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작업장 혁신인가
왜 작업장 혁신인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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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

편집위원장·한국노동혁신연구소장

mnorhee@kiiwp.com


월간 <참여와 혁신>은 작업장 혁신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 노사관계 혁신의 성패가 작업장 혁신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문제에 늘 관심을 갖고 대안을 찾아 나갈 계획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왜 작업장 혁신인가?

 

■ 노사관계의 중심지
작업장은 노동자가 직접 노동을 하는 곳이다. 이들은 이 작업장에서 기업의 정책과 태도, 기술, 근로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그들의 노동의식이 만들어지며, 노사관계는 이를 바탕으로 때로는 대립적으로, 때로는 협조적으로 나타난다. 작업장은 이렇게 노사관계가 형성되는데 중심이 되는 곳이다. 작업장이 개선되지 않으면 노사관계의 개선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거시적 관점에 치우쳐 있었다.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을 변경하는 커다란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그리하여 정부가 바뀔 때마다 ‘로드맵’이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음은 지금의 노사관계가 말해준다.
노사관계는 제도적인 큰 틀을 바꾼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미시적 관점에서 출발해 볼 때다. 작은 변화가 결국 큰 변화를 일으킨다. 작업장 변화를 통해 노사관계의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 삶의 중심지
실업을 양산한다는 부정적 의미이든 중노동에서 해방된다는 긍정적 의미이든 얼마 전부터 ‘노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노동은 아직 우리 삶의 중심에 서 있다. 작업장에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노동자의 삶은 크게 직장생활과 일상생활로 구분된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었다해도 잔업, 특근 등을 따지면 노동자들은 아직 하루의 절반은 거의 작업장에서 보낸다. 또한 이들의 사회적 관계는 대부분 직장의 동료, 상하 직원으로 형성된다. 술자리나 등산, 낚시 등 여가활동도 대부분 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작업장에서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일상생활도 더 즐겁게 보낼 가능성이 높다. 직장생활에서의 만족도가 높으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적어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해지고 여가활동을 즐길 여유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업장은 노동자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다.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은 작업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 정체성의 중심지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으레 명함을 교환한다. 거기에는 자신의 직업이 표시되어 있다. 자신의 소개는 이렇게 직업과 연결되어 시작된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은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작업장이 중요한 이유다. 자신이 일하는 작업장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직업을 남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다.
작업장은 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도록 민주적이고, 흥미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자신의 일에 아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노동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이른바 ‘노동도구주의’에 빠지기 쉽다. 이는 노사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노동동기가 물질적 차원에만 머물게 됨으로써 인간성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고령사회의 중심지
21세기 들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노동력의 고령화다. 고령사회에서는 노인도 일을 해야 한다. 젊은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제 작업장은 나이를 떠나 전인구의 생활중심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노인이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도 건강하려면 젊어서부터 좋은 일자리에서 일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강도 높은 노동, 억압적인 분위기, 구성원간의 불신 등은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을 높여 작업자의 노동능력을 일찍 망가뜨린다. 이렇게 되면 노인이 되어서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되고, 고령사회는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인간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작업장 혁신은 시급한 과제다.

 

■ 경쟁력의 중심지
지난날 노동자의 자율성은 매우 적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경쟁력은 현장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경쟁이 첨예화되면서 제품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의 기호도 다양해졌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기술의 변화 역시 매우 빨라졌다. 전체적으로 기업의 환경이 매우 복잡해졌다.
환경이 복잡해지면 단순한 지시·복종의 체제로는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여기저기서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수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현장에서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조직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위에서의 지시보다는 작업장에서의 자율적 결정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아진다. 최근 ‘자율성’ ‘창의력’ ‘유연성’ ‘지식경영’ 등의 개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은 관리자의 통제 능력보다는 현장노동자들의 유연한 상황대처 능력에 달려 있다. 경쟁력의 중심지는 위(관리부서)로부터 밑(작업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작업장 혁신이 필수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