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민정 대타협, 그 존재의 가벼움
노사민정 대타협, 그 존재의 가벼움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7.1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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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가하나
대타협 정신에 맞는 구체적 실천 필요
제주오리엔탈호텔의 정리해고 투쟁

 

지난 2월 23일,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민간단체 대표들은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대타협’을 선언했다. 경제위기라는 어려운 시기에 노동계는 임금동결·반납 또는 절감과 파업 자제 등으로 고통분담에 나서고, 경영계는 해고를 자제하고 기존의 고용수준이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 일부에서는 이번 노사민정 대타협이 경제위기 극복에 커다란 힘을 줄 것이라고 환영했고, 노사민정 대타협은 각 지역별 합의문 발표 행사를 통해 확산됐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13일, 전국 최초로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역 노사민정 대타협 선언이 진행됐다. 제주특별자치도청, 한국노총 제주지역본부, 제주상공회의소, 제주경총, 제주경실련 등 지역 노사민정 대표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김태환 제주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말로만이 아닌 실천이 되도록 각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렇게 지역 노사민정 대표가 모여 고통분담과 화합을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자고 외치는 순간 제주의 한 호텔에서는 정리해고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제주오리엔탈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제주특별자치도 탑동해변가에 위치한 특1급 호텔인 제주오리엔탈호텔에서는 호텔 운영에 있어 가장 핵심적 부서인 시설팀에 대한 외주화가 시행되고 있었다. 2월 20일, 사측은 노동조합에 시설팀 외주화 실시를 전격 통보하며 전적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60일 후 정리해고 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은 계속적인 적자로 인해 인건비가 많이 드는 시설팀을 외주화해 경영합리화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회사가 어렵다면 경영구조 개선을 위해 임원과 직원들의 임금삭감, 부동산 매각 등 자산 매각, 무급휴가 실시, 휴가소진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외주화를 거듭 주장했다.

이후 5차례의 노사교섭이 진행됐고 시설팀 인원 15명 중 비조합원 2명은 전적을 수용했으며 4명은 전환배치됐다. 노조는 나머지 9명에 대해 전환배치만 이루어진다면 외주화를 수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사측은 결국 5월 7일부로 조합원 9명을 정리해고 했다.

노조는 이번 정리해고에 대해 사측의 해고 회피 노력이 부족했으며 단체협약을 위반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주오리엔탈호텔노동조합 김효상 위원장은 “노조에서는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임금삭감 및 복지제도 축소까지 제안했다”며 “그러나 사측은 과도한 차입을 통한 경영실패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오직 정리해고만 주장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노조에 따르면 제주오리엔탈호텔과 같은 규모의 호텔에는 보통 임원이 2~3명이지만 회사에는 8명의 임원이 있으며, 이 중에는 회사에 나오지도 않고 연봉 6천만 원에서 1억 원을 받아 챙기는 임원이 2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사측은 시설팀 외주화로 매년 1억 원 정도의 경영개선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회장, 사장, 전무만 사용이 가능한 5억 원짜리 골프장회원권은 매각할 예정이 없어 정말 경영위기를 노사가 함께 돌파할 생각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절차상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고회피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과 함께 단체협약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제주오리엔탈호텔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5인 이상의 조합원에 대한 정리해고는 반드시 노사가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사측은 시설팀 외주화에 대해 노조와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노조에서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을 광주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한 상태다.

알맹이 없는 노사민정 대타협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지점이 하나 있다. 이번 제주오리엔탈호텔 정리해고는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지역 노사민정 대타협을 선언했다는 제주지역에서 나타난 최초의 정리해고라는 점이다.

제주오리엔탈호텔 사측이 정리해고 시점으로 못 박은 지난 5월 7일을 하루 앞둔 6일,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과 전국민간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 등은 제주로 날아가 이번 정리해고가 부당함을 제주도민에게 선전하고 김태환 제주지사를 면담했다. 홍 의원과 강 위원장은 김 지사에게 제주지역 노사민정 대타협의 정신을 살려 도가 문제해결에 나서주길 요구했다.

김 지사는 “호텔 관계자 면담을 통해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당시 김태환 도지사는 호텔 관계자를 불러 충분한 협의가 진행되지 않았으니 정리해고를 한 달간 유예해 달라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그러나 7일, 노사 간의 최종 협상에서 사측은 아무런 입장 변화 없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결국 노사간의 대화는 파행으로 흘렀고 정리해고는 단행됐다.

이에 대해 김혜자 제주특별자치도의원은 지난 6월 15일, 제261회 제주도의회 임시회에서 “오리엔탈호텔의 해고문제는 노사민정 대타협 선언 이후 최초로 발생한 고용문제인데도 도민의 일자리 지키기에 책임이 있는 도정이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5분 발언을 통해 제주특별자치도를 비판했다.

김효상 위원장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한 노사민정 대타협의 핵심은 사용자들이 구조조정을 자제하고 노동자들은 임금동결 등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자는 것 아니냐”며 “도에서 개별사업장의 일이라고 개입하지도 못하고 지켜주지도 못한다면 대타협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불만에 대해 도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경제정책과 김승우 주사는 “노사민정 대타협을 체결했지만 이것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대화를 하라는 주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우리도 입장이 난감하다”고 항변했다.

또한 김 주사는 “언론이나 노동계에서 도청을 비난하는데 솔직히 제주오리엔탈호텔 노사는 대타협에 참여하지도 않았었다”며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5월 4일부터 지금까지 노사민정의 대표들이 지속적으로 노사 양측을 불러 대화를 시도했다”고 충분한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체적 실천방안 마련돼야

결국 노사민정 초기 논의 때부터 노동계가 우려했던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당시 노동계는 지난 IMF 구제금융 당시 노사정 합의가 현장의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하고 노동계에만 책임을 전가한 형태가 됐었다는 사실을 언급했었다. 이번 노사민정 대타협도 자칫 선언적 행사에만 그치고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떠안는 형태가 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 노동법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경우 정리해고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정리해고를 단행했을 때 마땅한 제재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노사민정 대타협은 정부와 경영계, 일부 언론의 환호 속에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이행점검단을 꾸리겠다는 당초의 합의는 이미 흐지부지된 상태다. 

제주오리엔탈 노동조합
이에 대해 김혜자 의원은 “노사가 공평하게 노사민정 대타협을 점검할 수 있는 이행점검단이 꾸려져야 하지만 중앙에서도 말만 있었고 지역에는 구성조차 안 되어 있으며 강제력도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지역 의회 차원에서도 문제제기만 있을 뿐 정확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제주지역에서 벌어졌던 삼영교통 노사분규에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삼영교통 노사분규에 대해 도 차원에서 유류보조금 지원, 수익금 조사 등의 행정 지원에 대한 불이익으로 사측을 압박하며 노사분규를 해결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버스회사나 민간업체와는 차이가 있지만 정부가 노사민정 대타협의 정신을 구체적인 실천방안, 즉 구조조정 사업장에 대한 행정 불이익과 고용유지 사업장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 등으로 구체화시키지 않는다면 제주오리엔탈호텔과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와 함께 또 하나 검토될 수 있는 방안으로 한국노총 부천지역지부(의장 김준영)가 시도하고 있는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 설치와 이행점검 공표도 미약하지만 유의미한 활동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부천지역지부는 이를 통해 지역경제 정책 및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노사정 협의를 명문화하고 사무국을 통해 안정적인 이행점검작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제주오리엔탈 노동조합 김효상 위원장
시설팀 외주화가 통보되고 노조에서는 어떤 대응책을 내놓았었나.

“외주화하겠다는 공문이 2월 6일 노조로 날아왔다. 사측에 외주화의 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당시 사측은 비용절감, 인건비 절감이라고 설명했다. 약 1억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에 맞게 임금 삭감, 무급 휴직, 휴가 소진 등을 제안하며 외주화만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제안에 대해 사측은 어떤 반응이었나.

“외주화와 정리해고만 주장하면서도 노조가 요구한 경영자료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도에서 노사협의를 위해 한 달간 정리해고를 유예해달라는 요구조차 사측은 거부했다. 또한 노사협의 과정에서 이미 하청회사를 선정했다는 점에서 사측은 이미 노사협의에 응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시설팀은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다. 또한 시설팀 직원들은 노조의 핵심 조합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에서는 먼저 시설팀에 대한 외주화로 노조를 약화시키고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려는 의도로 보인다.”

제주지역 관광산업이 엔고로 인해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호황이었다고 들었다.

“제주오리엔탈호텔도 작년, 재작년에 비해 매출이 상승했다. 그러나 회사 재무제표상으로는 계속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영업활동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차입경영에 따른 금융비용 상승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10년 동안 계속적으로 매출액이 떨어졌는데 경영진이 바뀐 적이 없다. 다른 호텔이었다면 교체돼도 벌써 교체됐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노조에서는 경영합리화를 위한 경영컨설팅 의뢰, 경영진 교체, 심지어 제3자 매각까지 이야기를 했었다. 생각해봐라. 보통 같은 급의 호텔이면 임원진이 2~3명인데 여기는 임원진만 8명이다. 8명의 임원진 중 회사에 나오지도 않고 월급을 챙기는 사람이 2~3명은 된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외주화해서 비용절감 하겠다는 액수보다 많다.”

제주는 지역 노사민정 대타협 선언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지역이다.

“제주에서 대대적으로 언론플레이하면서 노사민정 대타협을 하지 않았나. 대타협의 핵심이 사용자들은 구조조정을 자제하고 노동자들은 임금동결·절감을 통해 고통분담하자는 것인데 제주지역에서 최초로 고용문제가 발생한 것이 우리 사업장이다. 노조에서 임금삭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닌데 도에서 민간 사업장이라고 개입하지도 못하고 지켜주지도 못한다면 뭣 때문에 한 것이냐. 결국 이행점검단 꾸려서 점검하겠다고 했지만 밥 먹고 사진 찍고 끝난 것 아니냐. 도가 갖고 있는 행정력을 동원해서 압박하고, 인센티브 혹은 패널티를 정확하게 지시해서 지켜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