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서 태양을 창조하다
낮은 곳에서 태양을 창조하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7.0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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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서민의 얼굴만 렌즈에 담다
“사진은 사상이다” 사상을 후보정할 수 있을까?
사진작가 최민식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사진작가 최민식.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이제 사진이라는 장르도 전문가, 혹은 작가의 전유물은 아니기에 사진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사진 좀 안다’는 이들 대부분이 브레송, 질베르만, 매그넘은 알아도 한국의 사진작가 최민식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수한 수상기록과 외국 전시회, 13권의 사진집을 출간하고 곧 14번째 사진집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작가 최민식. 한국 사진계에서 독보적인 ‘리얼리즘 다큐’ 사진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그를 <참여와혁신>이 창간 5주년을 맞아 작가의 평생 작업 현장인 부산에서 만났다.

특별히 최민식 작가를 창간 5주년 기념호에 섭외한 이유는 그가 갖고 있는 신념 때문이다. 뷰파인더에 나오는, 즉 보이는 것 그 자체가 진실임을 평생 동안 주장하고 몸소 실천하고 있는 ‘작가’ 최민식, 그리고 조금 거북하더라도, 또 욕을 먹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참여와혁신>의 정신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출생한 최민식 선생은 올해 81세다. 전쟁통에 부산에 내려온 그는 오직 미술을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1955년 일본 밀항선을 탄다.

낮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도쿄 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생활 속에서 시름을 잊기 위해 자주 찾던 헌책방에서 그는 운명의 책을 한 권 만난다. 바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인간가족> 포켓북이었다.

그 책은 미술학도였던 최민식을 사진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모아 둔 돈으로 카메라를 사고 필름을 사서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던 그는 1962년 대만국제사진전에서 작품 2점이 입선한 이후 대한민국 국전, 프랑스 꼬냑 국제사진전 등 쟁쟁한 사진전에 입선해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68년 사진집 <인간(HUMAN)> 1집을 시작으로 13집까지 오직 현실에 나타난 인간 그 자체만을 다룬 사진집을 출간했으며 전 세계에서 각종 전시회를 개최했다. 낮은 인생을 찍는데 컬러는 무슨 컬러 1957년부터 현재까지 최민식 선생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이에 대해 작가 스스로는 자신의 자서전인 <낮은 데로 임한 사진>에서 “인간의 현존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천착하는 인간은 유명인이나 ‘화면발’ 잘 받을 만한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가 서 있는 곳, 바로 곁에 있는 서민들이 항상 그의 대상이었다. 이에 대해 물었다. “왜 서민들이 작품의 주요 대상인 거죠?”

▲ Busan 1965 ⓒ 사진작가 최민식
“어렸을 때 황해도에서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를 비롯한 7명의 식구는 1년 중 5개월을 감자로 연명해야 했다. 이런 가난에 대한 체험이 있었는데 이 책(<인간가족>)을 보고 느꼈다. 인간의 행복, 고통, 희로애락이 여기 전부 들어있었다. 가난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 가난한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야 한다. 나의 체험이 있으니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지 체험이 없으면 이런 것을 모른다. 아름다움이란 불쌍하다,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다큐멘터리는 우리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이 사진을 통해서 마더 테레사나 슈바이처 박사 같은 정신으로 나눔, 박애정신을 갖고 다 같이 살자는 뜻이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올곧이 작품에 녹아들었다. 해머를 어깨에 멘 노동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고된 노동으로 지친 그의 일상이 들여다보인다. 팔뚝의 단단한 근육과는 달리 구부정한 등에서 노동의 진정성과 삶의 무게는 사진 속 인물과 합치된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실제 그 자체이지만 -현실이 가난과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닐진대- 그의 사진은 가난과 고통의 삶을 다룬다.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정화(淨化, Catharsis)다. 가난과 밑바닥 인생을 보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원하는 그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굳이 흑백사진을 고집한다. 컬러 사진을 안 찍는 것은 아니지만 흑백 사진이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나의 사진은 어둡다. 낮은 데로 임하는 낮은 인생을 찍는데 구태여 컬러는 필요 없다. 대상이 패션모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 가난한 서민인데 컬러가 무슨 소용인가. 요즘 젊은 작가들은 조명, 앵글 등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나는 정석대로 찍는다. 그것이 현실이고 사진이다.”

▲ Busan 1965 ⓒ 사진작가 최민식
일본의 보도사진 작가인 구와바라 시세이와는 조금 다른 이유다. 구와바라는 자신이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컬러는) 색이 자꾸 변하곤 해서 싫었다. 흑백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길지 않아서 보존력이 약하다”고 밝혔다.

이런 그의 작품세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껄끄러울 수 있다. 특히 위정자들에겐. 그래서 그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의 사진집 <인간> 4, 5집은 판금조치를 당했고, 외국 전시회를 위한 여권조차 발급되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문광부 검열관이 작가의 사진집 출간을 도와주고 있던 천주교 왜관수도원의 독일인 임 세바스틴 신부에게 “사진이 어둡다”고 말하자 세바스틴 신부는 “네, 앞으로 우리 인쇄소에서 밝게 출판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씁쓸한 웃음만이 허공에 맴돈다.

사진은 진실 그 자체

▲ Busan 1985 ⓒ 최민식

그렇다면 작가에게 진실이란 무엇일까?

“예술의 본질은 그것이 회화든지, 음악이든지 기법만 다를 뿐 다 똑같다. 예술은 인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진실해야 한다. 한때는 이런 생각도 했다. 52년 동안을 가난 속에서 작업하다보니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고민해봤다. 그런데 가난하면 진실을 찾을 수 있다. 배가 부르면 딴짓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 진실이다. 특히 사진은 어떤 다른 예술보다 살아있는 존재, 살아있는 현장감이 중요하다. 사진의 본질적 의미는 사실 그 자체다. 그리고 현실이다. 오직 현장감만이 진실하다. 다른 예술은 관념으로 상상할 수 있지만 사진은 관념이 안 된다. 현실성, 진실성 이런 것이 바로 휴머니즘 리얼리티다.”

그래서일까? 이런 모진 세월을 거쳐 온 노(老) 작가가 보기에 요즘 사진계는 엉망이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사진이 포토샵이라는 후보정 프로그램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는 분노했다. 작가는 대부분의 인터뷰 시간을 이런 잘못된 관행을 질타하는데 할애했을 정도다.

특히 올해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주최한 제28회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 작품의 포토샵 논란에 대해서는 핏대까지 높였다.

“대학에서 강의 초청을 해서 가보면 정작 사진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하고 포토샵만 가르치려고 한다. 이것이 조류고 흐름이라고 하는데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현장의 진실을 통해 박애정신을 전파해야 하는데 여기에 포토샵 주무르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협회(한국사진작가협회)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의식이 없다. 예술 사진으로 장난을 하니 사진대전이 매년 그 모양인 것이다. 자문위원으로서 창작하는 협회가 되자고 말을 했지만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 Busan 1979 ⓒ 최민식

후보정을 거친 사진이라면 작가의 작품처럼 날 것의 느낌은 없을 것이다. 작품 공간 중 하나인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파는 아낙네들의 모습은 당시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있다. 거리 한복판에 좌판을 깔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낙네들과 그 앞에 펼쳐진 생선들. 비릿한 내음이 코가 아닌 가슴으로 들어온다.

최민식 작가는 “사진은 작가의 사상”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사상은 후보정할 수 있을까? 경험이 셔터를 누른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자신의 사진집 제목으로 <결정적 순간 Image a La Sauvett, The Decisive moment>을 택했다. 이후 브레송하면 ‘결정적 순간’이란 말을 빼놓고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사진작가에게 어떠한 순간을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작업은 직감적인 판단과 그 정반대인 고통 같은 기다림이 동일 선상에서 반복되는 느낌일 것이다. 최민식 선생에게 언제 셔터를 누르게 되느냐고 물었다.

“셔터를 누를 때는 직감적, 감각적으로 느낀다.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체험이 없으면 안 된다. 50년 동안의 경험이 나의 손을 움직인다. 젊은 후배들이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이야기하는데 지금 막 시작한 사람들이 뭘 발견할 수 있겠나. 그래서 많은 책을 보라고 권유한다. 오랜 체험과 철학, 사회학, 인간학, 예술론, 음악까지 지식을 높이고 지성을 높이면 다양하게 볼 수 있고 보는 눈이 있으면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 단지 셔터를 빨리 누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피사체를 온 몸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셔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이 선생의 주장이다. 그러한 노력이 묻어나는 것이 바로 선생의 방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의 방에 들어서면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선생도 아니고 카메라도 아니다. 바로 수많은 책이다. 방 한쪽은 사진집으로 가득 차있고 문을 제외한 다른 두개의 벽은 다양한 장르의 책이 그득하다. 심지어 책장에 넣지 못하고 바닥에 쌓여있는 책도 상당했다.

“책을 많이 봐야 좋은 사진, 깊이 있는 사진, 세련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무식한 상태에서는 무식한 사진이 나온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돈이 생기면 무조건 책을 사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의 꿈인 아프리카 촬영을 위해 여전히 책과 필름을 모으고 있다. 왜 아프리카일까? 그는 말한다.

“아프리카에서는 5초에 한 명씩 사람이 죽는다고 한다. 그들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박애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본인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하는 최민식 선생은 창조적 작업 없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창조적 예술은 그에 몰두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최민식 선생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우리에게 들려줬다.

태양이 없을 때, 태양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_로망 롤랑(Rolland R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