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앨 ‘칼’이 아니라, 거품 걷어낼 ‘뜰채’ 필요
사교육 없앨 ‘칼’이 아니라, 거품 걷어낼 ‘뜰채’ 필요
  • 김관모 기자
  • 승인 2009.09.0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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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다는 두려움, 참여와 확신으로 극복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송인수 대표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교육과학기술부는 작년 한해 우리나라 가계에서 지출한 교육비가 약 40조 원으로 전체 가계 소비 지출액의 7.5%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인 20조 원이 초·중·고 사교육비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을 사교육시장에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교육의 현실적 역할이나 영향력에 비례해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사회 양극화 속에서 교육 양극화에 따른 학력과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사교육을 없애는 것도 답이 아니고, 그대로 두는 것도 답이 아니라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선뜻 뛰어들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거대한 틀을 바꾸려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싸움인지 알기 때문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www.noworry.kr)의 송인수 대표도 싸움의 고통을 몸소 겪었던 교사였다. 그런 그가 사교육 문제 앞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사교육을 없애버리려는 칼이 아니라 사교육의 거품을 걷어낼 뜰채였다.

‘두려움’을 ‘인생의 과제’로

송인수 대표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이 아무리 정상화된다고 해도 결국 개별적인 학생들의 필요를 다 채울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사교육 전체와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교 담임으로 있을 때 수천만 원씩의 커미션이 오가는 것을 봐왔고 보충수업과 야간학습을 거부하고 버틴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버텼다는 명분을 제외하면 인맥이며 교직생활 자체가 모두 박살이 났죠. 입시 문제나 사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소한 것도 풀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한 이후로 교직생활 동안 이런 문제들은 피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송인수 대표는 예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사교육 문제를 대할 때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교사개인의 힘으로 다가가기엔 사교육 문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으로 보였던 셈이다. 그러던 그가 다시 사교육 문제에 발을 담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송인수 대표는 1996년 기독교 교사들이 모여서 만든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교직문화를 바로잡는 사회활동에 뛰어들었다. 2003년에는 교직을 사퇴하고 그 이후 5년 동안‘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맡아 왔다.

그는 이곳에서 자질 문제와 비리 문제 등으로 ‘선생님’에서‘직업교사’로 전략한 교사들의 입지를 바로 잡는데 매진해왔다. 하지만 이런 활동도 잠시, 그는 다시금 자신의 ‘두려움’을 운명적인 라이벌로 받아들여야 했다.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1년 전인 2007년에 이사회에서 좀 더 강력한 교육활동을 계획해보라는 요구가 있어서 처음 입시 사교육 문제를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당시는 풀 수 없다고 생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과연 풀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았죠.”

그 이후 운명은 신앙적 고민을 통해 ‘선택’으로 바뀌었다.

“한 번은 우리 집 아이들을 성경공부 시키는 과정에서 한 후배 목사가 아이들에게 ‘너희가 입시 문제로 힘든 이유는 입시와 사교육 문제를 자기 인생의 미션으로 가져간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라고 하더군요. 이 말이 십여 년간 교육운동을 해온 제 가슴에게 비수처럼 꽂혔죠. 사회적으로 입시나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개인이나 단체의 미션으로 다루는 곳이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그런 면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송 대표의 선택은 사교육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바꿔 놓았다. 그는 사교육 문제는 대안이 없어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피해자들이 각각 흩어져서 자기 상처를 개인적으로 풀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 남들과 무한경쟁을 벌이면서 종국에는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고민하기 전에 스스로 맞부딪히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 구조에 대해 저항하는 운동의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줄 것이라고 봤어요. 이 길을 가는 게 답이 없는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내 문제로 보고 나서는 순간 길이 열리는 겁니다. 결국 개인의 참여가 답이지 어떤 대안의 매력도가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활동이 점차 넓혀지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1년 사이 많지는 않지만 400여 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여 지방에서 카페를 통해 모임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을 바라왔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재정과 믿음으로 그를 밀어주는 든든한 서포터들이었다.

“돈키호테처럼 활동을 시작하면 결국 생계를 유지하려고 지금 하는 일과 상관없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명하고 합리적인 행동에 금이 가게 되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공동체적인 서포터들과 함께 책임을 지다보니 기관이나 기업의 도움을 부탁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후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운동의 성과만 잘 내면 되는 선순환이 되는 겁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대안과 대안세력이 함께 해야

현재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유진 공동대표와 8명의 간사가 상근으로 일하고 있다. 송 대표는 “13년간 일했던 ‘좋은교사운동’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지만 여전히 할 일이 너무 많다고”고 말했다. 사교육 문제와 관련한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보니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할 수 있는 연구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모두 가지고 있어요. 그걸 총합으로 뭉쳐서 사교육 지수가 얼마나 되는지 나타나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관심은 이것이 좋으냐 나쁘냐란 본질적인 문제에 앞서서 실제 효과가 있느냐는 진실을 먼저 보여주고 싶어요.”

송 대표는 현재 사교육 시장의 정보는 영리추구를 위해 홍보와 논리를 구축해놓은 사교육업자와 이를 앵무새처럼 보도하는 언론, 이것을 듣고 말로 전해주는 이웃, 이렇게 3곳이 혼재되면서 사교육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애로사항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대개 사교육과 입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주장하면 이념적으로 갈라치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터가 말하게 하는 입장을 추구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 단체의 위상을 민간교육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책을 요구하는 것뿐 아니라 그 정책이 현실 속에서 구현가능토록 통제가능한 채무성을 가져가야 하는 거죠.”

현재 송 대표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함께 특목고와 외고, 선행학습과 관련한 자료들을 모아 발표 및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또한 진로지도와 노동시장에서의 신입사원 인재채용 방식 문제, 중·고등학교 내신체계 등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하지만 송 대표는 무엇보다 학부모들과 사교육의 피해자들이 대안세력이 되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이 모은 데이터를 토대로 대안을 논의하고 사회활동을 통해 정치가들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래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올해 상반기부터 ‘등대지기학교’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매해 1000명의 회원을 배출할 계획이다.

“그 동안 NGO들의 경우 내용과 논의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만 만들어 따라오라는 식이었습니다. 즉 대안과 대안세력이 분리되어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대안세력들이 서로의 대안을 공유해서 구체성과 현실가능성을 높이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만들어진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언론과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료의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낼 법도 하건만 송인수 대표는 여전히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자료를 모으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NGO나 정치인들 같은 일부세력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스스로 살펴보고 효율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선택할 수 있는 지혜.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송 대표는 자기 자신의 두려움을 자기 삶의 과제로 극복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