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총장 직선·혁신위 인적쇄신 필요
한국수자원공사노동조합 이경식 위원장
한동안 잠잠하던 노동계 비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이번에는 한국노총 최고 지도부와 민주노총 주력 사업장 현대자동차노조가 수사 선상에 올라 또 한 차례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도 자정과 혁신을 위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간의 형식적 개혁방안 발표가 아닌 문제의 근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 실시된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노총 개혁’을 내세우며 출마했던 한국수자원공사 노동조합 이경식 위원장을 만나 노동운동 혁신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이 위원장은 노동운동이 새로운 모색을 하지 않으면 사회적 고립을 면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더 이상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 최근 노동계의 비리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채용비리 같은 경우 상당히 확대해서 부각되는데 사실 이 부분은 노동계 전체의 문제는 아니다. 노조가 채용에까지 관여하는 것은 일부 대공장 노동조합에 한정된 문제다. 채용은 취업규칙 등에 규정되거나 회사 인사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부분인데도 전체 노동계가 채용에 관여한 것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일부’라고 해서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항운노조는 조합원이 아니면 채용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회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누적되다 보면 채용비리는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문제는 노동계 내에서 개선할 부분이지 전체가 다 채용비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비리 문제가 터진 조직들은 상당히 역사가 오래되고 보수적인, 또 규모가 큰 조직에서 생기는 현상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부분은 내부 자정역할을 통해서 얼마든지 정화할 수 있다. 총연맹 차원에서 자정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산별, 지역본부, 단위노조까지 망라한 상호 감시·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터질 일, 해법을 찾자
- 일부에서는 일련의 비리 수사가 ‘기획 수사’라는 반발도 존재하고 있다.
"어떻든 간에 그런 일을 안 했으면 기획 수사 당할 일도 없다. IMF 지나면서 쟁의행위도 많이 줄어들었고 사회적 합의체에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진통 끝에 참여했기 때문에 공식적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굳이 기획 수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택시 문제 등은 어느 시점에서든 터졌어야 할 문제다."
- 한국노총 위원장 출마시 변화와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어떤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 한국노총은 현장의 정서와 상관없는 몇몇 산별 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을 추대하는 것을 관행처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청산해야 할 대상들마저 개혁특위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가 한국노총이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실천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된다. 예를 들어 현 사무총장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도 추대를 했다. 수구든 보수든 개혁이든 표가 되면 다 안고 가겠다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예상된 결과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이용득 위원장이 본인이 갖고 있는 노총 변화 개혁 쇄신책을 과감히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다.
한국노총 사무총국 내부의 인적 쇄신, 제도 쇄신, 노총 산별 연맹 단위의 감시·견제·비판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그동안 지역본부에 대해서는 전혀 통제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는데, 이 부분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항상 논란이 되는 게 재정이다. 선거가 끝나면 반대파가 의무금을 안 내서 재정적인 문제가 크기 때문에 안고 가야 한다고 하는데, 복지센터가 들어서면 임대수입 같은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재정적 독립성을 가지고 갈 수 있다."
잘못된 관행 전면적으로 바꿔야
- 한국노총은 6월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사무총장을 선임한다는 방침이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이 뽑혀야 한다고 보는가.
"임원 직선제 문제가 논의돼 왔는데 당시 36~37% 지지로 부결됐다. 그게 한국노총의 현주소다. 일부 산별 연맹, 지역에서는 조합원 명부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있고, 외부에 드러나기를 꺼려한다. 사무총장, 상임부위원장 선임의 경우 표논리로 (반대파를)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을 고민했지, 한국노총 전체를 아우르고 현장과 지역본부와 연맹을 유기적인 네트워크망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무총장이 아니었다.
따라서 현직 노총 임원이나 연맹 위원장 중에서 선임하는 방식이 아닌 현장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사무총장이 필요하다. 대의원대회에서 특별결의 등의 방식을 통해서 지명이 아니라 선출해야 한다."
- 한국노총이 비리를 계기로 조직 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혁신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2002년 설치된 개혁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였지만 구성원이 문제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단순히 사무총국과 연맹 등에 일률적으로 인원을 배분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단위 노조 대표자든, 현장 조합원이든 한국노총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위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인적 구성부터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중요한 축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노동운동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지금 노동조합은 온 몸에 오물을 묻히고 있는 셈이다. 한꺼번에 다 씻지 못 한다면 우선 손이라도 씻어야 한다. 노동운동이 기존의 방식대로 투쟁에만 매달리거나, 혹은 관성화된 비리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이 좋은 기회다.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전면적으로 바꾸어낸다는 각오로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