T-50의 수출이 안정궤도에 들어설 때까지 만이라도 현재의 지분구조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대당 300억 원이 넘는 항공기를 구매하는 외국 바이어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보증 없이 민간기업과 거래하는 것에 난색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T-50의 수출이 안정화되면 증시에 직접 상장하는 방법을 통해 안정된 자금을 확보하고 주주사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KAI가 이런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항공산업에 대한 비전과 투자의지가 있는 새로운 주인을 찾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러한 KAI노조와 지역민의 주장에 정부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T-50의 개발이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수출실적이 없다는 것은 KAI가 공기업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민간기업으로의 매각을 통해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수립해야 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측 셈법이다. 여기에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틈날 때마다 KAI 인수에 대한 의지를 표시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산업은행의 지분매각이 지지부진하다며 일침을 놓고 있다. 앞으로 사천발 KAI 매각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봉재석기자 jsbong@laborplus.co.kr
- 임기 시작이 2008년 9월이었다. 당시 이미 산업은행의 지분매각은 결정된 상황이었는데 임기 시작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우리 회사의 지배구조가 그렇다보니까 선거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이를 조합원들에게 확인 받은 것이다. 어차피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조합원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투쟁을 즐기자. 피해갈 수 없는데 짜증내고, 화만 낸다고 방법은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어려움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 지분 투쟁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번 투쟁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무엇인가.

“서울에 올라가서 국회의원 만나고, 정부부처, 심지어 산업은행 관계자를 만나도 우리의 주장에 반박을 못한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은 싸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자꾸 논리적 부분, 시장원칙이 무시되고 정치적 논리가 모든 논리를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 내에서도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오히려 나에게 반문한다. 그런데도 매각 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있는 거다. 이런 싸움을 우리보고 하라는 거다.”

- 2007년, 2008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임금협상을 사측에 위임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이 상황에서 임금 올려봐야 얼마나 올리겠는가. 임단협을 정식으로 하려면 2, 3개월 걸린다. 그러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지분 투쟁 손 놔야 한다. 노조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다. 지분투쟁은 회사의 존폐가 달려있는 문제로 임금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회사에 임금은 위임하고 지분투쟁에 나서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조합원에게 물었고 조합원들이 찬성해줬다. 차후에 회사는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 이번 투쟁뿐 아니라 앞으로의 노조활동은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가.

“조합원들의 요구에 의해서만 노조를 운영하면 항상 뒤쳐진다. 조합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먼저 읽어야 한다. 그래야 노조가 한발 앞서 대처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생각하는 부분을 먼저 진단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앞으로의 활동도 조합원의 요구에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도 먼저 찾아서 대처해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