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앉혀놓고 수학 가르치는 부모의 무지
박지성 앉혀놓고 수학 가르치는 부모의 무지
  • 김관모 기자
  • 승인 2009.08.04 14:0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로교육에 대한 인식 빈곤 심각한 우리 사회
교육컨설팅으로 진로상담의 새 길 개척한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
와이즈멘토 사무실에서 만난 조진표 대표는 수줍어하고 말수도 적은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사진 찍는 것도 힘들어 결혼할 때도 웨딩촬영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인터뷰가 끝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사무실 한 켠에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는 사진기자의 푸념을 들은 것은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의 이야기.

하지만 교육과 진로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이것이 와이즈멘토 대표 조진표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에서 이른바 ‘잘 나가는 인재’란 명함을 내려놓고 맨발로 교육컨설팅이란 황야에 뛰어들었던 사람이 아니던가.

와이즈멘토는 이제 진로지도컨설팅회사로 한국에서 그 입지를 굳히고 있다. 무엇이 그를 교육산업의 길로 이끌었을까? 그리고 그만이 지닌 한국 교육현실을 풀어갈 해법은 무엇일까?

진로지도의 새 길을 이어받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진표 대표가 처음 진로상담컨설팅이란 사업에 뛰어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형 고(故) 조진만 씨의 유업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두 형제끼리 지방에서 살았던 만큼 형에 대한 조 대표의 애정은 각별했다. 메가스터디에서 유명한 논술교사였던 조진만 씨와 함께 한국학생들의 진로지도를 위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한 번은 형이 저에게 ‘학생들이 자기한테 물어보는 질문 중에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교육으로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무서울 게 뭐가 있냐’고 했더니 ‘솔직히 아이들이 논술이나 시를 배우는 방법을 물어보면 밤새도록 가르쳐 줄 자신이 있는데 ‘저 나중에 뭐해야 할까요?’라든지 ‘나중에 어떤 학과 가야 되죠?’라고 물으면 도저히 할 말이 없더라’고 하더군요. 제 형은 공교육이나 사교육을 통틀어 아이들을 가장 많이 가르쳤고 인지도도 높았죠. 그런 사람조차 점수 올려주는 스킬은 자신 있는데 인생의 가장 큰 방향을 결정하는 진로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의 앞뒤가 바뀐 거죠.”

그래서 형 조진만 씨는 그에게 각국의 진로지도 상황을 조사해 볼 것을 부탁했다. 결국 조 대표는 공교육의 시스템 속에서 적성검사와 카운슬링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북유럽 선진국과 진로지도검사를 사업화한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의 예를 찾아냈다.

당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던 조 대표는 두 번째 예를 통해서 진로지도를 컨설팅사업에 접목하고자 했고, 형 조진만 씨는 두 나라의 예를 토대로 효과적인 진로지도 아이디어를 계획했다. 그러던 도중 형 조진만 씨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자 조 대표는 형의 유업을 이어받아 와이즈멘토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아이가 아닌 부모가 바꿔라

조진표 대표는 사교육에만 전념하고 있는 중산층 부모들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조 대표는 부모의 ‘탐욕’과 ‘무지’를 먼저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 대표가 말하는 부모의 탐욕은 뭘까?

“남의 집 아이는 떨어져도 우리 집 아이는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더러는 아이들에게 행복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행복도 중요하지만 일단 넌 이렇게 해야 돼’라고 강요합니다. 이것이 탐욕이죠.”

그는 부모들의 무지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학습능력이란 것은 타고난 능력 중 하나입니다. 운동이나 미술을 잘 하듯 아이들이 강점이 있어서 학습능력이 강하면 그게 발현이 되는 것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이죠.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다르게 해석하면 공부보다 다른 능력이 강하다는 것인데 우리 아이에게 강한 능력을 어떻게 찾아줄까가 아니라 무조건 공부 잘 하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이유도 아이들 천성을 바꾸려니까 그런 겁니다. 박지성을 앉혀놓고 수학 가르치는 거잖아요. 무지란 이런 겁니다.”

하지만 자식이 공부 잘 했으면 하는 것이 부모들의 인지상정이다. 공부도 잘하고 자기 적성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조진표 대표는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들이 본인 생활습관은 바꾸지도 않으면서 아이를 학원에만 보냅니다. 그러고선 공부 못한다고 하는 데 이건 맞지 않아요.”

우리 사회에 ‘공부 잘하는 사람 이야기’는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공부 못했을 경우 갈 수 있는 길에 대해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 대표는 이런 현실을 우려한다.

“‘너는 공부에 적성이 없으니까 여기나 가라’가 아니고 적성은 없지만 잘하는 것이 무언지 찾는데 초점을 맞춰서 이 능력을 찾아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을 때 가장 좋은 길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더 행복한지 대안제시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 진로컨설팅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교육과 진로에 대한 계층간 격차가 점점 크게 벌어지는 현실도 우려하고 있다. 그는 “월 100만 원의 학원을 15년간 보내더라도 인생에 한번쯤은 필요한 진로지도에 대해 투자하는 것은 아쉬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중산층이나 저소득층 부모들이 이 분야에 투자하지 않으면 계속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꿈꾸는 법을 연구하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진표 대표가 진로상담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꿈이었다. 그는 지금 학생들과 진로상담을 해보면 어른들의 손때가 너무 많이 묻었다고 토로한다.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할 시기에 부모들이 자신만의 현실을 들이댄다는 것.

“아이가 만일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아버지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구박합니다. 그러면서 ‘다 필요 없어. 의사나 전문직, 공무원이 최고야’라는 말을 한답니다. 결국 그런 40, 50대의 찌든 삶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투영되고 있지요.”

특히 경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꿈에 대한 양극화도 심각하다. 부유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들의 직업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신의 꿈으로 변호사나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은행원 등을 적는다.

반면 결손가정이나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적는 꿈은 엄마나 미장원 언니, 연예인 등이다.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거나 자신에게 근사하고 화려해 보이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는 공교육에 적성검사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부모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반면 경제적 계급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경제적 계급과 관계없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공립학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가정에서 들어온 정보의 차이를 교사의 최신 정보가 메워주고 기회균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 진출하더라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꿈꾸는 방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조진표 대표의 생각이다.

그런 꿈꾸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조진표 대표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정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미국에서 컨설팅 배울 때 참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더군요. 그래서 그 점을 배워서 경영컨설팅은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교육컨설팅은 한국에서 출발하기로 마음먹었죠. 지금 저희가 개발한 적성검사 프로그램이 한국에만 특허가 있는데 미국과 중국에도 특허를 내려고 준비 중입니다. 20년 후에는 와이즈멘토로 적성검사를 받는 아이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도 모른 채 권위 있는 검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