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결의대회에 흘러내린 쌍용차 가족의 눈물
전교조 결의대회에 흘러내린 쌍용차 가족의 눈물
  • 안형진 기자
  • 승인 2009.07.0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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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에 나선 평범한 주부 사연 서울역에 울려 퍼져

▲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박정숙씨.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5일 오후 전교조 전국분회장결의대회에서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박정숙씨가 쌍용자동차지부와 가족들의 애틋한 사연을 공개해 서울역광장에 모인 1천5백여명의 교사들을 숙연하게 했다.

박정숙씨는 서두에 “더운 날씨에 짜증스러우시더라도 저 아줌마가 가슴 속에 맺힌 것이 많아서 할 말이 많은가보다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달라”며 운을 떼며 “회사는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모터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저질렀다”며 쌍용차 공장의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박정숙씨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남편의 생일”이라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미역국에 케이크를 네 식구가 나눠먹는 평범한 생일파티도 어렵게 되었다”고 흐느꼈고, 광장에 모여 있는 교사들은 위로의 박수를 보냈다.

한편 전교조는 옥쇄파업 중인 쌍용자동차지부에 연대의 뜻을 밝히고, 결의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쌍용차대책위를 돕기 위한 모금활동을 벌였다.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박정숙 씨 연대사 전문
예전 같으면 제가 이런 자리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달 사이 저의 인사도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박정숙, 여러분 앞에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투쟁!

제가 여기 올라오기 전 선생님들 공연을 잠깐 봤는데요, 공장안에 있는 남편생각 잠시 접어두고 웃었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이런 식으로 결의대회를 하시는구나, 그래서 아이들이 전교조 선생님들의 수업을 그렇게 재밌어 하는구나 했습니다. 맞습니까?

더운 날씨인데 제 이야기 듣는 동안 짜증스러우시더라도 저 아줌마가 가슴속에 맺힌 것이 많아서 할 말이 저렇게도 많은가보다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부는 대학시절 부산에서 만났고, 유난히 차를 좋아했던 우리 남편은 막 출시된 무쏘에 반해 대학졸업과 동시에 쌍용에 입사하게 되면서 신혼살림도 낯선 평택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벌써 16년 전 일이네요.

공부 잘하는 15살 큰 딸에 비해 13살인 둘째 아들 녀석은 운동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녀석입니다. 작년 가을쯤 그런 녀석이 걱정이 되어 “넌 나중에 도대체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라고 물었더니 이 녀석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 같은 아빠요. 그래서 아빠랑 같이 쌍용자동차 다닐거에요”라고 말하더군요.

공군사관학교 가서 파일럿되겠다고 어려서부터 말하던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니 잠시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16년 정도 있으면 가능한 일이겠네?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출근하면 멋지겠는걸”하고 말했었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주면서 “당신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아들이 아빠를 닮고 싶어 한다는 것, 아빠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이거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말해줬더니 남편도 내심 기분이 좋은지 아들 녀석 엉덩이를 한 대 툭 치더라구요. 아들에 대한 아빠의 애정 표현이었죠.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 딸의 꿈은 어릴 적에도, 지금도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꿈이 너무 커서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도 했었죠. 꿈꾸는 것을 향해 노력하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다고 여기 계신 선생님들께서도 아이들에게 말씀하셨죠. 하지만 지금 오히려 딸의 꿈 보다는 아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들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힘든 줄 모르고 옥쇄파업 45일째를 맞이하며 고생하고 있는 남편. 명확한 정리해고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한 부당함에 맞서 아이들에게, 저에게, 남편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승리해서 돌아오겠다는 남편의 말에 저도 용기를 내어 가족대책위원회에 참여한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대책 위원회,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사랑 받으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예쁘지도 않지만 밉지도 않은 얼굴에 웃음 가득 띄우며 남하고 말싸움 한번 안하고 맘 상하는 일 있으면 집에 와서 혼자 씩씩 거리며 남편의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그렇게 살았던 이름도 없는 아줌마들, 누구누구의 엄마들, 새댁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회에 나가 힘들지만 노래도 부르고 투쟁구호도 따라 외치고 빙글빙글 돌며 오색끈을 말고 펴고 하느라 땀범벅이 되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뻔뻔해졌습니다. 남편도 못 바꾼 우리를 누가 이렇게 바꿔놓았을까요.

회사는 쌍용차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모터배관을 6월 30일 고의적으로 파괴했습니다. 공장에 물부족 현상이 발생하여 노동조합은 긴급히 기술자를 불러 새벽에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1일 오전 또다시 관리직 5명을 동원하여 펌프모터를 파괴하였습니다. 그것도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배선을 절단하고 모터와 펌프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저질렀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소통이라 하였습니다. 청각장애인들도 수화를 통해 소통을 합니다. 시각장애인들도 점자를 통해 소통을 합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살자 외치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귀막고 전교조 시국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을 연행하고 징계하는 이 정부와는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해야하는 걸까요.

공장안에 쌍용차지부 동지들도 전교조 시국선언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발표하였습니다. 회사주위를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으면서 가족들의 출입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물품검사에 남편얼굴 보러 오는 아내들의 이름과 연락처까지 적고 있습니다.

가족을 만날 자유, 음식과 물을 먹을 자유가 없는 이 나라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습니까? 공교롭게도 오늘은 제 남편의 생일입니다. 생일 때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준 건 아니었지만 따뜻한 미역국에 네 식구 둘러앉아 케이크 나눠먹으며 그처럼 소박하고 평범하게 생일을 보냈었는데 이번 생일은 그 소박한 생일파티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남편 얼굴이나 볼까 회사 앞에 갔었습니다. 좌우에 많은 가족들이 남편과 아빠를 보기 위해 모여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만이라도 들여보내달라고 했지만 그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아이들만 물건처럼 담장위로 건내져 아빠 품에 잠시 안겨볼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들을 통해 자신을 추억하고 아들은 아빠를 통해 미래를 꿈꿉니다. 1,000여명의 아빠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가족으로 돌아가 두 팔에 아이들을 품을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올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