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안에 살다
시 안에 살다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07.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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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민중, 사람의 ‘삶’을 쓴다
윤동주 문학상 대상 수상한 시인 공광규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강물은 몸에 /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 모래밭은 몸에 /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 새들의 지문 위에 /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 수만 리 비단인데 /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 그걸 어쩌겠다고? /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 파랗게 질린 강. (‘놀랜 강’ 전문)

“시를 쓰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요리를 잘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축구를 잘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장에서 기계 수리를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시를 쓰는 사람인 것이지요.”

올해 4회째인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을 받은 공광규 시인은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그 후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누구나 알아먹기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현장과 거리와 광장에서, 중심이 아니라 소외의 구역에서 우리의 일상과 정신이 담긴 시를 갈고 닦을 것”이란다.


시린 세상을 담다

겨울 벌판 자작나무 숲이 / 자본의 채찍을 맞으며 울고 있다 /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 노숙의 나무들 사이에 나도 서 있다 / 나는 헐벗은 옆에 나무와 / 서로 안쓰러워 한참을 껴안고 있다 / 뿌리에서 물관으로 올라오는 슬픔이 / 내 혈관에 펌프질을 해댄다. (‘겨울 노동자 집회’ 전문)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첫 시집은 <대학일기>였어요. 노동자대투쟁 끝나고 12월에 냈죠. 알려진 시들은 일상의 내용들, 가족에 대한 시가 많지만 예전에는 사회역사적 상상력이 많이 담겨 있었죠. 이번 수상 시인 <놀랜강>은 작년에 정부에서 대운하 사업을 발표했을 때 이에 대한 경고를 시로 쓴 거죠.”

그는 서울 돈암동 판자촌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세 살에 홍성으로 내려가 청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시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삶의, 생활의 결핍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시’라고 이야기 하는 그는 ‘현실’에 맞닿아 있지 않은, 아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은 ‘쓰레기통’에 과감히 버리면 된다고 이야기 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시인 공광규의 현재 직책은 한국노총 금융산업노동조합의 정책실장이다. 노동운동, 노동자들의 시린 현실은 그를 늘 ‘현장’에 머물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시가 된다. 공광규 시인은 “그 삶을 알지 못하는 ‘강의실’과 ‘까페’에서 쓰는 시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겠느냐”며 “현실, 사람, 정치, 경제에 대한 불만과 문제의식, 현장의 느낌을 옮기는 것이 나의 시가 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희망 없는 중년을 / 더럽게 버텨가다가 / 다행히 도심이나 여행길에서 / 늙은 개처럼 버려지거나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면 / 다행이리라 / 기력이 다한 어느 날 나는 / 도시의 흙탕물에 젖은 털과 / 너덜너덜한 상처를 끌고 / 백 년도 넘게 천천히 살아온 / 우리 동네 느티나무 아래로 갈 것이다 / 월산 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때 / 누가 회한으로 가득 찬 /구겨 앉은 늙은 짐승을 알아줄 리 없지만 / 남들을 따라 짖어온 그림자 같은 / 안타까운 삶을 망연히 바라보며 / 망상을 기댈 것이다. (‘느티나무 아래로 가서’ 전문)

삶, 지난하고 아름다운

소주병은 술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 속을 비워만 간다. // 자식들처럼 받기만 하는 소주잔은 / 잘 닦여 청결한 찬장에서 쉬지만 / 소주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쓰레기장에 굴러 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소주병이었다. (‘소주병’ 전문)

“소주는 민중의 술입니다. 국민의 술이기도 하고. 특히 우리나라에서 아버지의 삶이라는 것은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해도 실패한 삶입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하지 못하죠.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 그것이 빈 소주병을 닮았지요.”

공광규 시인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버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적을 두고 있는 금융노조의 한 산하지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0년 해직이 됐다. 당시 다섯 명이 집단해고가 됐는데 그 이유가 학내의 시위 관련 내용이 담겨 있던 시집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현실 부정적’이라서 해고된 그는 그렇게 다사다난한 삶을 꾸려가면서 아버지가 됐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에서 ‘가족’은 한편으로는 소박하고 유쾌한가 하면 터벅터벅 걸어가는 힘겨운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이는 가장 보편적인 우리네 ‘가족’의 정서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 수컷인 내가 /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 꿰맨 적이 있다 //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 병원으로 뛰는데 //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아내’ 전문)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문학은 현실을 담는 ‘그릇’

‘황무지’의 작가 T.S 엘리엇은 아주 모범적인 은행원이었다. 그처럼 ‘현장’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시를 쓰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공광규 시인은 수많은 현장과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최근 ‘순수문학’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문학에 현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의 문학은 광장, 거리의 문학이었는데 지금은 강의실에서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렸다”며 “사람들은 문학의 내용이 자신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이를 공산품에 비유한다면 불량품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외되고 문학의 죽음까지 거론되는 게 아닐까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늘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노동력을 갈취하는 자본의 전략입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삶,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학으로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시선, 비판, 자신의 생각들을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면서요.”

시인 공광규에게는 생활이 ‘시’를 만들어 내며 시가 곧 ‘삶’이 된다. 현실 문제를 과격하게 건드리는 긴 시를 써 보고 싶다는 그는 오늘 하루도 ‘시’를 만들어 내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