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밀려난 그들에게 길은 없었다
[특집_ 정리해고를 정리해고하라]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삶
자동차산업에서의 정리해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8년엔 현대자동차에서 8500여 명이 희망퇴직하고 277명이 정리해고 됐다. 당시 현대자동차노조(현재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는 36일 동안의 파업을 통해 정리해고에 맞섰다. 2001년엔 대우자동차가 부도나면서 1750명이 정리해고 됐다. 정리해고 이후 대우자동차는 GM으로 매각됐다.
회사도 세상도 가족도, 나를 버렸다
2001년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된 1750명은 2006년까지 거의 대부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대우로 복직했다. 그들이 공장 밖에서 보낸 5년은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될 때 이들은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는지를 끝내 알지 못했다. 정리해고가 될 거라는 말이 현장을 떠돌 때, 다른 대우자동차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제발 나만은 아니길’ 빌 뿐이었다. 집으로 배달된 ‘노란봉투’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해고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공장을 떠난 1750명은 처음엔 부평공장 주변에서, 나중엔 근처 성당에서 저항했지만 공장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2002년 1년여 동안의 투쟁을 접은 해고자들에겐 삶과의 힘겨운 투쟁이 남아 있었다.
해고 후 며칠 동안은 자신이 10년 넘게 일하던 일터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채 멍하게 하늘만 바라봤다. 해고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뒤에는 회사와 세상을 향한 원망이 뒤따랐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일했던, ‘살아남은 이’들이 입고 다니는 잿빛 작업복만 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하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어야 했는지 그저 억울하기만 했던 이들을 달래주는 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들이붓는 찬 소주’뿐이었다. 처음엔 해고자들을 위로해주던 가족들도 눈치를 주고, 가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그들은 거리를 떠돌아야 했다. 스스로 위축된 해고자들은 점점 사회생활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이 이렇게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자 가정을 꾸려나가는 건 아내들의 몫이었다. GM대우 한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마누라가 이제는 돈 좀 벌어온다고 남편 무시하기 일쑤고, 그래서 부부싸움이 잦아지죠. 그러다 보면 사이가 멀어지는 건 당연한 거고, 심한 경우는 파탄에 이르러 이혼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당시 해고자 복직투쟁을 주도했던 단체에서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해고자들 중 가정이 파탄에 이르러 이혼하거나 별거 중인 경우가 30%에 육박한다. 심지어 결혼 3일 만에 해고통지서를 받아든 한 노동자는 결국 그로부터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이혼 당하기도 했다.
해고자 가슴에 대못 박는 한마디 “얼마나 못 났으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새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컨베이어 타는’ 일밖에 몰랐던 이들에게 세상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자동차 만드는 것 말고는 마땅한 기술을 가진 것이 없어 일자리 구하는 것도 힘들었다.
심지어 일자리를 찾아다니다 “대우차 해고자는 안 쓴다”는 말을 듣고 좌절한 경우도 많다. 특별하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범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무런 기술도 없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게 이들에겐 너무나 버거웠다. 진즉에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 놓을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너무 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또 다른 해고자들은 퇴직금으로 받은 얼마 안 되는 돈을 몽땅 털어 넣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나마 먹는 장사가 남는다고 식당을 개업했지만, 여태 식당에서 사 먹는 데에만 익숙하던 이들에게 장사가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었다. 물건 떼는 일이며, 손님 접대하는 일, 하다못해 장부정리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원금을 까먹는 것도 모자라 빚더미에 올라앉은 이들도 여럿이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것은 대리운전, 택시기사, 외판원, 노점상 같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특별한 투자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마저 여의치 않았던 이들은 공사장 막일을 하기도 했지만, 나이 든 축에 속하던 해고자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고자들에게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딱지가 붙었고, 이는 평생 동안 이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낙인이다.
더 괴로운 건 해고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세상에선 ‘자기 일’이 아닌 ‘남 일’이다 보니 쉽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해고자들이 뭔가 부족해서, 뭔가 회사에 잘못해서 해고 됐으리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다른 쪽에선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으니 해고돼도 억울할 것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내 일이 아니니 얼마나 절박한지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고 쉽게 내뱉는 한 마디에 당사자들은 피눈물을 쏟는다.
실제로 해고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얼마나 못 났으면”이라는 말이다. 특히나 이런 말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해고자들에게 이 말은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많은 해고자들, 특히 해고 이전에 번듯한 직장에서 일했던 해고자들일수록 이런 일에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해고자들은 회사에서 버림받고 세상에서 상처받으며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가 쌓인다. 그리고 그 응어리는 어느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한 채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나마 대우자동차 해고자들은 비록 시간은 길었지만 GM대우로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의 상황은 GM대우와는 달라 복직을 장담할 수도 없다. ‘함께 살자’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대상자들의 절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