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의 ‘꿈’ 이경훈의 ‘징크스’
이경훈의 ‘꿈’ 이경훈의 ‘징크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09.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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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전 7기’ 꿈 이루고 웃을까? ‘만년 2등’ 징크스에 울까?

[11신] 정말 우여곡절 끝에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제3대 임원 선거가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됐다. 결선에서 맞붙게 될 상대는 이경훈 대 권오일.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관전포인트는 역시 이경훈 후보에게 쏠린다. 과연 이경훈 후보는 6전7기의 꿈을 이루고 웃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는 만년 2인자의 굴레 속에 갇혀 다시 눈물을 흘릴 것인가.

이 관전포인트는 당연히 역으로 뒤집어볼 경우 지난 15년 간 지속돼 온 이른바 ‘민주파’의 결선 불패 신화를 이어갈 것인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경훈 후보는 현대자동차 구성원들에게는 누구보다 낯익은 이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97년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시절 제 7대 위원장에 출마한 이래 이번이 일곱 번째 도전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실패였다.

역대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및 지부장
1대 이영복(한빛) - 2대 이상범(민실협) - 3대 이헌구(현연투) - 4대 윤성근(범민련) - 5대 이영복(한빛) - 6대 정갑득(민투위) - 7대 김광식(민투위) - 8대 정갑득(실노회) - 9대 이상욱(민투위) - 10대 이헌구(민노투) - 11대 이상욱(민투위) - 12대 박유기(민노회) - 지부 1대 이상욱(민투위) - 지부 2대 윤해모(민투위)


97년 첫 도전

이경훈 후보가 처음으로 ‘도전’에 나선 것은 지난 97년 9월에 치러진 7대 선거였다. 이전까지 이른바 실리파의 ‘맹주’로 불리면서 1, 5대 위원장을 지낸 이영복 씨가 퇴사하면서 실리파를 대표하는 현장조직 ‘한빛’의 차기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앞선 여섯 차례의 선거에 모두 나섰던 이영복 씨의 지명도에 미치지 못했던 그는 출마한 4팀의 후보 중 꼴지를 기록했고, 그렇게 첫 도전에서 쓴잔을 마셨다. 이 선거에서의 승자는 실노회에서 출마한 정갑득 씨였다.

결국 이경훈 씨는 ‘한빛’을 ‘노연투(노동연대투쟁위원회)’로 이름을 바꾼다. 이 때부터 ‘전설적인’ 예선 필승, 결선 필패를 기록한다.

이경훈 씨는 8대부터 12대까지 항상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다. (양자 대결로 진행된 9대 선거 제외)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10대 때도 27.54%(4자 대결)였고, 11대 때는 5자 구도 속에서 35.06%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거의 손에 들어온 듯 싶던 위원장 자리는 끝내 그를 외면했다. 어쩌면 그에게 50%는 마의 벽이었는지도 모른다. 양자 대결로 1차에서 끝났던 9대 때 45.2%를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면 공교롭게도 모두 47%대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 8대 47.62%, 10대 47.01%, 11대 47.9%, 12대 47.53%)

여섯 번의 실패 후 이선 퇴진, 그리고 다시 도전

여섯 차례 연속해서 고배를 마신 이경훈 씨는 2선으로 후퇴한다. 이경훈 씨만 계속해서 후보로 나서면서 내부 반발이 생겼고, 이는 노연투에서 한길투, 전민투가 분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연투는 현장연대로 이름을 바꿨고, 조직체계가 지부로 바뀐 후 두 차례의 지부장 선거에는 홍성봉 씨가 대표 주자로 나서게 된다. 그러나 현장연대 이름으로 출마에 나섰던 홍성봉 후보는 지부 1대 선거에서 2위, 2대 선거에서는 3위로 고배를 마신다.

이런 와중에 이경훈 씨는 현장연대와 결별하고 전현노(전진하는 현장노동자회)를 결성해 일곱 번 째 도전에 나섰고, 그 결과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1차 투표에서 다시 31.09%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어쩌면 운명처럼 결선에서 또 민주파와 대결을 벌이게 됐다.

실리파와 민주파의 대결?

그간 이경훈 씨의 이런 득표 패턴에 대해 실리파의 경쟁력이자 한계라는 분석이 많았다. 30% 안팎의 고정적인 지지표를 갖고는 있지만, 정작 결선 투표에서는 조합원들이 ‘그래도 민주파’라는 전략적 선택을 하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는 것.

이는 초기 선거에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지금에도 그런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사실 한빛에서 노연투로 이어지는 이영복-이경훈 씨를 규정하는 ‘실리파’는 ‘온건파’로 불리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이른바 ‘어용’이라 분류되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1차 투표에서 이경훈 후보가 1위를 차지하고 나면, 노연투를 제외한 다른 조직들이 모여 결선에 진출한 상대 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정하는 ‘반노연투’ 혹은 ‘반이경훈’ 연합전선을 펼쳤다.

사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런 구도를 만든 것이 현장 활동가라고 하기도 힘들다. 흔히 ‘활동가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다’고 표현되는 ‘투표 9단’ 조합원들의 절묘한 선택이라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 설명으로 보인다.

일부러 각본을 짜서 만들라고 해도 쉽지 않을 51%대와 47%대로 절묘하게 당락을 결정짓는 조합원들의 선택은 ‘누가 과연 우리에게 이익을 더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물적 감각이라고 할만하다.

과도한 의미부여는 경계해야

또 예전과 같은 ‘어용’ 대 ‘민주’의 구도도 더 이상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성사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11대 선거 때는 노연투와 실노회 간의 선거연합이 거의 이루어질 뻔 했다. 이번 지부 3대 선거에서는 한빛-노연투의 맥을 잇는 현장연대와 민혁투의 선거연합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선거연합이 가능해진 것은 그만큼 현장조직들 간의 ‘색깔차’가 옅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력 조직 중 가장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민투위 집행부 때 분규가 가장 적었다는 것은 기존의 구도 분류가 소용없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경훈 후보로서는 이번이 위원장(지부장) 도전에 있어 어쩌면 마지막이자 최적의 조건일 수도 있다. 옅어진 색깔, 일곱 번째 도전에 따른 지명도, 지난 두 차례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동정표’, 그리고 1차 투표 논란 과정에서 2, 3위 득표자 간의 갈등 등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투표에서 보여줬던 조합원들의 ‘표심’이 다시 한번 그를 ‘만년 2등’의 자리에 머물게 할 수도 있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과도한 해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언론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고립을 ‘목표’로 온건파 대 강경파의 구도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런 얘기는 지난 10여 년의 선거 과정에서 똑같이 나왔지만 결론은 한결 같았다.

과연 일곱 번째 도전 결과는?

이번 선거에서 이경훈 후보가 승리하든, 아니면 권오일 후보가 승리하든 그것은 조합원들의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실용적 선택’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이경훈이 도움이 될 것이냐, 권오일이 되움이 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인 것이다.

물론 ‘인간 이경훈’의 일곱 번째 도전 결과가 궁금하기는 하다. 그 뚜껑은 이번 금요일이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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