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노동자 늘리는 실업 대책은 실패한다”
“저임금 노동자 늘리는 실업 대책은 실패한다”
  • 승인 2004.07.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 보스턴대 피터 도린저 교수 국제노사관계학회 특별강연서 지적

피터 도린저

미국 보스턴대, 노동경제학 교수

 

“통계에 잡히는 형식적 취업자 수를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국의 실업대책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 서울에서 개막된 제 5차 국제 노사관계학회 아시아 대회의 특별강연을 맡은 피터 도린저 교수(미국 보스턴대, 노동경제학)는 저임금 노동자를 늘리는 것은 진정한 실업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질이 나쁜 일자리를 늘리기 보다는 현재 저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여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 노동시장 유연성의 효율성과 허위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도린저 교수의 강연은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관한 미국의 모델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이 모델의 실제적 효율성과 허구성에 관해 논의했다.
그는 많은 경제이론이 노동시장 내부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기업 이익의 극대화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실제로 기업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은 수요의 변동, 실업률, 노사간 힘의 균형,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와 사회적 보호망 등의 노동시장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도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전제한다.

도린저 교수는 “이러한 외부 요인의 지속적 변화는 종종 노동시장 내부의 효율성과 유연성에 중대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미국 노동시장을 예로 들었다. 미국 대기업에서 노조가 유례없이 약했던 1920년대에는 내부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매우 효과적인 이익 창출의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대공황 시기에 기업들은 효율성보다는 유연성 개념을 더 선호했다는 것이다. 전후 경제회복과 노조의 강화, 단체협상의 정착기를 거치면서 효율성에 대한 접근은 이전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이 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10년 간 경제위기의 재발과 노동조합 조직률 저하가 발생하면서 효율성에 관한 새로운 의제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도린저 교수는 이 새로운 접근이란 바로 “기능적인 측면과 양적인 측면 모두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본식의 ‘고성과 작업 관행’ 도입”이라고 말했다. 도린저 교수는 “생산성의 향상은 임금상승과 구매력 증가를 동반하며 이는 경기회복과 실업 감소라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 모델이 갖는 허구성에 대한 지적도 흥미롭다. 도린저 교수는 “최근 유럽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미국식 노동시장 규제 완화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아시아의 경제위기 시기에도 비슷한 모방들이 있었다”며 “이러한 주장들의 근저에는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낮은 노조 조직률, 높은 노동시장 이동성, 사회복지 제도 축소 등이 미국 기업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의 강점에 관한 ‘오해와 허구성’을 강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도린저 교수는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고용과 임금이 수요와 공급에 맞춰 빈번하게 변동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미국의 노동자, 사용자, 노조는 내부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더욱 강화하고 양적 유연성은 줄이는 것이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인식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린저 교수는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오늘날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내부 노동시장의 효율적 관행’의 정착에 있어서 노사간의 문제는 효율성을 통해 달성된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며 “한국 노동계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미국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미국 노사간의 협력과 갈등은 일방적 힘의 관계가 아닌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교훈을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장 모델의 무조건적 이식에 관한 경고도 이어졌다. 그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노조가 강력하고, 정부가 시장경제의 조정자 또는 개입자로서 역할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미국의 모델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이들 나라는 세계 각국의 여러 사례를 참고하여 자국의 풍토에 맞는 더 나은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시장의 효율성 강화로 도출된 성과물을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인력개발에 대한 투자, 사회 안전망의 확충 등이 필수적이며 고임금과 고용안정은 생산성 향상과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국제노사관계학회 제5차 아시아대회는 6월 23일부터 3일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고용관계의 역동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한국노동연구원(원장·최영기)과 한국노사관계학회(회장·이광택) 주최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30개국 500여명이 참석했으며 세계적 노사관계 석학인 토머스 코컨 미국 MIT대 교수와 만프레트 바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 교수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35개 주제의 워크샵과 특별 세미나 등이 열렸다. 또 170 여편의 연구논문 발표와 12개 국제 노동관련 공공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세계노동포럼’ 창립대회도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