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된 비정규 법안 놓고 ‘샅바 싸움’재개
연기된 비정규 법안 놓고 ‘샅바 싸움’재개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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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책 진단] 하반기 노사관계 역학관계는
노사관계 로드맵 일정·노조 비리 수사가 변수

지난해부터 노사정 관계의 판도를 좌우하고 있는 ‘비정규 법안’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연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파국에 이르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향후 노사정 관계에 있어서도 비정규 법안이 주요 쟁점으로 여전히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위치할 전망이다. 또 하나의 매머드급 폭풍이랄 수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도 서서히 중심부로 진입할 전망이다. 또 노조 비리 조사의 확대폭도 전체 판을 흔들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동계, 지금까지는 ‘선방’

 

우선 비정규 법안은 지금까지의 경과만 놓고 보면 정부의 ‘완패’ 노동계는 ‘선방’ 재계는 ‘관망’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노동부로서는 노동계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자 상정했던 법안이 장기 표류하면서 상당히 바뀌었기 때문에 안팎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경이다. 당장 여기저기서 ‘너무 무모했던 것 아니냐’ ‘법안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쓴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향후 역할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이제 공은 정치권과 노사간 협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이 와중에 노동부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노동계로서는 내부 반발과 조직적 혼란 와중에도 일단 법안 자체의 통과를 막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더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오면서 이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일단 위기에서는 벗어난 모습이다. 하지만 내부의 이견이 여전한 가운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입장 차이도 있기 때문에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재계로서는 인권위 권고안이라는 돌발변수를 만나기는 했지만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당초 외부적인 반발 제스추어와는 달리 정부안 원안 통과를 내심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6월 처리 가능성은 높아


어쨌든 비정규 법안은 6월로 넘어 갔다. 이런 가운데 6월에는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정부·여당으로서는 더 이상 늦추기가 어려운 일정이다. 참여정부가 공을 들여 추진해 온 노사관계 로드맵이 하반기에 본격 논의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6월 중 법안 처리를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사실 그동안 여당이 4월 재보선 등의 정치 일정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민주노총 참여라는 명분 등으로 강행 처리를 주저했었지만, 이제 그런 부분의 의미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여당 내부에서 민주노총에 대한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 의원실 관계자의 ‘그간 기다릴 만큼 기다려줬고, 대화할 만큼 했다’는 얘기는 합의가 불가능할 경우 강행처리 가능성을 반증한다.


여기서 변수는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재보선 완승의 여세를 몰아 상임위원장 정수 조정 등의 문제를 놓고 여당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얼마나 협조할 것인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4월 노사정 협의 과정에서도 한나라당 일부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환경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이 한나라당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여당 페이스로 진행한다는 불만이었다. 다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정부 원안대로 처리하거나 정규직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문제와 병행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갈등 불씨는 여전


노동계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민주노총은 어떤 경우든 내부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주장하고 있는 법안 내용이 채택되기는 힘든데, 이 경우 합의 자체가 집행부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대화 자체에 대한 반대 입장이 분명한 그룹이 존재하는데 섣부른 합의는 집행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결국 지도부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지금까지와 같이 타결 자체를 지연시키는 전술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노총은 상황이 좀 다르다. 우선 협상의 실무책임자 역할을 했던 권오만 사무총장이 비리 혐의를 받으면서 교체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약간의 지연은 있을 수 있겠지만 당초부터 조속한 처리 방침을 밝혀왔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는다면 굳이 협상 타결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빠지고, 한국노총이 남아서 협상을 마무리짓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재계로서는 인권위 권고라는 돌발변수를 만나 당혹하기는 했지만, 노동계 비리가 다시 전면화된 것을 계기로 강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임단협선 작업장 의제 부상할 듯


비정규직 문제는 임단협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개별 기업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걸려 있는 대기업들은 법안 처리 향배에 따라 교섭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제외하고는 올 임단협 자체는 새로운 변화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임금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많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들어 노동조합이나 조합원들 모두 임금보다는 고용에 대한 관심이 높고, IMF를 계기로 바닥을 쳤던 임금이 상당 부분 회복됐기 때문에 큰 갈등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오히려 임금체계나 숙련향상, 교대제 등 그동안 임금인상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됐던 작업장 내부의 사안들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한 대기업 노동조합 임원은 “비정규직 문제만 아니라면 예년에 비해 크게 길어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노조 비리 수사가 어느 정도까지 확대되느냐의 문제도 노사정 역학관계의 큰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검찰이나 경찰의 움직임으로 볼 때 전면적인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른바 ‘하나씩 조지는’ 장기적 수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계기로 정부나 재계가 주도권을 쥐기 위해 강공책을 펼 경우 노동계로서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