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 없다면 프로축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팬이 없다면 프로축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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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쌓되 원칙을 지키면 성과가 만들어진다
FC서울 이장수 감독

‘충칭의 별’. 중국 축구계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인 이장수(49) 감독은 이렇게 불린다. 1998년부터 중국 프로축구 충칭리판팀을 맡아 4년간 이끌면서 중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정상권에 올려놨고, 2000년에는 FA컵 우승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독이 충칭의 별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된 것은 단순히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1년에도 몇 차례씩 감독이 바뀌는 중국의 축구현실에서 ‘최장수 외국인 감독’으로 성공기를 써내려간 요인은 ‘팬들과의 신뢰’였다.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팀에 남는 프로 감독이란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장수 감독이 충칭을 떠나던 날, 충칭의 팬들이 끝내 울음을 터뜨린 것일 터이다.


사실 이 감독의 지도자 생활이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껏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종환 감독의 카리스마가 고스란히 남아 있던 천안 일화(현 성남 일화)를 이끌다가 96년 팀을 떠난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브라질 유학을 떠났고, 돌아와서도 국내의 팀을 맡지 못했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기는 했지만, 2004년 다시 복귀한 국내 무대인 전남에서 구단과의 마찰로 감독직에서 해임되기도 했다. 타협을 모르는 이 감독의 스타일이 화근이 된 것이다. 이 감독은 올해부터 FC서울를 이끌고 있다. 수원의 차범근 감독, 전남의 허정무 감독, 대구의 박종환 감독 등과 함께 ‘스타 감독 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장수 감독으로부터 축구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감독과의 인터뷰는 컵 대회가 끝나고 K리그 개막을 위해 훈련에 한창이던 5월 중순, 경기도 구리의 전용 연습장 챔피언스 파크에서 진행됐다.

 

 

새로운 출발

언제든지 옷 벗을 각오 돼 있다


(FC서울 감독을) 1월 초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4개월 남짓 지났다. 아직까지 함께 생활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지 않다. 선수들에게 내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올해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잡고 준비하고 있다.


성적에 대한 압박은 받는다. 그건 프로에서는 당연한 스트레스다. 다만 너무 얽매이지는 않는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스스로 그만둘 생각을 갖고 있다. 적어도 1년은 지나야 색깔을 갖출 수 있고, 감독이 이야기하는 대로 따라갈 수 있다.

 

박주영 신드롬

신인은 신인일 뿐


‘스타’라고 해서 다른 건 없다. (박)주영이 본인이 열심히 하고, 훈련에서 막내답게 같이 하고 있고. 선배들 역시 인정을 해야 할 것들은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선수단 미팅을 통해서도 얘기했고, 또 코칭스탭들이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주영이 합류 이후 선수들 간의 융화 문제는 불거진 적 없다.

 

소속팀, 월드컵 대표팀, 청소년 대표팀으로 이어지는 5~6월 스케줄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힘들어할 것은 아니다. 유럽, 남미 쪽은 일년에 60~70게임 정도 한다. 우리는 40게임이다. 프로 선수라면 충분히 그 정도는 치러야 한다. 팀에서 경기를 하고 대표팀에 가서 계속 이동을 하고 바로 경기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현장 지도자들이 그 양을 조절해줘야 한다. 크게 무리한 일정은 아니라고 본다.

 

클럽 VS 대표팀

프로리그가 있어야 대표팀이 있다


한국 축구가 2002년 월드컵 업적을 만들어 내고, 그 이전에도 국제대회 때 좋은 성적을 내면서 월드컵에 진출하는 등의 성적을 낸 동기는 프로축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83년 프로 출범 이전과 지금은 큰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좋은 성적은 프로 덕분이다. 기반이 생긴 것이다.

 

지금 프로 리그가 침체되어 있다. 프로가 활성화 되면 자연스럽게 대표 선수들 능력도 업그레이드 되어서 나온다. 따라서 프로 리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활성화시켜야 한다. 프로 리그는 등한시하고 대표팀 경기에만 매달리면 밸런스가 맞지 않다. 그 나라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팬들이 모여야 하고, 프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진정한 발전을 팬들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국내 리그에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대표팀이 우선이라는 것은 맞지 않다. 프로가 살아야 대표가 산다. 프로를 통해 선수가 성장하고, 동기유발이 되어야 한다. 대표팀에만 매달리면 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

 

한국 축구의 내일을 위해

업-다운제 시급하다


일부에서는 업-다운제(프로 1부 리그 팀 중 하위 팀은 2부 리그로 떨어지고, 반대로 2부 리그 상위팀이 1부 리그로 승격되는 제도)가 시기상조라는 얘기도 하는데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해야 한다. 우리 프로축구는 우승팀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유럽축구도 사실 우승할 수 있는 팀들은 4∼5개 팀들이고 나머지는 1부 리그에 속해 있으면서 지역 팬들한테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나라는 시즌 막바지에 우승이 가능한 한두 팀에만 조명이 비춰지고 나머지 팀들은 유명무실해지는데, 유럽은 우승하는 팀 못지않게 어느 팀이 2부 리그로 떨어지는지, 또 어느 팀이 올라오는지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미 중국도 실시하고 있다. 보다 많은 팬들한테 흥밋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럽이나 남미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검증을 거쳐 장점이 많다고 판단해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업-다운 제도 실시로 문제점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2부 리그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거고 팬들의 관심이 가중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빨리 실시해야 한다.

 

중국행

일이 필요했다


중국으로 갔을 때는 절실히 일이 필요했을 때였다. (일화에서) 목 잘리고, 2~3개월 쉬다가 브라질로 갔다. 부족했던 게 많이 있구나 싶어서 공부하기 위해서 브라질을 택했고 10개월 정도 거기 있으면서 브라질 축구환경을 느꼈다. 공부 마치고 귀국했는데 일을 하라는 데가 없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일이 필요했다.

 

그 때 중국에서 제의가 왔고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이미 그 당시는 중국이 ‘감독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제의가 왔을 때 가까운 분들과 의논했다. 10이면 10명이 반대했다. ‘1년도 못 채우고 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굉장히 갈등을 많이 하다가 마지막에 최종결정을 했다. 젊었기 때문에 선택을 했다.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 말, 음식, 기후가 문제였다. 하지만 위기 때 슬기롭게 잘 극복했던 것 같다. 6년을 거기서 보냈고. 지도자로서 중요한 시기에 중국에서 그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내게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됐다. 중국의 1부 리그가 14개 팀인데 내가 갔던 해에 감독이 18명이나 바뀌었다. 한 팀에 한 명 이상이 바뀐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말렸지만 마지막 선택은 내가 했고, 선택을 했던 책임감 때문에 힘들어도 버텨냈다. 자존심 강한 중국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많은 것을 얻어서 왔다.

 

 

중국에서의 성공 비결

함께 호흡하다


구단에서 호텔을 잡아줬는데 포기하고 선수 숙소에서 생활했다. 중국 문화를 알아야 했고, 또 많이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통역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감독과 선수와의 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팅을 할 때 말로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표정, 눈빛을 보면서 감정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선수들과 생활하면서 어떤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이 선까지는 반드시 감독이 요구하는 것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해놓고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원칙 이외의 것은 선수들과 회의를 통해서 정했다. 원칙이라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감독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빨리 꺼내서 경기장에서 펼쳐보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실한 훈련 자세 같은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선수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수들은 힘든 훈련을 오래 하기 싫어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따라오게끔 하느냐가 관건이다. 그게 감독과 선수의 차이점이다.

 

중국에서의 위기

믿음으로 돌파하다


중국에서 위기도 있었다. 항상 절벽 위에서 한 발은 절벽에 있었고, 한 발은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충칭에서 2년째 되던 해에 성적이 급상승하면서 다른 팀에서 유혹이 많았다. 재정상황이 좋고 강한 팀에서 두 배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팀을 떠날 수 없었다. 충칭은 재정이 어려웠지만 그 속에서 같이 고생했고,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장수 감독은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 나왔다. 팀을 옮길까도 생각했었다. 중국에 와서까지 감독한 것은 일도 일이지만 보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팬들이 ‘1년만 더 있으면 좋겠다. 물론 연봉을 채워줄 수는 없지만, 당신을 믿고 있고, 그것이 성적으로 나타나면서 이제 팀이 안정되어 가는데 아쉽다’고 하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고 못 옮겼다. 그 다음해에 우승을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팬들이 요구하니까 떠날 수가 없었다.


4년째 되던 해에 구단이 팔렸는데, 새 구단주가 축구단을 사는 조건으로 내가 감독으로 남는 것을 제시했다. 그 때 구단주를 만나서 담판을 지었다. ‘1년 더 하겠다. 대신 조건을 들어 달라’고 했다. 요구사항은 선수들의 연봉을 최소한 10~15% 올려 달라, 용병 세 명을 확보해 달라, 3년간 동결된 코치들 연봉 올려 달라, 선수 경기 수당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내 연봉이었다.

 

구단주가 그 조건들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해서 남았는데,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 때는 팬들이 먼저 떠나라고 했다. 그해 마지막 시합까지만 남겠다고 선언했고, 그래서 끝나고 칭따오로 옮겼다. 칭따오에서도 2년째 되던 해에 올 시즌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고, 그 해 우승을 하고 돌아왔다.

 

첫 번째 원칙

팬이 없는 프로축구란 있을 수 없다


감독과 구단 프런트는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머리 맞대고 앉아서 이야기해야 한다. 감독 요구대로 구단에서 다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편성돼 있는 건데, 감독은 그 예산으로 꾸려 나가야 하는 것이고, 구단의 방침에 감독이 따라가는 것은 원칙이다. 그렇지만 감독이 해야 할 일에 구단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프로축구계에서 선수나 감독이나 프런트나 모두 팬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팬들이 없다면 프로축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팬들을 정말 보물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운영이 되고 있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독과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빨리 캐치해야 한다. 일반 기업에서 고객을 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는 팬을 생각해야 한다.

 

가족 이야기

가장으로서는 부끄럽지 않지만, 늘 미안하다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미안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 일이고. 이 일로 인해서 가정의 생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좋은 역할은 아니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하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이 필요할 때 옆에 못 있어 줬으니까 많이 미안하다. 또 남편의 입장에서 남자의 손이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밖에 나가 있어서 미안하다.


딸하고 아들이 사춘기 때 브라질, 중국에 가 있었다. 딸이 그런 얘길 하더라. ‘아빠로서는 좋다. 그런데 한 가정의 남편이라면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더라. 이해가 간다. 아들도 ‘아빠처럼 돌아다니는 직업은 안 가지겠다’고 하더라. (웃음)

 

이장수 축구?

세계 흐름 따르는 공격 축구


딱히 ‘이장수 축구’라고 하기 보다는, 세계축구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방 이상의 창조는 없다. 선진축구의 흐름을 빨리 쫓아가야 하고, 접목시켜야 한다. 현대 축구는 굉장히 빨라졌고, 체력, 기술을 요구한다.

 

예전에는 ‘남미 기술’, ‘유럽 체력’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미도, 유럽도 기술과 체력을 모두 겸비해가고 있다. 다만 공격적인 축구를 해야 한다. 팬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FIFA에서도 공격적인 축구를 하라고 이겼을 때 승점 3점, 비기면 1점 준다.


결국은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라와야 한다.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강압적으로 때리는 시대가 아니다. 선수들도 영리해졌고, 한두 경기, 한두 달은 강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레이스에서는 그래선 절대로 안 된다. 감독과 선수, 프런트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와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쌓이는 믿음이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꿈 이야기

맡고 있는 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축구교실


맡고 있는 팀이 우승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것은 원하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오는 것이다. 큰 욕심은 없다. 대표팀 감독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 본 적 없다. 한 팀을 맡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축구 지도자를 은퇴하고 나면 축구를 통해서 내가 얻은 것들을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준비도 조금씩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