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합공무원노조 압박, 왜?
정부의 통합공무원노조 압박, 왜?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9.2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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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론 정치적 중립 위반 가능성 차단
민주노총 영향력 차단·노정관계 기선 제압 속셈
정부가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총 지우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것을 위해 들이댄 잣대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다. 정부의 민주노총 지우기는 현안이 산적한 하반기 노정관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사전포석이기도 하다.

지난 22일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결정 이전부터 정부의 시선은 공무원노조들의 조합원 총투표를 향하고 있었다. 조합원 총투표를 앞둔 지난 10일부터 행정안전부는 ‘복무지침’을 통해 불법행위로 규정한 바 있다. 정부가 노동조합의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는 총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20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통합공무원노조 준비위(통준위)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총 가입을 발표한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 대부분의 언론까지 가세해 총공세를 취하고 있는 모양새다.

불법 가능성 가지고 처벌하겠다?

정부가 이처럼 통준위에 대해 전 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통합공무원노조가 정치세력화를 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민주노총에 가입할 경우, 민주노총의 정치투쟁에 동원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실정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통합공무원노조가 법을 위반하기 ‘전’에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공직자들이 결성한 노조가 정치활동에 연계될 가능성을 방치할 수는 없다”며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주장을 하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우선 우리나라 법률 중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만을 가지고 처벌하는 법률은 국가보안법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따라서 ‘사전예방’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형평성 문제에 있어서도 무리가 따른다. 다른 형식과 내용이기는 하지만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는 공무원노조들에 대해서 정부가 정치적 중립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통준위로부터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는 노총에 가입하면 불법이냐”는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가 제기하고 있는 해고자의 노조활동이나 선거 과정에서의 불법행위는 처벌할 근거를 찾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상급단체 가입을 제한할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다른 근거를 들어 처벌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속셈은 민주노총 지우기

하지만 정부가 통준위를 압박하기 위해 내세우고 있는 이런 이유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바로 통준위를 압박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올해 들어 늘어나고 있는 단위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를 반기던 정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노총 여부를 떠나서 민주노총의 영향력 확대가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복수노조 허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굵직한 현안들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국노총과는 ‘정책연대’라는 틀을 통해 ‘적어도’ 물리적인 충돌에 대한 부담 없이 문제를 풀어가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노총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대화의 채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하반기 현안들에 대해서 민주노총과의 물리적인 충돌 없이 풀어간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작아질수록 반가운 일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잇따른 단위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에 반색을 표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함으로써 민주노총 조합원이 상당히 늘어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단위노조들의 민주노총 탈퇴 분위기에 제동을 걸어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반가울 리 없는 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결과를 초래할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막으려 애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가입이 가결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노정갈등 상당기간 지속될 듯

또 다른 이유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대립각을 세울 것이 확실한 민주노총에 대해 기선을 제압함으로써 하반기 현안들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안 그래도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연이은 ‘투쟁’에서 밀렸던 민주노총이,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에서마저 밀린다면 그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이기에 정부도 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를 종합해보면, 정부는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 파장만큼은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리가 따르더라도 민주노총에 가입한 통합공무원노조에 대해 가능한 한 큰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문제를 이렇게 보면 적어도 통합공무원노조가 정식으로 출범한 뒤에도 상당기간 동안 정부의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만큼 노정간의 갈등도 고조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