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실패는 없다, 단지 기회를 놓쳤을 뿐”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단지 기회를 놓쳤을 뿐”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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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서 야구 해설가, KBO 사무총장으로
야구 모르듯 “인생 모르는 거예요”
야구해설가 하일성

“제가 수술을 총 6번 했어요. 심장 수술, 위종양 수술, 담낭 수술, 무릎 연골 수술, 팔목 수술 … 그리고 포경수술까지.”

재담으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노신사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포경수술까지 언급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마치 유머인양 이야기하며 청취자들을 즐겁게 했다.

한국 최고의 야구해설가이자 한국 프로야구 제2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다는 평을 듣고,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뽑은 올해의 명강사에 선정된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의 걸출한 입담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지난 5월 KBO 사무총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갔지만 밀려드는 강의 요청과 야구해설가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준비로 바쁜, ‘총장님’이란 호칭보다 ‘위원’이란 호칭이 더 익숙하다는 하일성 해설위원을 만나 야구와 인생, 그리고 역전 드라마에 대해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하일성 위원을 만나기 위해 건국대 캠퍼스로 향했다. 건국대 안에 위치한 커다란 연못인 일감호 앞에는 넝쿨로 뒤덮인 벤치가 있다. 그곳에서 ‘라이방’을 끼고 유유자적하며 앉아있는 노신사가 보였다. 노신사는 마치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 일감호의 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9회말 아마야구 최강 쿠바의 공격, 원아웃 주자만루 상황에서 안타 하나면 역전되는 그 때 마음 졸이며 정대현 선수의 공 하나하나를 바라보던 모습도, 제2회 WBC(World Baseball Classic) 결승전 한일 맞대결에서 임창용 선수가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에게 통한의 2루타를 맞았던 그 순간의 아쉬움도 노신사에게는 남의 일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많이 늙었다. TV에서 열정적인 해설을 하고,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좌중을 웃기던 그도 많이 늙었다. 큰 병치레 이후라 그런지, 그 어렵다던 KBO 사무총장을 그만둔 것 직후여서 그런지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노신사와 직접 인터뷰가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왜? 거침없는 입담과 재기발랄한 언어유희에 ‘이 사람이 정말 아팠던 사람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기자의 마음을 애잔하게 했던 겉모습은 마치 가면처럼 보였다. ‘TV에서 보던 모습과 하나도 안 변했구만. 뭐’ 그럼 즐겁게 인터뷰를 시작해볼까?

“제가 뭐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총장님?, 위원님?”

“하일성 해설위원이 가장 좋아요.”

“오늘은 위원님과 함께 야구와 인생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좋아, 좋아. 뭐든지 물어봐요.”

이렇게 호탕한 대답 속에 야구 이야기부터 풀어봤다.

선수와 구단은 파트너

야구해설가에서 야구행정의 최고 자리라는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의 사무총장으로 지낸 시기에 대해 하 위원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었고 열심히 했었다”고 감회를 털어놨다.

그러나 후회도 많고 하고 싶었던 일도 많았지만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던 하 위원은 밖에서 바라보던 KBO와 실제 그 안에서 바라보는 KBO는 사뭇 달랐다고 말한다.

“차이가 단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하게 많아요. 해설할 때는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KBO는 내 생각과 8개 구단 생각, 팬들의 생각, 선수협의 생각 등 4가지 생각의 만족스런 공통점을 찾기 위한 조율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도리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분명히 하 위원의 총장 재임시절 올림픽 금메달, 제2회 WBC 준우승, 프로야구 500만 관중 재돌파 등 한국야구는 제2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여기에 아마야구의 발전을 위해 KBO 총재배 대학야구, 여자야구, 리틀야구 대회를 창설했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많았을 터. 하 위원은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복지향상을 뽑았다.

“내 나름대로 신경 썼던 부분은 선수들의 복지향상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8개 구단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구단마다 입장이 달라서 힘들었지. 제일 아쉬운 것은 선수협회와 8개 구단 이사회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부분이에요. 선수협회하고 구단 사장들의 모임인 KBO 이사회하고 갭이 너무 커. 그걸 좁혔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한 것이 내가 제일 후회됩니다.”

하 위원과 선수협회는 질긴 인연으로 얽혀있다. ‘프로야구선수협의회’(지금은 선수협회로 명칭이 바뀜)라는 이름의 단체가 탄생되고 각 구단은 선수협의 중심 선수들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을 때 ‘영원한 회장님’ 송진우 선수를 비롯해 마해영, 강병규, 양준혁, 박정태 선수들은 새벽 4시에 하 위원을 찾아왔었다.

“아, 그 친구들이 그 일(선수협 출범)을 저질러 놓고는 새벽 4시에 우리 집에 와서 라면 끓여 먹으면서 논의를 했지. 그때부터 얽히기 시작한거야. 선수협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쌍방울 선수를 포함한 선수협 식구들이 투쟁할 때 내가 30여명의 선수들을 거의 보름동안 먹이고 재웠어요. 내가 총장할 때 그때 그 친구들이 먹은 식비며 재워준 값을 받아내려고 했는데… 하하.”

그렇기 때문에 선수협과 KBO 이사회와의 관계를 파트너 관계로 만들지 못한 부분은 하 위원에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심지어 이런 말도 들었어. ‘총장은 KBO 사무총장이요? 아니면 선수협회 사무총장이요?’ 그런데 내 소신이 있어요. 선수와 구단은 파트너가 돼야 한다. 종속관계는 절대 아니란 말이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돔 구장보다 최신식 야구장 건설이 우선

이런 소신의 하 위원도 자신의 실패는 스스럼없이 실패라고 이야기했다. 야구팬들의 가장 큰 불만인 구장 인프라 문제에 대해 하 위원은 ‘돔 구장’을 주장했던 자신에게 과오가 있다고 털어놨다.

“인프라 구축 부분에 있어 처음에 방향을 잘못 잡았어요. 돔구장이 우선이 아니라 광주, 대전, 대구에 최소한 2만5000명이 들어가는 최신식 야구장 건립이 우선이었고 그 다음이 돔 구장이었는데 나도 정책을 잘못 잡았던 거죠. 5만, 6만 들어가는 야구장은 필요 없어요. 대구, 대전, 광주 인구가 몇 명인데. 일본은 일부러 작게 짓는다고 해요. 그래야 구장도 활기차게 느껴지고 조금만 늦어도 자리가 없으니까 관중들이 일찍 오게 되고.”

이런 자신의 과오에 대해 하 위원은 예를 들어서까지 기자에게 확실하게 심어줬다.

“모 군단장이 내 친군데. 자기가 사단장 때 매일 군단장 욕을 했데. 저 돌대가리 XX. 우리 사단 포는 여기다 놓아야 되는데 저 XX가 저기다 놓아야 된다고 해서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자기가 군단장이 되니까 그 사단 포는 거기 놓아야 다른 사단 포와 밸런스가 맞는다는 거야. 그렇게 밖에서 보는 것하고 안에서 보는 것이 다르더라구. 그게 세상 이치인거야.”

골라 듣는 재미가 왜 나빠?

해설가로서 하 위원은 국내 최고의 해설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케이블 채널의 등장으로 과거 하일성, 허구연 체제에서 다양한 출신의 해설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해설 방식을 들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야구에서 데이터가 점차 중요해지며 데이터 야구를 신봉하는 해설가, 선수 출신으로 야구장 뒷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놓는 해설가 등 다양한 해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하일성 해설이 대표하는 친근하고 묘한 매력의 해설이 점차 없어진다고 걱정이다. 이에 대해 하 위원은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뛴다.

“나는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음악도 힙합, 트로트, 팝송, 발라드 여러 가지가 있어서 선택하듯 과거 나나 허구연 위원이 해설하는 스타일을 넘어 지금은 여러 가지 메뉴가 있어서 골라서 들을 수 있는 것은 난 아주 잘 된 것으로 봐요. 진짜 너무너무 너무 잘됐어요.”

오히려 잘됐단다. 그렇지만 실망하는 팬들도 많을 듯하다.

“내가 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내 스타일은 대포 집에서 TV를 보면서 같이 야구 이야기를 하듯이 해설하는 것이고, 해설자를 떠나 경기를 즐기면서 보자는 것이에요. 지금 팬들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지만 TV 앞에 10명이 모여서 야구를 본다고 칩시다. 그 중에 정말 야구에 해박한 사람은 많아야 3명이에요. 그 나머지는 대충 알고 좋아하는 거야. 예를 들어 야구배트를 15각도로 틀어라 하면 뭔 소리인 줄 알아? 이것은 전문가를 놓고 세미나 하는 거지. 야구해설은 대중을 놓고 방송을 하는 거야.”

“지금 안하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야구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 같아 한정된 시간을 야구 이야기에만 쏟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파란만장한 하 위원의 인생 이야기로 옮겨봤다.  

체육교사에서 해설가로, 해설가에서 야구 행정가로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던 하 위원에게 가장 어려운 선택은 교사에서 해설가로 변신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교사와 해설가를 병행하던 시절 KBS로부터 전속계약을 하자는 통보가 왔을 때 하 위원은 무척 망설였다고 한다. 안정된 직장이었던 교사를 팽개치고 1년 단위의 계약을 연장하는 파리 목숨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했냐하면, 당시 내가 서른 세 살이었는데 ‘지금 그만 두자. KBS에서 잘리면 40살 전에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 안하면 평생 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살면서 그 때가 제일 힘들었고 어려운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KBO 사무총장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 결정이 편했어요.”

인생의 전환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하 위원은 심장 수술부터 위암 수술, 담낭 수술까지 어려운 수술을 계속 받았다. 비록 위암은 오진이었다는 판명이 났지만. 어려운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던 하 위원이지만 담배에겐 지고 말았다.

도하 아시안게임이 원인이 됐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일본 사회인 야구팀한테도 지는 수모를 당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 다시 피웠던 담배를 지금은 오히려 당당하게 물었다.

“얼마 전에 정기검진을 받는데 내가 나이가 62살인데 의사가 나보고 “지금 폐 조직을 봐서는 15년, 20년 이후 담배를 계속 피면 힘들어진다”고 하더라. 완전 코미디지. 그때면 내가 80인데 뭐 더 살겠다고 끊나? 피다 죽으면 되지. 내가 환자가 아니라 그 의사가 환자야.”

수술 이후 인생은 더욱 당당해졌다. 처음 수술을 받았을 당시는 화도 많이 났었다고 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말 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지내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비록 과거와 같이 20-20 클럽(원래는 홈런 20개, 도루 20개를 한 시즌에 하는 선수를 가리키는 말로 호타준족의 상징. 하지만 여기서 20-20 클럽이란 폭탄주 20잔, 알(스트레이트) 20잔을 원샷 하는 모임, 김인식 전 한화감독, 고 김동엽 감독 등이 맴버였음)처럼 술을 마시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하 위원의 인맥은 여러 언론 기사에서도 회자된 바 있듯이 매우 폭 넓다. 이런 인맥관리의 원칙은 무엇일까?

“먼저 다가가야 돼요. 내가 벽을 치면 절대 오래 못 갑니다. 왜냐?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친구라는 개념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것인데 사람을 사귀는 것이 우정을 줘야지 비즈니스 관계로,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이런 것들은 아니다 싶어요. 또 하나 내 법칙은 헤어질 때 원수가 되면 안 된다는 거야. 언젠가 저 놈 또 만나게 되어 있어, 인생이란. 아무리 내가 죽이고 싶어도 헤어질 때는 앙금이 안 남도록 노력해야 해요.”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노하우와 삶에 대한 도전 자세로 살아온 60년에 대해 하 위원 본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강의에서 이런 말을 주로 해요.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나는 내가 진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60이 넘어서 알게 됐어요. 열정은 있되 내가 하는 일, 인생에 대해서 즐기질 못했다. 열정을 즐겨야 하는데 열정을 살아가는 수단으로 여긴 거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열정을 즐기는 이승엽이나 김연아 같은 친구들이 나보다 더 인생 선배 같은 느낌이 들어요.”

도전하는 인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하 위원은 60이 넘어 가장 크게 느낀 것이 모든 인생에는 실패가 없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다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생각하느라 놓친 것 뿐, 절대 실패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하 위원이 늘 하는 말이지만 “야구는 모르는 것”이다. 패배가 아니라 단지 이길 기회를 놓친 것뿐이기 때문에 또 다시 타석에, 투수판 위에 올라서는 것이고 인생도 오직 9회말 쓰리 아웃이 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하 위원이 살아온 60 평생 또한 ‘아무도 모르는’ 결과를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나아가려고 한다. 해설가로서의 또 다른 도전과 리틀야구 부흥을 위한 리틀야구 학교 건립이라는 도전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있다.

언제 안타가, 언제 홈런이 터질지 모른다. 그저 게임을 즐기고 공 하나 하나에 열정을 쏟으면 결과는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절대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패배는 모든 것을 알려주니까.

“승리로부터는 조금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크리스티 매튜슨(190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우완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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