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노사관계 담당관제 시급하다
정부부처노사관계 담당관제 시급하다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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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행정’ 아닌 노사관계 녹아든 정책 만들 시스템 필요


민주택시연맹이 6월16일 새벽 4시를 기해 돌입했던 총파업이 만 하루를 넘기지 않고 해결됐다. 이번 파업은 지역별 택시 총량제, 전액관리제 강화 등 해결이 쉽지 않은 쟁점들이 산적해 있었고 잇따른 택시 노동자 분신과 보건의료노조 파업과의 연계 등으로 인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었는데 쉽사리 타결되자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에 대해 민주택시연맹의 한 관계자는 “건설교통부의 노동정책 보좌관 제도가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앞서 건교부는 노사관계전문가인 이성희씨를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기용한 바 있다. 연맹 관계자는 “앞으로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확실히 건교부의 대응방식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간 화물, 택시, 발전, 병원, 철도 등 공공부문의 노사갈등이 격화되면서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사회 전체적인 이슈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함께 공무원노조가 노동3권 허용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 방침 등을 볼 때 조만간 합법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노조가 합법화 될 경우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공안 및 일부 업무를 제외한 6급 이하 전체 공무원을 포괄하는 공무원노조와 해당 정부 부처 내지 지방자치단체의 직접 협상 방식이 도입된다. 또 기존에 노조가 허용되었던 현업공무원(체신, 철도, 국립의료원), 교원과 더불어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연기관, 지방공기업과 같은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형성될 전망이다.

현재 공무원 신분과 민간 신분 구분 통계가 나와있지 않은 교원을 제외하더라도 공공부문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체 대상 70만명 중 42만명이 가입해 6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민간부문의 12%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다. 또한 교통, 화물, 발전 등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공익적 성격을 지닌 노사관계 부문까지 따지면 다뤄야 할 분야는 더욱 커진다. 100만명 이상의 노사관계를 정부가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사용자 역할을 하거나 예산 등에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부는 아직 노사관계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간 정부는 노사관계를 배제한 채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에 들어가고, 이에 대한 노조의 반발에 부딪히면 뒤늦게 대책을 내놓는 ‘뒷북 매커니즘’이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부부처 담당자들이 “노사관계는 노동부에서 처리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이 정부부처 노사관계 담당관 제도이다.

사실 이같은 시도가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정부 각 부처에 노사관계 자문관 제도를 도입하려는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각 부처들의 반발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당시 노사관계 자문관 제도를 추진했던 한 관계자는 “각 부처들에서 노사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였고, 또 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화물연대나 철도노조의 파업 등을 겪으면서 산업정책도 노사관계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 정부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산업자원부는 3년 전 산업혁신과를 신설해 노사관계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다루도록 하고 있다. 산자부 산업혁신과 변종립 과장은 “이전에는 사무관 한 사람이 맡아서 하던 노사관계 업무를 보다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과 차원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대로 건교부의 경우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를 통해 노사관계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성희 정책보좌관은 “정책 수단을 갖고 있는 주무부처가 노사관계와 관련한 사전 예방과 분쟁 발생시 효과적인 해결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며 공공 부문 노사관계의 주무부처의 신속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임상훈 연구위원은 “담당관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더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시행될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청와대 노동개혁 TF팀장을 지낸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은 “공무원노조가 공식화되면 부처의 대응방안이 나올 것”이라며 “이 경우 각 부처에서 사용자 그룹을 형성하게 될 고급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노사관계 전반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노사관계를 국가적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인적 인프라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입안과정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이나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사전에 충분히 점검하고 예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과제로 남는다.
그런 측면에서 이성희 정책보좌관의 지적은 곱씹을 만하다.
“부처마다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다. 정책 전문성 속에서 노사관계를 고민하는 마인드가 녹아 들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따라서 산업 정책과 노사관계를 상호보완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