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일상에 관한 참견
즐거운 일상에 관한 참견
  • 권석정 기자
  • 승인 2009.10.0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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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일상 같은 만화, 만화 같은 일상
웹툰 <생활의 참견> 만화가 김양수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주당이신 아버지가 어느 날 대추주를 담그실 요량으로 대추와 소주를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셨다. 그런데 숙성기간을 참지 못하신 나머지 “하루만 담가놔도 술에 가을대추향이 배어있다”고 억지를 부리며 다음날부터 한잔씩 꺼내 드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추가 든 항아리에 소주를 계속 부어 바로 마시기를 1년 동안 반복하자, 항아리 안에는 ‘대추술’이 아닌 알코올로 찌든 ‘술대추’가 탄생하게 됐다. 아버지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주당들을 위한 대추사탕이 탄생했다”며 흡족해하셨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만화가 김양수(36)가 네이버에 연재하는 웹툰 <생활의 참견> 중 ‘아버지와 대추주’의 한 부분으로 엄연한 ‘실화’다. 김양수는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겪은 일상을 끄집어내 그 만의 유쾌한 시각으로 재현해내는 ‘일상 재구성의 달인’이다.

소소한 수필 같은 만화임에도 <생활의 참견>은 블록버스터급 반전과 자극적인 소재가 난무하는 인터넷 웹툰 계에서 유난히 주목을 받으며 ‘회당 100만 클릭’을 기록하고 있다. 왜일까? 그의 일상이 유달리 재미있는 것일까? 아니면 일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독특한 것일까?

일상을 끄집어내다

작년 2월부터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김양수는 사실 만화 연재 경력 12년의 엄연한 중견급 만화가다. 종합문화월간지 <페이퍼>에서 기자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98년부터 잡지에 <생활의 참견>의 원형이 된 <카툰 판타지>라는 제목의 한쪽짜리 짧은 만화를 매달 연재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꿈이 만화가, 소설가, 기타리스트, 기자. 이랬어요. 편집장님한테 졸라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그 달 잡지 컨셉에 해당하는 소재를 가지고 만화를 그렸죠. 그러다 점점 그 소재와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독자들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가령, 그 달 소재가 맥주라면 맥주에 관한 내 경험담을 들려주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이 관심을 갖자 ‘나는 이런 이야기 방식에 재주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이라는 것은 어쩌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만화 속에 구현되는 김양수 주변의 일상에 특히 재미를 느낀다. 그가 남들보다 특별히 재미있는 일상을 살아서일까?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이나 독자들이 제 만화 보고 ‘야, 김양수는 웃긴 일만 겪나봐’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알고 보면 평소에 우리 주위에 재밌는 일들이 참 많은데 인식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뿐이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일상과 연애하기

김양수의 말대로 그의 일상이 우리의 일상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치자. 그런데 각자의 일상 에서 재미있는 부분을 인식해낸다는 것이 바쁜 현대인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일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뭔가 남다른 감각이나 묘안이 있지 않을까? 이 물음에 김양수는 대뜸 그의 ‘연애생존법칙’을 들려줬다.

“어렸을 때부터 제가 연애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열심히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재미있는 남자가 인기가 많잖아요. 연애할 때 상대방이 심심해하는 시간이 5분 이상 지속되지 않게 하려고 마술도 배우고 별별 노력을 다 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상대방과의 대화가 도중에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죠.”

유머 책에 나온 우스갯소리로는 데이트를 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에 김양수는 자연스레 일상의 조그만 부분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어요. 상대방이 안경을 썼으면 ‘우와! 네 안경 진짜 예쁘다. 그거 어디서 샀니? 내 친구는 그 안경 샀다가 부러트려서 다시 사려고 하는데…’라면서 안경 하나만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거예요. 상대방이 입은 반팔 티 한 장을 봐도 ‘와우! 네가 입은 반팔 티는 85년도에 유행했던 스타일인데 말이야. 그 때 내가 샀다가 잃어버려서…’라는 식이죠. 그렇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들이 놓치는 부분들을 찾아내게 된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우문현답이었다. 일상에 대한 재발견은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대화에서 시작하는 것이리라. 문득 “나는 평소에 내 옆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너무 웃기다”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김양수의 이야기는 잠시라도 끊어지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꾸밈없는 유머감각까지 갖춘 그의 언변은 “나는 지금 개그작가와 이야기 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만화 스토리 찾아내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죽겠구나 싶을 때도 있죠. 제가 즐거워야 남들이 보기에도 재미있는 만화가 나오는데 좋은 스토리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럴 때는 일하기 싫어져서 내가 내 손바닥을 때릴 때도 있어요. 매너리즘에 빠진 스토리가 나오면 나도 재미가 없죠. 그래도 재미있는 스토리가 나오면 그리면서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일상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 김양수에게는 ‘양날의 검’일 수 있다. 독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지만 그만큼 뭔가 특별한 ‘재미’를 던져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양수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생활의 참견>에 대해 기자 주변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호불호가 명확히 나뉘는 감이 있었다. “너무 웃기다”와 “잘 모르겠다”

“가끔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들도 있어요. 난 웃을 곳을 굉장히 친절하게 그려준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웃기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었는데 요새는 조금씩 완급을 조절하려고 해요. 몇 번은 의도치 않게 아버님 얘기를 할 때 ‘감동적이다’, ‘울었다’라는 반응이 올 때도 있죠.”

그런 반응을 얻은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위에 언급된 ‘아버지와 대추주’였다. 만화를 보면 끝부분에 김양수가 아버지 산소에 소주를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혹자들은 ‘이런 것을 많이 그려라’라고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어요. 감동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인데 억지로 끌어내려다 보면 거짓말이 될 것 같아서 조심하는 편이죠. 그런 것은 나에게 맞지 않아요.”

즐거운 일상을 위한 제안

김양수는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 ‘거침없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한 시도들이 지금의 그와 그의 만화를 있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한 김양수는 연습장에다가 이런저런 만화를 그리곤 했는데 고등학교 때 일본만화 ‘드래곤 볼’을 패러디해 그린 ‘곤드래 볼’은 다른 반 아이들까지 돌려볼 정도로 교내에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또 음악을 무척 좋아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 라디오 DJ가 너무 해보고 싶었던 나머지 실제 라디오 방송을 하듯 카세트테이프에 음악과 멘트를 녹음해 반 아이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호응이 빗발치자 탄력을 받은 그는 진짜 라디오방송처럼 옆 학교 여학생들과 전화데이트를 시도해 그 내용을 카세트에 녹음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교내 아이들 사이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나중에는 아이들로부터 사연편지까지 받았다.

“아이들이 내가 만든 것을 보고 웃어주는 것이 너무 신났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김양수. 그는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일상에서 조그만 것이라도 흥미로운 꺼리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은 보통 크게 뜬 이슈나 주류문화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가령, 인디음악이라든지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좋아하면 굳이 마니아, 골수라는 단어를 붙이는 분위기도 아쉬워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리가 일하는 직장, 우리가 접하는 뉴스, 우리가 즐기는 영화나 음악 같은 다양한 문화들 속에 과연 우리 자신들의 감정은 얼마나 투영돼 있을까? 우리는 그 안에서 정작 우리가 하고 싶던 일들을 얼마나 추구하고 있을까? 한번쯤 고민해볼만한 문제다.

김양수는 작은 것부터라도 본인의 일상을 위한 ‘즐거운 시도’를 시작하길 권한다.

“지레 조바심을 내는 바람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조바심을 버리고 조그만 취미부터라도 시도해봤으면 해요.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제 만화가 알려진지 2년 정도 됐지만 사실 기자생활하면서 만화를 그린 지는 10년이 넘었거든요. 비록 전업만화가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거였으니까 꾸준히 그려온 거예요. 사람들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루 1~2시간 정도 자신의 일상을 위해 투자한다면 10년 후에는 더 나아진 삶이 기다리지 않을까요?”

당신의 일상은?

평소 일정한 루트 속 반복되는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주변에서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단정지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노모(老母)께서 늘 챙겨주시는 걱정 담긴 몇 마디를 그냥 흘려들을 때도 있는 우리들. 일상에 대한 익숙함이 우리를 무감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익숙함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일상을 집중된 시각으로 보는 것. 노력한다면 누구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다만 주의할 것은 그 노력을 노력으로 여기면 그것조차도 일이 돼버린다는 거예요. 일상을 세세하게 바라보는 방식이 생활에 젖어들었으면 해요.”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재미있는 시도들을 통해 또 다른 소통을 이야기하는 만화가 김양수가 당신에게 던지는 참견이다.

▲ 생활의 참견 ⓒ 김양수