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 동안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77일 동안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 권석정 기자
  • 승인 2009.08.1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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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강제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 열려
용역 폭력에 경찰은 수수방관 “경찰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쌍용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쌍용차 조합원들이 가림막 뒤쪽에서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경찰과 용역 등의 과잉진압에 대한 진상과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쌍용자동차 노사 합의 후 파업 관련 노조간부 및 조합원 등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하지만 노조에 대한 발빠른 대응과 달리 경찰, 사측 직원, 용역업체 직원들의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사법처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13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진상보고 및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서는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및 관련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쌍용차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 권지영 씨는 “현재 노조만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권 씨는 “사측과 구사대는 가대위 천막침탈 과정에서 폭행과 함께 소화기를 뿌려댔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경찰들은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현장증언에서는 신변노출문제 때문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쌍용차 조합원 5명이 단상에 올랐다.

▲ 가림막 뒤에서 경찰과 용역 등의 과잉진압에 대한 진상과 피해를 증언하고 있는 쌍용차 조합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합원 A는 “8월 5일 경찰특공대가 옥상에 투입돼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압박해오는데 그 뒤로 총구가 보였다. 고무탄으로 보였는데 도망가는 조합원 뒤로 총알이 발사돼 총알을 맞은 조합원은 등이 찢어져 피가 났다. 무서워서 다들 후퇴하는데 옥상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통로에 조합원 몇백 명이 몰리면서 몇 명은 뛰어내렸고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조합원 B는 “옥상에서 상황을 지켜보는데 경찰, 사측, 용역이 합심해서 우리에게 공격을 가했다. 경찰은 방패 역할, 사측은 발사 지시, 용역은 볼트가 채워진 철컵을 새총으로 발사했다. 이상한 것은 새총을 발사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숨으면 방송국 헬기가 뜬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국의 경우 헬기를 띄울 때 경찰에 통보하게 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이 알고 사측에 미리 알려주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팔 골절로 깁스를 한 조합원 C는 “8월 5일 사무실이 불에 탔는데 소방호스가 단수된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러 왔는데 같이 들어온 경찰과 용역은 불은 끄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기 바빴다. 우리는 그런 경찰과 용역을 뒤로 하고 소방대원들과 함께 불을 껐다”고 밝혔다.

조합원 D는 “단전, 단수로 우리들은 심신이 망가져갔고 환자들은 늘어만 갔다. 녹내장 환자도 있었는데 안약을 넣지 못하면 시신경이 죽어서 맹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어째서 공권력은 우리를 구속하는 법만 적용하고 보호하는 법은 적용하지 않은 것이냐”고 규탄하며 “77일 동안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편, 조합원 E는 “단전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장페인트가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쪽만 비상발전기를 돌려 기계를 가동했다”며 “불편했지만 다른 곳은 절전했다. 누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길 바라겠느냐”고 전했다.

이어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국회의원 피해사례에 대해 증언했다.

유 의원은 “8월 5일 현장을 방문했는데 용역들이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이정희 의원 등을 독안에 든 쥐처럼 구석에 몰고 있었다”며 “용역들이 다가서는 나를 뒤에서 낚아채고 때리면서 ‘저 새끼 죽여라’고 외치는데 경찰은 그런 용역을 놔두고 오히려 나를 잡아끌고 갔다”고 증언했다. 이어 “나는 용역들에게 삼십여 분 동안 구타당했다. 내가 경찰에게 ‘저 사람들을 연행하라’고 했지만 내 말을 들은 척도하지 않았다”며 “경찰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변 권영국 변호사는 경찰에 대해 ‘진압과정에서의 불법행위’를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 ‘퇴로 확보 없는 진압으로 인한 추락과 상해’에는 업무상과실치상죄 ▲ ‘강제 진압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구타 및 폭력행위’에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 ‘최루액 사용, 고무탄총 발사’에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및 경찰관직무집행법위반죄 ▲ ‘물과 식량 차단행위’에는 직권남용죄 등이 적용됨을 밝혔다. 이외에도 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공조 및 합동, 방조행위 등을 지적했다.

한편, 이날 대회 참가단체 일동은 ‘대정부 요구안’으로 ▲ 살인진압의 책임자, 경기경찰청장 파면 ▲ 화학살상무기 사용 중단 ▲ 경찰폭력 피해에 대한 국가 보상 등을 주장했다.

이날 대회는 자동차산업의올바른회생을위한범국민대책위, 쌍용자동차폭력진압야4당공동조사위원회, 민주노총, 인권단체연석회의, 보건의료단체연합, 민변, 민생민주국민회의 등의 주최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