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정치적 의사 표현도 하면 안 되나?
공무원은 정치적 의사 표현도 하면 안 되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8.31 18:3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국집회 참여 놓고 행안부-공무원노조 갈등 고조
공무원 정치적 중립의 기준은 어디?

▲ 지난 7월 19일 열렸던 민주회복·민생 살리기 2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표현의 자유 보장을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8월 25일 8개 공무원노조로 구성된 대정부교섭단이 행정안전부(장관 이달곤)를 방문해 2008년 대정부 단체교섭 공동요구안을 제출함으로써 올해 공무원 단체교섭의 막이 올랐다. 올해 공동 단체교섭에는 20개 공무원노조가 직접 또는 위임의 방식으로 참가한다.

하지만 올해 공무원 단체교섭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공무원들의 시국대회 참가 등을 둘러싸고 공무원노조들과 행정안전부가 서로를 고발하는 등 양 당사자 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행안부 징계는 공무원 입막음”

일요일인 지난 7월 19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민주회복·민생 살리기 2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전교조, 언론노조 등과 함께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정헌재, 이하 민주공무원노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위원장 손영태, 이하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들 다수가 참석해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민주공무원노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지부 차원에서 ‘정권의 공무원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겠다’는 현수막을 제작해 내걸고 일간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에 대해 집단행동 금지 조항과 성실·복종 의무를 위반했다며 노조 간부 16명에 대해 고발하고 105명에 대한 징계를 각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다. 공무원노조들은 행정안전부의 이 같은 조치에 반발해 이달곤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와 관련 현행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은 표와 같이 공무원의 의무와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무원들이 ‘휴일’에 열린 시국 관련 집회, 특히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집회에 참석한 것을 집단행동 금지 조항과 성실·복종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공무원들이 정부정책에 대해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휴일도 없나?

이 중 성실의 의무나 복종의 의무는 직무 수행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직무에 종사하는 시간 외의 시간에까지 효력이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다. 집단행위의 금지 규정도 휴일이나 근무시간 외에 이루어진 행위를 집단행위라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통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로 불리는 정치 운동 금지 규정이다. 이 규정은 ‘관권선거’가 횡행했던 80년대까지의 우리나라 정치풍토에서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로 당연시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출범한 90년대 이후, 특히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90년대 말을 거치면서 그 성격이 변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즉, 이전에는 관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었지만, 90년대 이후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구실이 됐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 인하대 정외과 정영태 교수는 “정치적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한 권리”라고 전제한 뒤, “다만 공무원은 대국민 봉사자라는 특수한 신분이기에 이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는 ‘근무 중’에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못하게 하고 당파적인 정책집행을 못하게 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는 “공무원이 근무 중에 특정정당의 입장에 따라 선거운동을 하거나 당파적인 정책집행을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제한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근무 후에까지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공무원이 근무 후에 정치활동을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데 이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규정이며, 공무원들의 입을 막으려는 독선과 오만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7월 19일 열렸던 민주회복·민생 살리기 2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이 표현의 자유 보장을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공무원노조법 위반은 맞지만…

한성대 행정학과 이종수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정치활동과 정치권의 인사 개입, 정책에 대한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면서 “특히 정책 차원의 중립과 관련해서는 공무원이 정책전문가로서의 소신을 가지고 장기적인 국익을 위한 판단 아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교수는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대운하 계획이라고 폭로했던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에 대한 징계는 따라서 부당한 징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무원에게는 집권여당의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의무도 있지만 그것이 정당들의 공정한 정책경쟁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이에 대한 기준은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치 교사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전교조가 합법화 됐던 것처럼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되는 것은 공무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에 대한 위반”이라면서 “공무원노조들이 2007년 법내노조로 전환한 것은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공무원노조법을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단체행동과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과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와 같이 팽팽히 맞선다면 과거 법외노조 시절 받았던 공무원노조의 피해가 재현될 우려가 있다”며 “점진적인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놓고 의견은 다소 엇갈리지만, 행정안전부를 제외하면 공무원노조들과 학자들은 이 의무를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모양새다. 일반적 권리인 정치적 자유를 특수직역의 의무로 ‘온전히’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무원노조들의 시국 관련 행동들이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징계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이종수 교수도 현행법의 점진적인 개선을 권하고 있는 만큼, 공무원노조법 상의 각종 제한 규정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